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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금파리 한 조각 - 전2권
린다 수 박 지음, 이상희 옮김, 김세현 그림 / 서울문화사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어린이책에 관심을 갖고나서 눈여겨 보던 책이 있다. 바로 <사금파리 한 조각>이란 책이다. “사금파리”라는 어감이 참 독특하고 좋았던 듯하다. 게다가 뉴베리상에 빛나는 책이라니 정말 궁금했다. 이 책은 재미교포인 린다 수 박이 저자이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나도 잘 알지 못하는 고려청자 이야기를 어떻게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이렇게 잘 알고 있을까 놀라웠다. 무늬만 대한민국 사람이지 참 무지했구나 싶었다.
미국으로 유학 온 부모 밑에서 태어난 저자는 가정에서조차 영어로 대화하며 자랐다고 한다. 어느덧 어머니가 되어보니 자녀에게 자신의 뿌리인 한국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줘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고 한다. 그때부터 한국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엄마라는 존재는 참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녀에게 우리의 뿌리를 알리고자 노력하는 중, 한국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문화 유산 중 하나인 “고려 청자”이야기를 써서 전 세계에 주목을 받게 된다. 뉴베리상을 받았다는 것은 미국 도서관마다 이 책이 꽂혀 있다는 것을 뜻한단다. 고려청자 이야기가 세계에 널리 전파된다는 의미인 셈이니 이거야말로 대단한 문화 홍보 활동인 셈이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가 참 고맙다.
때는 고려시대이다. 도자기 마을 줄포를 배경으로 삼아 고아 “목이”의 성장 이야기와 상감 청자 빚는 이야기를 잘 버무려 감동적으로 들려준다. 도공이 되고 싶은 고아 소년 목이, 오갈 데 없는 고아 목이를 맡아 키운 장애인 두루미 아저씨, 목이에게 꿈을 생기게 해 준 도공 민영감, 엄마처럼 따스하게 품어준 민영감 부인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줄포(지금의 부안 근처)라는 바닷가 마을은 도자기 굽는 마을이다. 줄포 다리 밑에 목이와 두루미 아저씨 하루하루를 빌어먹고 살고 있었다. 목이는 오며가며 민영감이 도자기를 굽는 모습을 보게 되고 도공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된다. 목이는 어렵사리 민영감 집에서 허드렛일을 맡아 하게 된다. 하지만 민영감은 도자기 만드는 일은커녕 일감을 줄 때도 얼마나 냉기가 흐르는지 말 한 번 붙이기조차 어렵다. 민영감 밑에서 아무리 죽어라 일을 해도 번번히 야단에다 퇴짜 맞기가 일쑤다. 하지만 민영감의 도자기 굽는 솜씨는 줄포에서 아니 고려에서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어느 날, 송도에서 감도관이 와 궁궐에 납품할 그릇을 심사하게 된다. 그 무렵, 목이는 강영감이 상감기법으로 도자기를 만드는 것을 몰래 엿보게 되고 이를 민영감에게 알려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에 빠진다. 남의 기술을 훔쳐보는 것은 도둑질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목이의 고민을 들은 두루미 아저씨는 상감기법이 스스로 드러나길 기다리라 조언해준다. 결국 상감기법은 감도관 심사날 만천하에 드러나지만 안타깝게도 상감기법이 아닌 민영감의 도자기는 채택되지 못 한다. 감도관은 민영감의 도자기 기술을 못내 아쉬워하여 송도로 도자기를 한번 가져오길 당부하고 떠난다.
강영감의 상감기법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된 민영감 또한 상감기법으로 도자기를 만들어보지만 유약 처리의 실패로 애써 구운 도자기를 모두 바닥에 내던져 버린다. 그 후, 천신만고 끝에 상감청자를 만들어내지만 그걸 가지고 민영감이 송도까지 가기란 쉽지 않았다. 이 사정을 안 목이는 심부름을 할 것을 자청하고, 민영감의 도자기를 조심스레 챙겨 송도로 혼자 먼 길을 떠난다. 목이의 나이는 겨우 열 셋 정도이다.
줄포에서 송도까지 긴 여정 동안 오직 민영감의 빼어난 상감청자를 감도관 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일념으로 걷고 또 걷는 목이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가장 가슴 졸인 순간은, 낙화암 근처에서 만난 강도가 목이를 덮쳐 그 소중한 매화꽃병을 절벽으로 떨어뜨리던 장면이다. 사금파리(도자기의 깨어진 조각)로 변해버린 꽃병을 피가 흐르는 줄도 모른 채 움켜잡고 우는 목이의 모습이 정말 가련하였다.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소중한 꽃병이 깨졌다는 절망감 때문에 나쁜 생각까지 품게 되는 목이... 이대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민영감의 상감청자는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채 사금파리로 남게 될까.
이야기를 읽다보면 목이의 성장담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특히 산전수전 겪으며 고약한 민영감 심부름을 하는 것과 송도까지 상감청자를 전해주러 가는 이야기는 과연 뉴베리상을 탈만하구나 느끼게 해준다. 또 목이의 꿈에 대한 열정과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용기는 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하나 더, 상감청자를 빚는 민영감을 통해 고려 도공의 예술혼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민영감의 철저한 장인 정신은 비록 글 속의 인물이지만 숙연하게 만든다. 지금은 온천하에 상감기법이 알려지고, 고려 시대보다 더 좋은 도구로 청자를 빚어내지만 그 당시 고려 도공들이 빚어낸 상감청자의 오묘한 빛깔은 재현할 수 없다고 하니 고려 도공들의 솜씨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알 수 있다. 책을 읽고 나니 예전 미술교과서에 실려 있던 매화꽃병이 남다르게 보였다. 매화 한 가지를 꺾어 꽃병에 꽂는다는 것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멋을 아는 고려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