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교내 독서토론대회가 있었다. 작년에는 5-6학년이 함께했는데 수준 차가 난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올해에는 따로 시행하였다.  하고보니 잘한 결정이었다 싶다.1년 차가 참 컸다. 몸이 둘이 아니라서 각 학년 독서 담당 선생님들이 대부분 진행하셨다. 난 전체적인 주관을 하고 기안 올리고 결재를 맡았을 뿐. 누구 말처럼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격이다.

 

  처음으로 독서토론하는 것을 직접 참관하였다. 독서토론은 그냥 토론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말 그대로 책을 읽고 그 바운더리 안에서 논제를 정하고 토론을 하는 것이다. 5학년은 <홍길동전>을 읽고 " 홍길동은 처벌 받아야 하는가?" 라는 논제로 찬반토론을 했다. 6학년은 그 동안 독서토론을 위해서 동일 주제를 다루고 있는 6권의 책을 읽었다. 그 6권의 책을 아우르는     "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가?" 논제로 원탁회의를 진행하였다. 전임지에서 후배가 진행하는 찬반토론을 본 적이 딱 한 번 있는데 독서토론은 아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 제대로 된 독서토론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영상을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생생한 현장감과 긴장감이 전해졌다. 아이들의 진지한 모습이 이뻤다. ㅎㅎㅎ

 

여희숙 선생님 말씀이 독서의 꽃은 토론이라고 하였는데 오늘 그 꽃이 활짝 피는 것을 봤다. 내가 토론자로 나서도 저렇게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할텐데 아이들은 참 잘했다. 5학년은 3인 1조로 각반 대표가 나와서 찬반 토론을 하였다. 홍길동은 처벌 받아야 한다는 찬성측과 처벌 받지 않아야 한다는 반대측 의견이 팽팽하였다.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엄격하게 시간을 지키며, 명확한 근거를 들어 논지를 펼쳤다. 상대측 질의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책 내용을 완전히 숙지하고 있어야 하며, 배경 지식 또한 풍부하여야 한다. 임기응변도 강해야 하고, 말주변도 있어야 하며, 상대측 공격에 흥분하지도 않아야 한다. 예의를 갖춰 토론에 임해야 한다. 5학년인데도 나름 준비를 많이 해 왔으며 상대측의 질문에 적절히 대답 하는 것을 보니 참 기특하였다. 지난 겨울, 독서 연수 받을 때 일대일 토론을 해봤는데 참 힘들었다. 유대인들이 아주 어려서부터 이렇게 토론을 하면서 자라는 걸로 알고 있다. 이렇게 일상을 토론하며 자라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게 분명하다. 자기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게 토론은 아니다. 타인의 주장과 근거도 자세히 들어야 하고, 예의 바른 태도를 갖춰야 하며, 내세우는 근거가 명확하고 말 또한 조리 있게 해야 한다. 토론하는 동안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생각이 바뀐 것에 대해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화를 낼 필요도 없다. 우리는 정치판에서 여야의원이 서로 핏대 세우며 욕설을 가끔 섞어가며 때로는 폭력도 행사하면서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는 모습만 봤다. 하여 토론은 해서 뭐하나! 다 쓸데 없는 말장난이지 하는 마음이 없잖아 있는데 과연 그럴까. 아이들의 토론을 들으면서 나도 계속 생각해봤다.  홍길동은 처벌 받아야 하나?  처벌 받지 않아야 하나?  "하얀 거짓말"도 알고,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소크라테스가 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만큼 아이들은 나름 준비를 철저히 해왔다. 이 토론대회에 나온 아이들은 준비하는 과정, 토론 과정을 통해 한층 업그레이드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6학년은 원탁토론이었다. 2인 1조로 이뤄졌고 한 팀이 입론을 펼치면 나머지 5팀이 질의하고 응답하는 형식이었다.  찬반토론은 워낙 많이 하기 때문에 익숙한데 원탁토론은 어떻게 하나 매우 궁금하였다. 이 토론을 하기 위해 6학년 선생님이 한 권씩 책을 담당하여 각반을 돌아가면서 독서 수업을 하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이번 논제 " 어떤 삶이 가치 있는 것인가?" 는 아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다. 4권의 책이 생각이 안 난다. 기억력 감퇴다.

목적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는 삶이 가치 있다는 의견도 있었고,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 정당하게 돈을 쓰는 삶이 가치 있다는 의견, 서로 돕는 삶이 가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나머지 세 팀은 어떤 의견을 내놓았을까! (5학년 구경하느라 나머지 세 팀 의견은 놓쳤다.) 한 팀이 자신이 가치 있게 생각하는 삶을 말하고, 그 근거를 제시하여 말하면 나머지 다른 팀이 거기에 반박하거나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이에 답하는 형식이었다. 질문과 응답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 토론대회를 준비하고 본선에 진출한 아이는 이 대회를 통해 한층 성장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다른 팀의 의견을 들으면서 내 생각을 수정, 보완하기도 하고, 내 근거의 오류를 스스로 발견하기도 하고 말이다. 왜 여희숙 선생님이 토론이 독서의 꽃이라고 했는지 절감한 날이었다.

 

  기성세대는 토론 문화에서 자라지 못해 토론이라 하면 무조건 비난,  말싸움, 상대 헐뜯기 등의 부정적 인식이 강한 편이다. 토론을 버거워하고 토론에 익숙하지 않아 의견에 반대하는 것인데 자신에 대해 어깃장을 놓는 거라 여기고 감정 싸움으로 발전하는 예가 비일비재하다. 토론하다 언성이 높아지고 삿대질을 해대는 것도 자신에 대해 공격을 한다는 느낌을 받아서이다. 그래서 기성세대는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더 나은 의견을 도출해 내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의견이 소중한 만큼 남의 의견 또한 귀담아 든는 자세가 필요한데 말이다.  미래를 책임질 우리 아이는 일찍부터 토론 문화를 접해보고 이왕이면 독서처럼 토론을 즐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론을 통해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고, 그 안에서 소통을 배우고, 예절과 배려를 배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토론이야말로 민주 시민의 양식을 배우고 훈련할 수 있는 좋은 교육의 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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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11-29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5.6학년이 이런 토론을 했단 말이죠? 대단하네요~ ^^
우리구에서는 성인들이 독서토론대회를 합니다. 올해로 두번째...
12월 1일이던가~
주민투표로 선정된<위대한 유산>을 텍스트로 하는데 구경 가볼려고요.^^

수퍼남매맘 2014-12-01 18:33   좋아요 0 | URL
성인 독서토론도 흥미 있네요. 무엇이든지 앞서 가는 빛고을입니다.

기성 세대는 토론 문화에서 자라지 못했어도
지금 학생들만큼이라도 토론 문화에서 자라도록 사회가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14-11-29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01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02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