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 아침
프랑크 파블로프 글, 레오니트 시멜코프 그림,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 휴먼어린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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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 때가 되면 "투표합시다. 자신의 소중한 표를 꼭 행사합시다" 등의 투표를 독려하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선거의 결과야 물론 투표를 한 자던, 안 한 자던 공평하게 모두에게 돌아오지만 말이다. "갈색 아침" 이란 그림책을 보면서 선거 때 이 책을 가족이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 그림책은 1998년 출간되었으나 2002년 프랑스 대통령 결선 투표 당시 모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가 청취자에게 소개하면서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장 마리 르펜이라는 이름을 아는지 모르겠다. 프랑스의 유명한 극우파에다 인종차별주의자다. 그 때, 장 마리 르펜은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대통령 결선 투표에 나가는 후보를 고르는 1차 투표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장 마리 르펜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커다란 지지율로 결선 투표에 나가게 된 것이다. 프랑스 사회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고 프랑스 축구 대표팀의 주장인 지네딘 지단은 행여나 르펜이 대통령이 된다면 다시는 프랑스의 국가 대표로 뛰지 않겠다는 선언까지 했다. 그런 상황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이 책을 소개한 것이다.  " 국가 권력의 불의를 보고도 침묵하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에 부딪힌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우화"인 이 그림책을 말이다. 이런 상황을 더 이상 침묵으로 방관해서는 안되며 원하는 사회의 모습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하자는 의미로 소개한 것이다. 방송이 나간 후에 이 그림책은 서점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프랑스 언론은 '갈색 아침 현상'이라 이름 붙였다. 결국 장 마리 르펜이 결선 투표에서 패배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물론 이 모든 사실은 그림책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정치적 위기의 상황에서 한 권의 그림책이 그런 파급력을 가지고 옳은 길로 인도할 수 있다니 놀랍다. 건강한 사회일 수록 옳은 것을 외치는 작은 목소리도 소중히 여기고 귀기울인다고 하더니 아직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 프랑스가 참 부럽기도 하다. 혹시 왜 하필이면 '갈색'일까 궁금할지도모르겠다. '갈색'은 유럽인들에게 '나치를 상징한다고 한다. 어쩐지 그림책을 보노라니 나치 독재 정부가 자꾸 연상되더라. 그런데 그림책에는 알파벳 하나가 계속 등장한다. 하지만 그건 나치를 뜻하는 'N'도 아니고 갈색을 뜻하는 '브라운'의 'B'도 아니다. 반복해서 나오는 알파벳은 바로 'K'다. 얼른 생각하면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은데 왜 'K'가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일까? 혹시 그림책을 보다 나처럼 궁금한 분을 위해 미리 알려드린다. 알고보니 갈색을 러시아어로는 'korichneviy'라고 한단다. 바로 거기서 따온 첫 글자였다.


 혹시 도대체 어떤 이야기였길래 '갈색 아침 현상'마저 일으켰을까 궁금하실 분들이 계실 지도 모르겠다. 그 분들을위하여 이야기를 대략적으로 소개한다면 이러하다.


 갑자기 갈색 고양이만 살려두고 나머지는 모두 없애라는 정부의 명령이 떨어진다.



 군인들은 독약이 든 고기를 고양이에 나눠주고 고양이들은 거리에 픽픽 쓰려진다. 정부가 갑자기 그런 법을 만든 이유를 굳이 해명하자면 고양이가 너무 많아졌고 이런저런 실험을 해 보니 갈색 고양이가 도시에서 살기에 가장 알맞은 이유에서란다.



 '나'는 그 법령 때문에 사랑하는 검정색 고양이를 잃어야만 했다. 얼마 후, 갈색 개만 살려두라는 법이 제정되었다며 그 법 때문에 자신의 개를 안락사시켰다는 친구 샤를리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말에 사랑하는 고양이를 잃어야 했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난다. '나'만 이렇게 이상하고 불안하고 두렵고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다. 샤를리를 비롯해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 또한 갈색만을 허락하는 그 법에 차츰 순응해 간다. 정부는 갈색 고양이, 갈색 개에 이어 정부의 "갈색 법"을 비판한 "거리 일보"를 폐간시키고, 정부 비판을 하는 출판사를 하나둘 폐쇄시킨다. 언론 통제는 독재 정부가 거치는 필수 과정인 게 분명하다. 독재 정부는 국민의 비판할 권리, 알 권리를 모두 앗아간다.



 도시 전체는 이제 완전 갈색 뿐이다.

전혀 아름답지 않다.


