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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동 사거리 만복전파사 ㅣ 반달문고 33
김려령 지음, 조승연 그림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완득이>의 저자 김려령 작가가 오래된 전파사를 무대로 한 동화를 가지고 돌아왔다. 작가의 명성 때문에 언제나 신작이 나오면 궁금한 터에 아들이 재밌게 읽길래 나도 읽어봤다.
이야기는 두 개의 큰 축으로 이어져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2대째 가업을 이어온 만복전파사의 아들 순주다.
첫째 번 이야기는 순주네가 여름 휴가를 떠나는 것으로 신나게 출발한다. 순주남매는 모처럼 떠나는 가족 여행에 들떠있지만 실은 다른 속내가 숨겨있었다. 이유인즉 만복전파사 건물이 재건축에 들어가게 되어 부득이 가게를 내어줘야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고민 끝에 부모님은 시골 생활을 하기로 결정하였고 여름 휴가를 빙자하여 장차 살게 될 집이며 동네를 둘러볼 참이었던 것이다. 처음엔 여름 휴가인 줄 알고 들떠 있던 순주였지만 이내 부모님의 속내를 알게되고선 시골 생활을 투덜대기 시작한다. 부모님이 잠깐 장을 보러 나간 사이, 철없는 동생은 벽난로를 보며 굴뚝으로 올라가고 이를 뒤따라 올라간 순주는 지붕 위에 연못이 있는 신기한 마을에 들어서게 된다. 지붕 위 신기한 마을에서 산타처럼 생긴 할아버지와 루돌프처럼 보이는 사슴을 만나면서 차츰 시골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게 된다.
둘째 번 이야기는 시골 생활도 나름 괜찮겠다 싶어진 순주가 다시 도시로 돌아와 전파사를 정리하면서 또 다른 신기한 마을을 경험하는 이야기이다. 전파사 폐업을 하게 되면서 오래된 카세트 하나를 친구 유동에게 선물하는데 친구와 카세트를 가지고 놀다 또 이상한 마을로 이동하게 된다. 이번에는 동화책에서 읽었던 자린 고비 할아버지를 만나 암행어사로 오인 받아 세상에 둘도 없는 구두쇠 자린 고비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는 이야기이다.
이와 같이 <탄탄통 사거리 만복 전파사>는 순주가 두 가지 신기한 마을을 체험하는 판타지 이야기이다. 첫째 순주가 간 "시골 별장 지붕 위 놀라운 마을"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짐작했겠지만 바로 산타이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순주처럼 산타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지어낸 이야기라든지, 부모가 산타역을 한다든지 하며 오히려 산타를 믿는 아이를 순진(?)하다 비웃으며 아이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순주도 산타를 믿지 않는 아이 중의 한 명이었다. 그런 순주가 시골 별장 지붕 위 마을에서 산타를 만나면서 달라진다. 반드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그 존재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산타를 믿지 않는, 아니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하는 이에게 작가는 이렇게 나즈막히 말한다.
" 에이 , 산타는 상상 속에 있는 할아버지잖아요" 만복이가 말하자
" 상상을 멋진 현실로 만드는 것은 각자의 몫이지."라고 산타는 대답한다. 작가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산타가 있네 없네로 갑론을박하는 아이를 보곤 한다. 굳이 산타의 존재를 믿는 아이에게 " 야, 이런 멍청아! 너의 부모가 산타야!" 라고 못을 박을 필요가 있을까.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각자의 몫일텐데 말이다. 전에 들었던 이야기 중에서 산타에 얽힌 이야기 하나가 있다. 어떤 뉴스 앵커가 " 산타는 없다"는 말을 하는 바람에 산타를 믿는 아이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에 한 아이가 편지를 보내 자신이 믿는 산타가 왜 없냐며 항의했다고 한다. 이 상황을 지켜본 어떤 저명한 사람이 산타가 없다고 말해버린 앵커의 경솔한 행동을 지적하며 아주 논리적인 글 한 편을 그 앵커에게 보냈다고 한다. 내용인즉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며 그렇담 앵커 자신부터 왜 산타가 없는지 그것부터 증명해 보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산타 말고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이 믿는 것이 생각해 보면 꽤 많다. 신도 그렇고, 양심도 그렇고, 기(에너지)도 그렇고, 외계인도 그렇고, 영혼도 그렇고.... 그것들이 다만 보이지 않는다고 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누가 감히 단언할 수 있을까! 존재 유무를 떠나 그건 상대방이 믿는 것에 대한 존중이자 배려라는 생각이 든다. 나만 맞고 너는 틀리다는 것은 큰 오만이라는 생각도 든다.
