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 잠귀가 밝아 조그마한 소리에도 깨고 특히 밖에 나오면 잠을 설친다. 역시 다른 식구들은 쿨쿨 자는데 혼자 일찍 잠이 깼다. 우리 집보다 따듯하게 자서 한결 몸이 풀려 있었다. 지난 번 학교 산행 대회로 워밍업을 해서인지 생각보다 다리 근육도 안 뭉치고 컨디션이 괜찮았다. 아들이 문제다. 이 녀석 약골인데.....

 

  어제는 날씨가 엄청 쾌청하였는데 오늘은 날이 꾸물꾸물 비라도 올 듯하다. 첫 코스로 "화암 동굴"을 잡았다. 100배 즐기기 책에서 추천한 장소라 거기부터 가자고 하였다. 화암 동굴까지 가는데 굽이굽이 고개를 넘어야했다. 어제는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도로 바로 옆으로 강이 흐르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거기가 동강이었다. 와! 동강에 꼭 와보고 싶었는데....운전하느라 제대로 볼 수 없었고 진짜 구불구불 위험한 곳이 여러 번 있었다. 운무도 무섭지만 급커브도 무섭다.

 

  " 화암 동굴"에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없어서 예매할 필요가 없었다. 일단 아침을 먹고 표를 사기로 하였다. 즐비한 식당 중에서 어느 집을 고를지 딸에게 맡겼다. 딸이 고른 집이 문을 닫아서 바로 옆집에 들어가려는데 하얀 고양이가 있어서 남매의 마음을 단숨에 빼앗았다. 식당 주인 말이 고양이 5마리가 있다고 하여 찾아나섰다. 어느틈에 숨어버린 고양이는 코빼기도 안 보였다. 실망한 울 아들. 우린 고양이가 아니라 동굴을 보러 온 건데.... 정선에 별미가 곤드레밥이었던 게 기억나서 그걸 시켰다. 맛있었다. " 대한민국 100배 즐기기"책에는 맛집도 다 나와있는데 안 가져와서 안타까웠다. 무작정 들어간 집인데도 맛있었다. 역시 꽃을 가꾸는 분이라서 음식 맛도 좋은가 싶었다.  남매가 하도 고양이 타령을 하니 하나 아니 다섯 마리 다 가져가도 된다고 하셨다. 가져가면 온이가 잡아 먹거나 아님 도망다닐 거다.

 

  모노레일 승차 시각이 조금 여유 있어서 커피 한 잔 마시러 돌아다니다 드디어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 4마리 있는 곳을 발견하였다. 남매가 정말 좋아하였다. 정말 귀여운 양이들이었다. 우리 온이를 처음 만나던 그 정도의 크기였다. 목소리도 얼마나 가냘프고 이쁜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양이들 노는 것을 지켜봤다. 남매는 한 마리 가져가자고 하였지만 단호히 거절하였다. 온이가 잡아 먹일지도 몰라.

 

  양이들 구경하느라 모노레일을 꼴찌로 탔다. 동굴까지 올라가는 건데 엄청 경사가 급했다.  화암 동굴은 원래 5째로 큰 금광이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노다지였던 셈이다. 초등학생 때 내 별명이 노다지였는데.... 생각보다 코스가 길어서 아들은 좀 힘들어했다. 우리도 그렇게 오래 걸을 줄 몰랐다. 주차장 크기로 봤을 때 성수기에는 사람이 엄청 밀리나본데 오늘은 썰렁해서 구경하기는 좋았다. 아니 우리 뒤로 사람이 아무도 없어 조금 으시시했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종유석이라고 할 수 있다. 커텐 처럼 생긴 종유석도 있었는데 장관이었다. 또 굴을 파다가 발견한 여러 모양의 돌들도 볼만하였다. 공룡 모양 돌, 강아지 모양 돌,  남근 모양 돌 등도 있었다. 갱이 거의 수직으로 되어 있던데 이걸 파느라 얼마나 많은 조선의 노동자들이 죽고 다쳤을까 싶었다. 규모로 봤을 때 엄청난 금이 나왔을 법하다. 금을 판 사람은 하나도 못 갖고 다른 사람이 모두 가져갔겠지.

 