 

  이제  대다수의 국민들은 "갈색 법"에 맞춰 산다. 갈색 개를 사들이고, 갈색 고양이를 기르고, 갈색 우유를 마시며, 말할 때마다 "갈색"을 넣으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 '나'도 처음에 가졌던 불안감을 애써 떨쳐 버리려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주문을 건다. 

"이렇게 세상이 돌아가는 방향대로 순순히 따르기만 한다면, 언제까지나 마음 편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과연 그 주문대로 '나'는 평안히 일상을 누릴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나'의 소망과 믿음은 하루아침에 박살나고 만다.



 갑자기 군인들이 전에 기르던 고양이 색깔을 문제 삼으며 갈색이 아닌 동물을 길렀던 사람을 마구 잡아가기 시작한 거다. 정부가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순응하며 살면 아무 문제 없을 거라는 '나'의 생각은 완전 빗나갔다. 이웃은 '나'가 예전에 검정색 고양이를 길렀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웃이 고발하면 잡혀갈 수밖에 없다. '나'는 몰래 아파트를 빠져 나와 거리로 나온다.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우리가 어리석었어요. 그들이 처음 갈색 법을 만들었을 때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눈치 챘어야 해요.

우리 모두 아무 말도 못하고 법을 따르기만 했어요.

그때 그들에게 맞서야 했어요.

하지만 어떻게요? 모든 것이 이렇게 빨리 움직이고 있는데...

해야 할 일도 많고, 걱정거리도 산더미 같은데...

나만 침묵하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들도 조용히 살겠다고 그저 보기만 하고 있잖아요.

안 그래요?"


'나'의 절규가 정말 생생하게 들려온다.

우리 모두가 저지르는 어리석음이기도 하고, 후회이기도 하며, 책임 전가이기도 하다. 갈색 법을 처음 만들었을 때 서로 눈치만 보지 말고 다같이 힘을 합쳐 정부에 저항하였다면 이 지경까지 되지 않았을 텐데...

결국 침묵하는 자는 고스란히 그 댓가를 받게 되어 있다.


 그림책도 멋졌지만 역사 의식, 사회 의식이 투철한 박상률 작가의 추천사 또한 정말 훌륭하다. 

옮겨 적고 싶은 좋은 말이 많이 있어 2-3번 반복해서 읽었다.

"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가 아니라 일상이라고 합니다. 일상을 누리는 것이 곧 평화이니까요" 말로 추천사를 시작한다. 내가 좋아하는 니묄러의 시도 인용하고 있다.

" 나치가 유대인을 잡아갈 때/ 나는 유대인이 아니어서 모른 체했고 

나치가 가톨릭을 박해할 때/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서 모른 체했고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가둘 때/ 나는 당원이 아니어서 모른 체했고

나치가 노동종합원을 잡아갈 때/ 나는 조합원이 아니어서 모른 체했지

그들이 막상 내 집 문 앞에 들이닥쳤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주는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도 선거 무렵이었던 듯하다. 투표를 독려하는 사람이 이 시를 인용하여 결코 침묵하지 말자고 하던 기억이 난다. 처음 읽었을 때 그 강한 찔림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적어도 부조리에 침묵하며 살지 말자 다짐했었다. 내 일, 내 가족뿐 아니라 좀더 시야를 확장하여 이웃, 사회, 나라, 지구촌 일에도 관심을 가지자 다짐했었다. 지금도 많이 역부족이나 침묵하는 자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 중 하나로 양심을 일깨워주는 좋은 책을 소개하고 알리는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한다.


 추천사에 실린 내용 중 하나를 더 소개하고 리뷰를 마치려고 한다. 박상률 작가는 나치 주범이었던 "칼 아돌프 아이히만"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사람 이야기를 듣고 인터넷 검색해서 사진을 찾아보고 정말 놀랐었다. 정말 순하게 생긴 이 사람이 유태인 학살의 주범이라니... 믿음이 투철하고 성실하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깨닫게 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 아이히만은 아주 평범하고 성실하기 짝이 없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무지막지한 학살의 주범이 되었을까요?

그는 아무 생각없이 조직의 명령에만 따랐습니다.

그가 한 번이라도 스스로 판단하여 '이건 아니야' 라고 말했다면 나치의 손발이 되지는 않았겠지요."


 때로는 침묵이 동조와 찬성의 의미로 해석되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림책에서도 다수의 침묵이 갈색 법에 동조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정부는 점점 더 강력한 독재를 펼친다. 지금 우리의 침묵 또한 악법과 부조리에 찬성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흉악한 일에 이용될지 모를 일이다. 학교, 직장, 사회, 나라,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일에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니묄러의 시처럼 정작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아무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저항만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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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1 08: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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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1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