둘째 번 순주와 친구 유동이가 간 " 고장 난 시계 너머 신기한 마을"에서 만난 자린 고비 이야기는 "나눔"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순주는 만복전파사 정리를 하면서 오래된 카세트 하나를 친구 유동이에게 선물로 준다. 유동이와 놀면서 갑자기 시계 너머 신기한 마을로 가게 된 순주와 유동이는 자린 고비 영감과 손자 한돌이를 만나게 된다. 자린 고비의 손자 한돌이가 할아버지를 향해 하는 말은 결국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고 내가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할아버지께서는 부모님 돌아가신 뒤에 후회 말고 지금 효를 다하라 하셨습니다.
저는 이웃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떠난 뒤에 나누면 무엇하겠습니까?"
" 가난은 나라도 구하지 못한다 했다"
"할아버지라면 가난은 못 구해도 인심은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 인심?"
" 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사람들이 할아버지 묘에 침을 뱉을까 두렵습니다.
늘 나중에 베풀 거라 하셨는데 그날은 도대체 언제인지 궁금하옵니다 "
이 부분은 자린고비와 그의 손자 한돌이가 나눈 대화의 일부분이다.
여길 읽을 때 가슴이 저릿해져왔다.
어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근래 벌어진 갑질 사건 두 개를 다루었다. 프로가 끝나고나서 겁색어로 고 유일한 박사의 이름이 올라와있었다. 배금주의사상이 팽배해진 이래 돈이라는 권력을 가진 갑의 을에 대한 횡포는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었지만요즘 들어 벌어진 백화점 모녀 사건과 땅콩 회항 사건은 그 도가 지나치다는 느낌이 든다. 두 사건을 들은 많은 사람이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소위 돈(권력)을 많이 가진 그들이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노블레스 오빌리주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김만덕이나 경주 최부자, 유일한 박사처럼 자신의 재산을 다 털어 가난한 이웃을 도우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을도 사람답게 대해 달라는 것이 아닌가! 한돌이가 자린 고비 할아버지의 묘에 사람들이 침을 뱉을까 두렵다는 그 말이 귀에 쟁쟁거린다.
동화에서는 자린 고비 손자인데도 제대로 도덕성을 갖춘 한돌이 같은 아이가 나왔고 자린 고비 또한 마지막에 가난한 이웃을 위해 자신의 곳간을 풀었다고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만덕, 경주 최부자, 유일한 박사 같은 진정한 부자는 드문 듯하다. 자녀는 부모가 하는 대로 그대로 보고 배워 똑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백화점 모녀가 그렇고, 땅콩 회황 사건의 모 항공 오너 가족이 그렇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여기고 있다니...모 항공 직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진짜 가관이었다. 제왕이 따로 없다. 보는 내내 울화통이 치밀어오름을 간신히 참았다. 재판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지켜봐야 할 것이다.
순주네가 시골로 이사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 영감님이 덕을 많이 쌓고 가서, 순주네는 어딜 가도 잘 살 거야, 그런 게 다 후손한테 복을 주는 거거든" 하고 말이다.
계속 터지는 갑질 사건으로 인해 2015년 한 해도 너무 팍팍할 듯하여 마음이 칙칙했는데 그나마 이 책이 조그마한 위로가 되었다. 아무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