합체 (반양장) -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64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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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다른 아이 어깨를 올라탄 채 힘차게 농구공을 던져 올리고 있다.

 " 합 * 체" 라 써진 글 제목에서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그 "합체"가 아님을 언뜻 눈치 챌 수 있다.

슛을 하는 아이의 빨간 티셔츠에 그려진 인물은 " 체 게바라"이다.

음~ 이 아이가 체 게바라를 알고 있다면, 뭔가 혁명을 꿈 꾸는 이야기?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딸이 재미있다고 하였을까!

궁금했다.


이 두 아이의 이름은 오 합, 오 체 쌍둥이이다.

아버지는 난장이이다.

합* 체 또한 고1인데  아버지 유전 때문인지 키가 초등 수준이다. 

작은 키 때문에 같은 반 급우한데 매일 놀림을 받아 고달픈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몇 년 전 

어떤 토크쇼에 나온 여자 한 명이 남자 키가 180cm  이 안 되면 루저라는 말을  하여

공분을 산 적이 있었다.

그 여자는 평소 자신의 생각을 말했을 뿐이지만

그 파장은 정말 대단했다. 

말을 좀 신중하게 했음 좋았을 텐데....

솔직하다는 게 항상 옳지는 않다. 

그 여자의 논리대로라면,  합* 체는 루저 중의 루저일 것이다.


합은 그나마 작은 키에 만족은 안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며 사는데

쌍둥이 중의 동생 체는 작은 키가 늘 불만이다. 형처럼 공부를 잘하지도 못 한다. 

운동, 그 중에서 키 커지는 농구를 좋아하지만 단신 때문에 농구 선수를 하기엔 역부족이다.

체의 소원은 바로 키 크기이다. 

체의 그런 소원은 어쩌면 난장이 아버지가 어이없게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더 굳어졌을 지도 모르겠다.

후진하는 차가 난장이 아버지를 미쳐 발견하지 못 해 자동차에 치여 돌아가셨다.

난쟁이가 아니었다면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 외치는 체의 말에 먹먹해진다. 

아마 그래서 키 작은 게 더 싫어졌을 게다. 

아버지처럼 되기 싫어서 말이다. 


사춘기가 되면 가뜩이나 외모에 민감하기 마련인데

또래보다 작은, 아니 초등 수준 정도 밖에 안 되는 키 때문에 늘 불만이 많은 체의 고민이 십분 이해된다.

게다가 난장이 아버지 때문에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아이들에게 놀림도 많이 받았을 테고 말이다

아버지 자신은 자식들 앞에서 한번도 난장이라서 슬프다거나 억울하거나 하다고 한 적이 없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아버지를 부끄러워 하시지 않았다. 

그렇게 아버지는 끝까지 긍정적으로 웃으며 살다 하늘 나라 가셨지만

난장이 아버지가 사람들에게 조롱당하고 멸시당하며 사는 모습을 그저 바라봐야했던

체의 가슴은 여기저기 상처뿐이었다. 


여름 방학이 가까웠을 무렵,

늘 자신을 놀리던 한 녀석과 한판 붙고 학교를 뛰쳐 나오던 날이었다. 

체는 약수터에서 씩씩대며 널브러져 있다가 

자신을 "계도사"라 부르는 이상한 할아버지와 조우하게 된다.

신통방통하게 체와 관련된 것을 알아맞추는 이 할아버지에게 어쩐지 마음이 쏠린다.

그 도사가 키가 크고 싶다면 자신이 알려준 비기를 그대로 따르라는 말을 듣고, 급기야

여름 방학하자마자

형 합을 꼬드겨 계롱산으로 향한다.

도사들이 많이 수련한다는 그 계룡산 말이다. 

자칭 "계도사"가 알려준 비기는 진짜 키 커지는 비기가 맞을까?


유난히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우리나라에서

합*체가 견디기는 녹록하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체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계도사의 말대로 해 보고 싶었을 게다. 

계도사가 알려준 수련 방법 또한 따라하기 쉽지 않은데

얼마나 간절하였으면 하루에 세 번씩 수련을 한다.

이걸 따라하면 자연스레 키가 커질 것도 같은데...

단군신화에서 곰이 웅녀로 탈바꿈 하였듯이

합 * 체도 부디 힘든 수련과정을 잘 견뎌 

33일 후에는

부디 키가 한 뼘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난장이 아버지.

자신도 키가 너무 작아 놀림 당하는 체의 활활 타오르는 마음이 이해된다. 

아버지와 형은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캐릭터라면

체는 지금이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인 데다 좀더 외모에 민감한 성격인 듯하다.

똑같은 문제에 직면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해법은 다를 수 있다.

합은 공부로 

체는 수련으로 


합리적인 합이지만 동생의 그런 마음을 이해했기에 묵묵히 계룡산까지 따라가주고 함께 수련을 해 준다.

동굴에서 지내는 동안, 형제는 의견이 달라 다투기도 하지만, 함께라서 외롭지 않다.

체가 발견한 폭포에서 자연인으로 돌아가 멱을 감는 장면은 정말 시원했다.

그 순간 만큼은 어떤 고민도 시련도 없어 보였다.

33일 후에, 신체적인 키가 자랄지 안 자랄지 장담할 수 없지만

이렇게 생활하다 보면 분명 마음의 키는 한 뼘 자랄 듯하다.


"왜 학교는 꼭 키번호를 정할까? 그것도 한 학기 한 번씩 말이야 "

체의 불만사항이다.

학교에선 당연하게 새학년 새학기 첫날, 키번호를 정한다.

선진국에서도 그럴까? 하는 의문이 나도 들었더랬다. 

키 번호를 정해서 뭐하지? 특별히 하는 거라곤 운동장에서 줄 설 때.

그때도 굳이 왜 키번호로 서야 하지?

그래, 뭐 별 거 없네.

하여 올해부터는 키 번호를 정해주지 않았다.

출석 번호가 엄연히 있으니 굳이 정할 필요성을 모르겠다.

체육 시간에 줄 설 때도 출석번호대로 세운다.

가끔 선착순으로 서라 하면 아이들이 빨리 움직여서 선착순도 많이 써먹곤 한다.

(이것도 경쟁심 유발이라 좀 그렇긴 하지만 출석번호대로 서라 하면 느릿느릿 하는 아이가 있어서)

키 큰 아이 입장에서는 키 번호가 자랑스러울 지 모르겠으나

체 같은 아이한테는 아픔이 될 수도 있으니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어떤 학교에서는 출석 번호도 남녀 순 없이 그냥 가나다라 순으로 한다.

맞아!

이것도 왜 굳이 남자는 1번부터,,, 여자는 51번부터 순서를 매겨야 해?

남녀 차별도 아니고 말이야.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 학교에서 나이스 상 아무 문제가 없었다면 우리 학교도 건의해 볼 문제인 듯하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조금 뒤집어 생각해 보는 것,

그게 혁신의 시작인 듯하다.

혁명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일어난 모든 혁명은 의례히 당연하다 생각한 것을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본 결과,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체 게바라는 죽어서도 그걸 말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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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9 13: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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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9 17: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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