  화암동굴이 예상보다 긴 코스여서 아들이 매우 힘들어하였다. 어디로 갈까 하다가 좀 쉬운 코스를 잡았다.  방송에 나왔던 "스카이 워크"를 가보기로 하였다. 그 옆에 " 짚 와이어"가 있어 딸이 하고 싶다고 하길래 아빠랑 타라고 둘만 보냈다. 무려 1인당 4만원이라는 소리에 되돌아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다른 곳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보라고 권유했다. 짚 와이어 타고 동강을 보는 건데 나중에 후회 말고 하라고 자꾸 부추겼다. 유럽에서 느낀 것이 나중에 하자, 돈 아까우니 관두자 하면 기필코 후회한다는 것이다. 이럴 땐 과감히 저질러야 한다. 나와 아들은 무서워서 못 타는 것이지만 부녀는 담력이 되니 돈 때문에 관두지는 말라고 조언했다. 둘은 내 설득에 타기로 정하고 표를 끊어 왔다.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햄버거를 먹었다. 기다리면서 화암 동굴에서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하였다. 이럴 때 에스프레소를 먹으면 피로가 쫙 풀린다. 에스프레소도 자주 먹어보니 먹을 만하다. 커피가 먹고 싶은데 배가 부를 때 먹으면 딱이다. 배 부르지 않으면서 순식간에 카페인이 들어가 피로감이 달아난다. 신기하다.  52분에 짚 와이어를 탄다고 하여 동영상 준비를 안 하고 있었는데 35분쯤에 인상착의가 비슷한 둘이 짚와이어를 타고 내려가는 게 보였다. " 어" 하는 사이에 슈~웅 하고 내려가 아무것도 못 찍었다. 왜 일찍 내려갔지? 앞 사람이 무섭다고 포기했나. 짚 와이어 도착점은 차로 20분을 가야 한다. 셔틀버스가 도착점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출발점으로 데려다 준다고 한다. 부녀는 아마 번지 점프로 할 수 있을 거다. 용감한 부녀다. 우리 가족 사진은 못 찍고, 비어 있는 짚 와이어 사진은 겨우 한 장 찍었다. 순식간에 내려가서 찍기가 너무 힘들다.

 

 

짚 와이어 탑승권이 있으면 무료로 스카이 워크를 갈 수 있단다. 앗싸! 이번에 모자만 가보기로 하였다. 갑자기 바람이 거세지고 한 두 방울 비가 오기 시작하였다. 두꺼운 외투를 가져오길 잘했다. 마침 MBC에서 촬영을 하고 있어서 입장이 좀 지연되었다. 유리라서 생채기가 날까 봐 덧신을 신고 들어갔다. 방송에서 볼 때는 무서워보였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동강이 잘 보였다.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아들과 함께한 사진을 찍었다. 그림책 "동강의 아이들"이 생각나서 거기에 나온 희귀한  바위를 직접 보고 싶어졌지만 날도 흐리고 해서 마음을 접었다. 동강이 유명세를 타서 청정 지역이 많이 오염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아름답다고 소문이 나면 너도나도 구경오는 바람에 오염되니 차라리 유명해지지 않는 게 자연으로서는 더 나을 듯 싶기도 하다.

 

  정한 코스는 다 간 듯하여 캠프장으로 향하던 중 우연히 정선 아리랑 축제를 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남편이 가보자고 하여 따랐다. 섶다리도 보이고, 은근 행사가 컸다. 한우 부스가 있어 바베큐할 거리를 살까하고 들어갔는데 가격이 싸지 않아 발길을 돌렸다. 우리가 갔을 때는 막바지여서 문 닫은 곳도 여럿 있었지만 축제 분위기는 고스란히 전해졌다. 여러 나라 문화도 선보였는데 마침 에콰도르 팀이 민속 음악을 연주하고 있어 구경을 잘했다. 딸이 악몽을 쫓아준다는 "드림 캐처"-상속자에서 나왔다나 어쨌다나-를 사고싶다 하여 축제에 온 기념으로 남매에게 하나씩 사줬다. 바로 옆에서 인도 옷을 팔고 있어 인도 치마를 하나 사고 싶었으나 꾸욱 참았다.  멕시코 부스에서 코코넛을 본 딸이 먹고 싶어하여 한번도 맛을 보지 못한 아들을 위해 하나씩 사줬다. 코코넛을 먹어본 아들은 별로 맛이 없었던지 한모금 마시고 아빠에게 넘겼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정선 관광지마다 보이던 "수리취떡" 판매 부스가 보였다. 도대체 수리취떡이 뭐길래 가는 곳마다 판매를 할까 싶어 시식을 해 봤다.  수리취떡은 단오날 먹는 떡으로 알고 있었는데 내 기억이 맞았다. 남편도 모르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니. 흐하하!!! 서울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떡이다 싶어 이것도 기념으로 샀다. 마침 가판대 뒤에 수리취가 자라고 있어 사진으로 찍어왔다. 저만치 가니 무료로 페이스 페인팅을 해주고 있어 딸은 뺨에 들국화를, 아들은 손에 용을 그렸다. 몇 걸음 옮기니 사격장이 보여 아들을 부추겨서 한번 해보라고 했다. 10발을 쏘는데 처음 해 보는 거라 명중은 거의 못했지만 그것도 경험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지방에는 이런 축제들이 있어서 그나마 "마을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곳곳에서 쓰레기 줍는 봉사활동을 하는 중고등학생들도 보였다. 딸이 " 우리도 저런 축제 하면 좋을 텐데...." 그랬다. " 그러게 말이다. 관심이 비슷한 아이끼리 모여 부스도 만들고 직접 물건도 팔고 공연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 좋을 텐데..... 그게 살아 있는 교육이고 진로 지도가 될 터인데 말이다. 아무튼 우연히 들어간 " 아리랑 축제"는 생각보다 내실 있고 즐거웠다. 마지막 섶다리를 밟아 보는 것으로 축제 관람을 마치고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어제 해먹지 못한 숯불구이를 하기 위해 주인장에게 도구를 얻었다.  초보 캠퍼인 남편과 나 모두 숯을 피우지 못해 결국 주인장의 도움을 받고서야 불이 올라왔다. 지난 번 파주에서 비싼 등심, 안심, 채끝을 먹은 터라 여기서는 돼지 목살로 만족하자고 하였다. 아까 마트에서 애들이 별로 안 좋아하는 듯하여 소시지를 안 샀더니 막상 고기를 굽자 소시지를 찾는다. 그 후로도 초보티를 팍팍 낸 사건이 있다. 뭐냐하면 고구마를 구워 먹으려고 장작을 넣는데 수직으로 내리꽂아 놓은 것이다. 남편은  내가 자신 있게 하는 걸 보고 맞나보다 하였단다. 둘은 하염없이 장작이 타길 기다렸으나 전혀 탈 생각은 안 하고 연기만 심하게 피어올라 또 주인장을 호출하였다. 장작 꽂아 놓은 걸 보시더니 "껄껄껄" 웃으시면서 " 이렇게 놓으면 연기만 나고 나무가  안 탑니다. " 하신다. 완전 창피하였다. 지난 번 카라반에서 모닥불 피어줄 때 장작을 켜켜이 쌓아놨던 걸 봤으면서 어쩜 널찍하게 수직으로 꽂아놨을까! 진짜 무지하다. 

