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월요일부터 딸 기말고사가 시작되었다.
예전 울 엄마는 나 시험 본다고 옆에서 대기하고 있지 않았는데 요즘 시대는 아니다.
시험 공부하는 딸 옆에서 지켜보느라 나도 바쁘고 힘들다.
물론 당사자가 제일 고되고 힘들지만서도.
엄마로서 딸 공부하는데 먼저 잘 수는 없는 일,
옆에서 그저 지켜보는 거(감시?)라도 해야 할 듯해서
졸립지 않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만화책을 학교 도서실에서 빌려와 읽고 있다.
어제는 강 풀 작가의 <26년 > 3권을 빌려와 한달음에 읽었다.
내가 열심히 읽자 옆에 있던 초4 아들이 궁금해 하길래 읽어보라고 했더니
첫날에 1권 읽고, 다음 날에 2-3권을 다 읽었다.
읽는 내내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길 없었다.
아아아!!!
나도 이런데 5.18 당사자는 35년 내내
그 아픔과 절망, 분노, 복수심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은 부지기수인데
정작 발포하라는 명령을 내린 자는 없다니.....
말이 되냔 말이다.
정의란 도대체 어디 있는 건가?
책에서도 여러 번 나온 말이다.
나도 우리 반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하다.
" 착하게 사는 것보다 정의롭게 사는 게 더 어렵다"
착한 것,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분노하고, 저항할 줄 알며, 옳은 길을 선택해서 가는 것이다..
교실이나 직장에서도 예스맨이 꼭 있다.
일의 옳고 그름 보다 일단 거절을 못 한다. 누가 부탁을 하거나, 명령을 하면 따른다.
그게 설사 나쁜 일이라도 시키는 대로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간다.
책에 나온 마실장은 상관의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발사하였다고 한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어야 하는 군인이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그도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게 옳은 선택인가! 라고 할 때 문제는 다르다.
군인으로서 착한 일을 한 것일지는 몰라도
옳은 선택은 아니었다.
후에도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그는 연희동 그 사람을 "역사"라 합리화하며 추종하였다.
그가 "역사" 여야만 자신이 했던 일이 정당화 되니깐 말이다.
김회장은 달랐다.
그도 마실장처럼 명령에 죽고사는 군인이라서 도청에 남아 있던 시민군 두 사람을 죽였다. 1980년 광주에서 말이다.
그는 그 죄책감 때문에 평생 행복하지 못 했다.
하지만 마실장과 달리 그는 그후 반대의 삶을 산다. 속죄하는 삶을 산다.
연희동 그를 역사라며 자신을 합리화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2년 만에 풀려난 그를 보며 분노하고, 스스로 단죄하려고 작전을 세운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공 들여서 말이다.
김회장은 무엇보다
자신이 죽였던 그 무고한 시민과 그 자녀에게 사죄하며 용서를 구한다.
그 점이 마실장과 다르다.
5.18 문제는 김회장이나 5.18 희생자의 유가족이 나서서 단죄할 것이 아니다.
법치주의 국가이니 법으로 다스려야 마땅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그게 안 되는 요상한 나라이니까
이런 만화가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스스로 복수하러 나서는 내용으로 말이다.
어쩌다 보니 시험 기간 내내 "복수 "라는 주제의 책을 연속 읽게 되었다.
복수는 허망하다.
복수만을 위해 살아온 김회장을 비롯한 다른 광주의 자식들의 인생 또한 애달프다.
하지만 왜 그들이 직접 복수에 나설 수밖에 없었나 생각해 보면 그 마음에 공감이 간다.
법이 제 역할을 못 하니까.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용서를 구하지 않는 사회.
이 속에서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5.18 당시 김회장처럼 무고한 광주 시민을 향해 총을 들었던 공수부대의 양심 선언을 들어본 적이 없는 듯하다.
아니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나?
그들은 김회장 같이 평생 속죄하며 살고 있을지
마실장처럼 그를 "역사"라고 정당화하며 자신을 속이며 살고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26년>이 특이했던 게 5.18 희생자 유가족이 아닌 그 당시 광주에 투입된 군인이었던 김회장이 주축이 된다는 점이었다.
작가는 나처럼 그들이 80년 그 후 어떤 삶을 살았을지 궁금했었나 보다.
이쪽이던지 저쪽이던지 모두 녹록한 삶을 살진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이 만화책을 보며 더 강하게 든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 또한 희생자임에 분명하다.
언제쯤이면 제대로 된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강정마을도, 용산참사도, 세월호도, 메르스도 그렇고
사건은 벌어지고 피해자는 있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