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 중간고사가 금요일부터 시작되었다. 16개월 만에 시험을 치른다. 큰 아이 학교가 자유학기제 시범학교여서 중1 때 시험을 딱 한 번 봤었다. 덕분에 아이는 행복한 중1를 보냈다. 딱 한 번 시험 가지고 아이의 성적을 평가하기는 참 애매하지만 그 한 번의 점수 때문에 특히 수학, 우리 가족은 엄청 충격을 받았더랬다. 으윽~~ 낮은 점수 앞에서 역시 태연할 수는 없었다.

 

  작년 수학 점수가 나오자 아이 손을 잡고 처음으로 수학 학원을 찾아갔다. 아이는 수학에 대해 거의 트라우마 수준의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 학원에서 만든 자체 수준 평가 문제지를 받아들자마자 널브러져버렸다. 학교 시험 볼 때도 문제가 지렁이 꿈틀대는 것처럼 보여 제대로 풀 수가 없었다더니 그 말이 진짜였다. 아이의 심각한 상황을 목격한 나는 딸에게 너무 미안했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구나 싶어서 말이다.

 

  무엇보다 수학에 대한 두려움 없애기가 급선무였다. 수학을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두려워하진 말아야 할텐데... 딸은 원장과 상담을 하고 스케줄까지 잡았지만 끝내 수학학원을 안 갔다. 억지로 다니게 하면 더 역효과만 날 것 같아 아이 의견을 존중했다. 사촌 언니한테 과외를 받자고 해도 그것도 싫다고 하였다. 학원, 과외 모두 싫다고 하니 다시 나와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학생 가르치는 것과 자식 가르치는 것은 천양지차다. 학생은 몰라도 제어가 잘 된다. 그런데 자식 가르치는 것은 제어가 안 된다. 인신 공격적 말이 나가고, 상처 주는 말을 막 하게 된다. 그것이 아이를 더욱 주눅 들게 했고 수학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고 깊은 반성을 하였다. 내가 잘못한 거구나 뼈저리게 느꼈다. 아이한테 많이 미안했다.

 

  지난 겨울 방학, 큰 아이와 다시 수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최대한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고, 못 푼다고 구박 하지 않고, 알 때까지 여러 번 반복 설명해주고, 매일 공부를 하려고 노력하였다. 1 수학 복습을 다 끝내고 2학년 예습을 조금 했다. 딸은 점점 실력이 늘었다. 역시 수학 문제 해결 방법은 반복과 자신감이었다. 이번 중간고사도 수학 먼저 끝내놨다. 그렇다고 해서 수학을 아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상위권 문제는 여지 없이 틀린다. 하지만 전에 비해 수학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가끔은 어려운 문제를 풀고나서 아주 큰 소리로 얏호라고 환호를 지르곤 한다. 더 기쁜 것은 " 수학이란 학문, 나름 괜찮네. 단순한 게 매력적이야!" 라고 칭찬을 하기도 한다. 자기 수학 선생님보다 엄마가 더 잘 가르친다고 엄마를 비행기 태우기도 한다.

  

  수학만 평소대로 해 주면 이번에 작년 평균 2배는 거뜬히 받을 수 있을 법하다. 작년 수학이 워낙 최악의 점수였거든. 과학은 내가 봐도 어려운데, 담임 선생님이 아주 재밌게 가르쳐줘서 과학은 스스로 공부를 아주 잘한다. 기특하다. 과학책 슬쩍 봤는데 나도 잘 모르는 게 많았다. 작년과 다른 것은 작년에는 내가 일일이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주면서 함께 했는데 이번에는 수학 빼고 자기 주도 학습을 하고 있다. 시험 전날, 친구 집에 가서 족보 닷컴사이트에 들어가 문제를 풀었다고 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맞는 듯하다. 작년 친구들은  딸말에 의하면 " BEAUTY" 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번 친구들은 "공부"에 관심이 많아 아이도 따라한다.

 

  금요일 오후,  딸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엄마! 나 과학, 도덕 다 맞았어. 국어는 4개 틀렸어기쁘고 아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잘했다고 칭찬해줬다. 첫시험인데 긴장 안 하고, 그 어려운 과학을 다 맞았으니 정말 잘했다 싶다

 

  오늘 드디어 1교시에 수학 시험을 본다. 문제가 꿈틀대진 않았는지,  긴장 안 하고 잘 봤는지....점수가 잘 안 나와도 그동안 열심히 하는 과정을 옆에서 쭉 지켜봤으니 격려해 주려고 한다.


  퇴근하려고 준비하는데,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울면서 "엄마,미안해." 한다. " 수학 시험 시간이 너무 모자랐어. 엄마, 정말 미안해" 연거푸 미안하단다. " 알았어. 엄마 곧 가니까 가서 이야기하자"고 끊었다. 집에 오면서 생각했다. '나한테 미안할 게 아닌데.... 자신이 제일 속상할텐데' 

  

 

딸의 말을 들어보니 서술형 문제를 풀 수 있었는데 못 풀어서 너무 아쉽다는 거였다. 시험지를 보니 뒷장은 거의 손을 못 댔다. 시간 분배를 잘 못 한 거다. 객관식도 여러 번 푼 문제인데 놓친 게 많고... "괜찮아"라고 위로해줬다. 그동안 열심히 공부한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속상해하는 딸을 위로해 줬다. 아는 문제를 틀린 게 너무 아까웠던 딸은 흐느껴 울었다. 못 풀어서 속상한 마음이 생긴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다음에 기말고사 때는 시간 안 모자라도록 더 여러 번 반복해서 풀도록 하자"고 말했다. 이 책에서 말하듯이 7번 반복하였더라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건 작년처럼 문제가 꿈틀거리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싶었다. 역사와 가정 시험은 실수 안 하고 잘봐서 다행이다. 수학 때문에 2-3교시도 망쳤을까 봐 걱정스러웠는데 말이다.


  중1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수행평가도 챙기고, 중간고사 시험지도 가져오고, 채점도 열심히 하고, 못 푼 것에 대해 안타까워할 줄도 안다. 그런 딸을 보며 생각과 마음이 많이 자랐구나 싶어 대견했다. 기말고사는 이번보다 더 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생긴다. 왜냐하면 공부에 대한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공부"에 대한 재미를 알게 되어 다행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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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5-04-27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시험 때문에 가여운 우리 학생들!ㅠ 그래도 열심히 한 성과가 있었으니 다음엔 더 나아질거에요!!

수퍼남매맘 2015-04-28 12:00   좋아요 0 | URL
영어 학원에서 1달 전부터 내신체제로 돌입하더니 반복시키는 게 장난 아니더라구요.
이렇게 아니 이보다 더 내달려서 고3까지 버티어야 하는 거지요?
정말 불쌍하고 가여워요.

2015-04-28 08: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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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8 15: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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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8 15: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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