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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를거야, 내가 누군지 - 개정판 ㅣ 전통문화 그림책 솔거나라 11
김향금 지음, 이혜리 그림 / 보림 / 2006년 4월
평점 :
<우리나라>교과서에 탈춤 놀이가 나온다. 한삼을 끼고 하면 더 좋아할 텐데 학교에 없다해서 그냥 하다 나중에는 휴지를 뜯어서 한삼처럼 들고 했더니 아이들이 엄청 좋아했다. 휴지가 아깝긴 했지만 버리지 말고 나중에 코 풀 때 쓰라고 말해줬다. 동영상을 보고 따라하는데 아이들은 처음 배우는 동작인데도 제법 그럴싸하게 따라한다. 한민족의 피가 흐르는 게 확실하다. 불림, 고개잡이, 외사위, 양사위 동작을 간단하게 숙지하고 이 네 동작을 이어 만든 짤막한 탈춤을 따라하는데 엉덩이를 씰룩대며 하는 모습이 정말 귀엽고 예쁘다. 1학년은 무엇이나 열심히 해서 참 예쁘다. 그게 매력이다. 우리 무의식 속에 우리 결이 살아 있는데 이걸 지켜주고, 발전시켜 주고,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게 어른의 몫일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5교시인 날이라 탈춤 관련 그림책 한 권을 읽어줬다. 솔거나라 시리즈 중에 <아무도 모를 거야, 내가 누군지>라는 책이 있다. 내용도 재밌고 어렵지 않아 아이들이 충분히 좋아할만한 책이다. 오전에 탈춤의 유래도 배우고, 탈춤도 춰봐서 아이들은 흥미있어 하였다.
맞벌이 가정인 건이네는 아침마다 전쟁이다. 아마 우리 나라 모든 맞벌이 가정이 건이 집 같을 게다. 생각다 못해 건이 부모님은 외가에 건이를 한 달 간 맡기기로 한다. 건이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말이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건 어쩌면 부모로서 저지른 일방적인 결정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10밤씩 세 번 자면 데리러 온다던 부모님이 오시지 않아 건이는 잔뜩 심술이 나서 할머지 집에 있는 모든 것에 장난을 쳐놨다. 이 장면은 참 우스꽝스럽다. 그 우스광스러운 장면 속에 부모를 원망하고, 부모를 그리워하는 건이의 마음이 잘 녹여져 있어서 웃기면서도 슬픈 장면이다. 얼마나 부모가 보고 싶었으면....아이가 문제 행동을 하면 그 단면만 보지 말고, 왜 그런 일을 했을까 부터 생각해 보라는 말이 떠올랐다. 일단 장난은 쳤는데 뒷감당이 겁이 난 건이는 다락방에 숨어든다. 그 때 거기서 옛날 물건들과 조우하게 된다. 어른들께 혼 날 게 두려웠던 건이는 탈을 쓰면 " 아무도 모를 거야, 내가 누군지...'라고 생각하며 이 탈 저 탈을 써 보며 재미나게 논다. 진짜 탈을 쓰면 아무도 모를까, 내가 누군지? 독자는 건이와 함께 여러 탈을 쓰면서 탈의 종류를 알게 된다. 네눈박이 탈, 소탈, 각시탈, 말뚝박이탈, 양반탈, 할미탈 등등.
탈은 원시 시대부터 있었지만 탈춤은 조선 시대 후기에 들어서면서 서민을 괴롭히던 양반을 놀려주기 시작하면서 정착되었다고 한다. 서민의 등골을 빨아먹던 양반, 탐관 오리를 혼내 줄 수도, 자신들의 억울함을 마음껏 호소할 수도 없었던 시대에, 힘 없는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탈을 쓴 채로 양반들을 실컷 골려 주는 일이었다는 게다. 지금은 어떤가! 탈이 필요없는 시대일까. 탈이 없어도 소외계층, 약자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해결해 주는 평등한 시대인가.
얼마 전 강남 모 아파트 경비원이 분신 자살한 일이 있었다. 그 자살을 놓고 아파트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고 하여 모든 경비원을 해고시켰다고 한다. 조선 시대 양반이라는 신분으로 아랫 신분 사람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한 거나, 자본이라는 힘으로 약자를 짓밟는 것이나 매한가지가 아닐까 싶다. 또 한 이야기를 들었다. 모처에서 장애인은 장애인 전용 주차장을 사용하려면 비용을 더 내라는 것- 정작 그 장애인은 비장애인들인 주차를 하는 바람에 한 달에 두 번 밖에 주차를 못했다고 한다-이었다. 두 이야기 모두 자신이 갖고 있는 "힘"을 이용한 약자에 대한 횡포라고 생각한다. 조선 시대 뿐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힘"을 가진 자들의 약자에 대한 횡포는 계속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탈을 쓰고 "갑"을 놀려주면 마음이라도 후련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