 

  장작에서 "타닥타닥"소리가 나며 불이 붙기 시작할 때, 방송에서 " 담력 체험할 사람은 매점 앞으로 모이십시오" 하는 안내가 나왔다. 어제는 안 했는데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담력 체험을 하나 싶어 아들에게 해 보라고 하였다. 아들은 하고 싶기도 하지만 무섭기도 하여 턱을 덜덜 떨기 시작하였다. 괜히 하라고 했나. 원래 중학생은 참가 못하는데 보디 가드로 누나를 딸려 보내기로 하였다. 누나가 있어도 진정이 안 되는지 아들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5-6살 꼬마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도전하는데... 하여튼 못 말려.  30여 명 아이가 담력 체험을 시작하였다. 페트병으로 만든 초롱불을 들고 폐가까지 가는 행렬이 멋졌다.  장작불 피우는 남편한데 들키지 않게 멀리 떨어져 일행을 뒤쫓아 가보라고 하였다. 다른 아빠들도 몇 명 쫓아가는 듯했다. 혹시 아들이 너무 무서워 기절할까 봐서 말이다. 어제 캠핑장 올 때보니 주변에 불빛이 하나도 없어 정말 무섭던데....무사귀환을 빌어야지.  장작불은 내 담당이 되었는데 자꾸 불이 꺼지려고 해서 애를 먹었다.  담력 체험단이 떠나자 캠핑장에 장작불 타는 소리와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만 들렸다. 고요가 20분 정도 지나자 갑자기 저 멀리서 재잘재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살아서 돌아온 모양이다. 딸과 아들이 화를 내며 들어왔다. 폐가에서 할아버지와 강아지를 못 봤다며 굉장히 아쉬워 하였다. 무서워서 벌벌 떨던 것은 잊은 듯했다. 미리 주인장이 할아버지와 짜서 체험단이 폐가에 왔을 때 강아지와 짠 하고 나타나기로 했었나 보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깜빡 잊고 안 나타나셨다는 게다. 호호호!!! 으시시할 줄 알았던 담력 체험은 약간 시시하게 끝났다. 남편은 깜깜해서 초롱불 없었으면 굉장히 무서웠을 거라고 한다.

 

  그 사이 익은 군고구마를 먹으며 하루를 마감하였다. 내일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첫날은 정말 강행군이라서 힘들었는데 둘째 날은 여유 있어 좋았다. 우연히 들어간 " 아리랑 축제"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지방의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아까 모닥불 피웠을 때 딸이 기타를 연주했으면 훨씬 낭만적이었을 텐데 아쉽다. 기타를 깜빡하고 안 챙겨왔다. 가까운 곳에 "별마로 천문대" 가 있어서 가 보려고 했는데 예약이 끝나버려서 그것도 놓쳤다. 유명한 곳이라고 하는데.... 천문대와 인연이 없는지 매번 기회가 안 된다. 내일은 집에 가면서 영월쪽 관광지를 둘러봐야 할 듯하다.  온이는 혼자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 추석 연휴, 시댁에 다녀왔더니 풍뎅이가 죽어 있었다. 그 때문에 아들이 자꾸 온이 걱정을 한다. 나도 걱정된다. 외로울 텐데...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10-21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