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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와 타우타우씨
우메다 순사쿠 & 우메다 요시코 지음, 조세진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9월
평점 :
우메타 순사쿠의 전작<모르는 척>을 봤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후로 우메타 순사쿠는 눈여겨 보는 작가 중의 한 명이 되었다.
이번에 그가 그린 그림책 <14세와 타우타우씨>또한 <모르는 척>과 일관되게 학교 폭력을 다루고 있다.
학교 폭력이 더 이상 놀랍지도 않은 요즘이다.
얼마 전에는 백화점 고객이 판매원과 아르바이트생을 폭행한 일도 있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폭력은 더 이상 뉴스 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이유는
폭력이 더 이상 놀라운 기사 거리가 아니기는 하지만 근절되어야 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요시오는 너무나 무섭다는 그 존재, 14세 즉 중2다.
우스개 소리로 외계인이 중2 때문에 지구를 못 쳐들어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요시오의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돌연히 잠적하기 전까지 요시오는 그냥저냥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잠적 때문에 모든 게 달라졌다.
우선 집 분위기가 싸해졌다.
학교에서 이케지 패거리가 요시오를 타켓으로 삼은 것도 그즈음이다.
요시오는 칠판에 자신과 부모님에 관한 몹쓸 낙서를 해 놓은 것을 발견하고
그 동안 억눌렀던 마그마가 폭발하고 만다.
대걸레를 들고 유리창을 박살낸 것이다.
학교 샘들에게 있어서 이 사건은 누가 원인 제공을 하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사건으로 한순간에 요시오는 문제아(?)로 낙인 찍히고 겉돌게 된다.
유리창을 박살내고 쓰러진 요시오가 얼마간의 요양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조금만 더 따뜻하게 맞아줬다면 좋았을텐데
학교는 그렇지 않았다.
"히틀러"라 불리는 학교 주임 샘의 가혹한 폭력을 끝으로 요시오는 학교를 스스로 박차고 나온다.
학교는 요시오에게 오히려 상처만 준 곳이었다.
하지만
갈팡질팡,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요시오를 붙잡아 주는 존재도 있었다.
바로 요시오의 할아버지이다.
요시오가 폭력에 연루되었을 때, 자퇴를 결심했을 때 모두 요시오 편에서 손자를 이해해주는 멋진 할아버지이다.
" 할아버지처럼 칠십 년 넘게 살다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이삼년쯤 늦는다고 해서 어떻게 되는 건 아니란 걸 알게 된단다." 이렇게 말해준다.
"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살다보면 생각도 자유로와지고 마음도 튼튼해질 수 있거든"
요시오를 다독여주는 또 한 사람이 바로 타우타우씨이다.
타우타우씨는 독특한 사람이다.
아이처럼 순진하기도 하고, 바보 같기도 하고, 거지 같기도 하고....
그 타우타우씨가 갈 곳 없는 요시오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거다.
결정적으로 요시오가 폭력배들에게 두들겨 맞을 때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타우타우씨가 온몸을 던져 자신을 구해준 사건을 계기로 더욱 마음 속으로 타우타우씨를 아끼게 된다.
타우타우씨 덕분에 위험에서 빠져나온 요시오는
후에 타우타우씨가 누군가에게 얻어맞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들과 통쾌하게 복수를 해 주기도 한다.
학교에서 쫓겨나 일순간에 문제아가 되어버린 14세 소년 요시오와
겨우 이름만 알 뿐 하는 행동을 보면 바보 같기도 하고 천사 같기도 한 타우타우씨의 이야기는
거칠면서도 아름다운 우메타 순사쿠의 그림과 함께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첫째 학교가 안고 있는 문제이다. 학교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이 안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요시오의 폭력 사건만 봐도 문제 제공은 이케지 패거리가 제공한 것인데도 결과만 놓고 요시오만 추궁하고, 벌을 준다.
게다가 히틀러 샘이 요시오에게 한 폭력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이런 모습이 아직도 학교에 존재하기에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를 직시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해결책이 있는 법.
요시오가 초등학생 때이다.
이케지 패거리의 대장 이케지 엄마는
폭력 문제 때문에 이케지를 벌주려고 하자 학교를 찾아와 이런 말을 한다.
" 집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아주 깍듯하고 배려심도 많은 아이라구요. 아무 부족함 없이, 구김살 없이 키웠어요.
다소 사소한 문제가 있다손 쳐도, 그건 아이 나름의 개성 아닌가요?"
어떤 것이 부모로서 정말 올바른 길을 가는 것인지 다함께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이 때 엄마가 이케지를 다른 식으로 훈육하였다면 이케지의 행동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엄마의 변호로 인해 처벌받지 않은 이케지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약한 친구를 괴롭히고 있었다.
초등 때 요시오의 담임이었던 "곰보" 선생은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책을 읽어주곤 하였단다.
책을 읽어줄 당시는 아이의 마음이 순화된 듯하였지만 아이들은 이케지 패거리가 달라지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나 보다.
여전히 이케지를 비롯한 아이들은 약한 아이를 괴롭혔고 결국 한 아이가 교실을 떠났다고 한다.
이 일은 담임이었던 곰보 선생에게도 목격자였던 요시오에게도 잊혀지지 않고 하나의 상처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곰보 선생이 느꼈을 절망이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써 충분히 공감된다.
그런 복잡한 심경을 요시오의 담임이자 곰보 선생의 후배인 마릴린은 이렇게 표현한다.
" 부모들은 자기 자식 성적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해.
어떻게든 고등학교에만 들어가면 된다는 거지.
학생들은 어린애나 다름없고,
자기 뜻대로만 하려고 떼쓰는 철부지 어린애들 말이야.
그리고 우리 교사들은 이상과 현실이 점점 더 어긋나는 상황에 무력감을 느끼고..."
그렇다. 어쩌면 지금 우리 학교의 현실과 이리도 똑같은지...
학교의 주체인 학생, 학부모, 교사가 점점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헤매고 헐뜯고 있는 사이 교육은 정말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
그 속에서 각자의 무력감, 절망감만 심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는 사이 이케지와 요시오 같은 아이가 계속해서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요시오는 자신을 버린 학교에서가 아니라 학교 밖에서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참 씁쓸하지만 밖에서라도 찾을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할아버지, 할머니, 곰보 선생, 자신이 짝사랑하던 선배 누나, 그리고 무엇보다 타우타우씨가 해답을 찾도록 도움을 준다.
그가 찾은 해답은 무엇일까?
요시오의 초6담임이었던 공보 선생이 이런 말을 남긴다.
" 도망가서는 안 된다. 자신의 불안을 자신이 끌어안아야 한다"
어쩌면 이 말 속에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시오는 비록 학교를 스스로 나왔지만 결코 실패자가 아니다.
할아버지의 말대로 2-3년 뒤진다고 인생에서 뒤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 증거로 그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기억해냈고 다시 하게 되었으며
초등학교 이후 쓰지 않던 일기를 쓰게 되었다는 걸로 알 수 있다.
아버지의 잠적으로 인해
유리창 박살 사건으로 인해
학교 자퇴로 인해
아니 질풍노도 14세에 벌어진 일련의 모든 일을 통해
요시오의 마음이 더 단단해졌다고 생각한다.
지금
요시오와 같은 고민을 안고 있고, 남과 다른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말을 들려 주고 싶다.
요시오의 할머니가 마릴린 샘에게 하신 말씀이다.
" 싹이 금세 트는 게 있는가 하면, 천천히 느긋하게 올라오는 것도 있지요.
아무리 마음을 졸여도 필요한 시간을 채워야 싹이 나온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