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이가 또 큰 사건을 저질렀다. 이름하여 "강낭콩 봉변 사건"이다.

 

 사건의 요지는 이러하다. 아들이 과학 장기 수행평가로 집 베란다에 강낭콩을 기르고 있었다. 발아부터 시작해서 이제 제법 잎이 여러 장 나와 잘 자라고 있었다. 물도 주고, 때때로 자라는 모습을 관찰 일기로 기록하고 말이다. 온이는 관심 없는 척, 강낭콩 화분 옆에서 밖을 내다보곤 하였다. 우리 가족은 "음~ 온이가 작년엔 테이블 야자를 야금야금 갉아먹었는데 강낭콩은 싫어하는구나!" 안심하였다. 잎이 여러 장 자랐는데도 강낭콩을 거들떠 보지 않길래 정말 마음을 탁 놓았었다.

 

  어제, 저녁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온이가 우리 가족이 안 보는 사이, 강낭콩 잎사귀를 아작아작 먹어버린 거였다.  제일 먼저 발견한 아들은 대성통곡 하였다. 강낭콩 잎사귀의 처참한 모습 앞에 망연자실했다." 엄마, 온이 쫒아버려, 용서할 수 없어. 내가 아빠 말에 동의했어야 하는데" 난리가 났다. 화가 날수록 방언이 터지는 아들의 말 때문에 우리 부부는 몰래 웃기도 하였지만 아들의 분노와 슬픔이 이해됐다. 씨를 받아 발아시키고, 싹이 올라오자 화분에 심어 지금까지 금지옥엽 키웠는데 줄무늬 녀석이 하루아침에 냠냠해 버린 것이디. 일단 온이를 체포하여 캐리어에 감금시켰다. 아들이 1시간 동안 꺼내주지 말라고 엄포를 놨다.  독방에 감금당한 온이는 아주 구슬프게 울어댔지만-이 녀석 연기도 잘한다- 아들의 명을 거역할 순 없었다.

 

  1시간만에 풀려난 온이는 속도 없이 나에게 머리 박치기를 하며 애교를 떨었다. 온이를 보면서 만약 수퍼남매가 이와 같은 잘못을 저질렀다면 온이처럼 독방에 감금시켰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고양이라서 감금 이라는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온이도 가족이라고 하면서도 사람과 고양이에 대한 차별은 엄연히 존재하였다.

 

  강낭콩 화분을 온이 발길이 닿지 않는 부엌 씽크대 쪽으로 옮겼다. 설마 여기까지 와서 갉아먹진 않겠지. 이 녀석이 요즘 온갖 것을 먹어대서 찌릿찌릿 골치가 아프다. 지난 번에 여행갔다 왔더니 내 옷을 여기저기 갉아 먹질 않나 온이 혼자 놔두고 외출할 때는 초비상이다. 비닐, 스트로폼, 종이까지 먹는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일상적인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수의사 선생님이 버릇이 고쳐지지 않으면 약물치료를 해야 한다 하는데..... 내가 노이로제 걸릴 지경이다.  게다가 새벽에는 꼭 할 일도 없으면서 문 열어 주라고 앙앙대고... 이 녀석 입양한 후로 잠을 푹 자 본 적이 없다.  그래도 한 번 애교 떨면 그 애교에 홀딱 넘어가서 고생한 것 다 잊어버리곤 했는데 이 사건은 좀 심했다. 지난 번 아이패드 충전기 사건 이후 말이다. (아이패드 충전기 줄을 갉아먹은 사건이었다. 이 때는 진짜 중랑천에 쫓겨 날 뻔했다.)

 

  오늘 새벽, 갑자기 남편이 온이를 혼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 사건이 터진 거다. 싱크대 위에 올려놓은 강낭콩을 또 습격했다고 한다. 그나마 남아 있던 잎을 먹어치운 것이다. 휴~ 진짜 이 녀석이.  한 번은 용서했지만 두 번은 안된다고 하면서 남편은 온이를 거실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라며 베란다에 감금시키라고 하였다. 두 번째 감금이다. 온이는 베란다에서 방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밤새 앙앙댔다.  지치지도 않는지 정말 계속 울어댔다. 잠귀가 밝은 난 밤새 그 소리에 잠을 뒤척일 수 밖에 없었다. 저러다 감기 걸리는 것 아닌가 걱정되기도 하고, 스트레스 받아 이것저것 다 물어뜯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수퍼남매에게 새벽에 일어난 두 번째 "강낭콩 봉변 사건"을 이야기해줬더니 애들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강낭콩 주인인 아들도 더 이상 놀라거나 울지 않았다. 잘 자라고 있던 강낭콩은 도대체 무슨 죄냐고? 갑자기 줄무늬 녀석한데 습격을 당한 셈이다. 온이는 밤새 울어대서 약간 쉰소리가 나는 듯하였다. 에고고!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할지....고양이와 함께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고양이 2마리 키우는 선배한테 조언을 좀 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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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6 20: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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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9 07: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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