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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맥스 ㅣ 베틀북 그림책 105
데이비드 위즈너 글.그림, 김상미 옮김 / 베틀북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중1 딸이 친구2명과 함께 직업 체험을 하기 위해서 우리 교실을 방문하였다. 말이 직업 체험이지 중간 고사 보는 2,3학년 선배들 방해할까 봐 학교 밖으로 내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대신하여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라고 미션을 줬다. 딸이 읽어준 책은 데이비드 위즈너의 <아트 & 맥스>이다. 딸이 읽어주는 것을 들으면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다. 커다란 수확이었다. 그림책도 한 번 보고나서 덮어두지 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읽어야 이렇게 새로운 것을 깨닫게 되는 행운을 갖게 된다.
일단 글씨가 아주 적다. 책과 별로 가깝지 않은 친구들이 좋아할 만하다. 좋은 그림책은 그림만으로도 이해가 되어야 하는데 이 그림책이야말로 그렇다. 굳이 글씨를 읽지 않아도 이해가 쏙쏙 잘 된다. 그림으로는 이미 정평이 나 있는 데이비드 위즈너의 이번 그림은 3D 만화 영화를 보는 듯하다. 동물들의 익살 맞은 표정 또한 그림책에 빨려들게 한다.
사실적으로 그림을 잘 그리는 아트처럼 맥스도 그림을 그려보려고 하얀 캔버스를 마주한다. 하얀 캔버스를 본 아트는 그 순간,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야말로 머리가 하얘졌다. 가끔 그리기 시간에 교실을 한 바퀴 둘러보면 맥스처럼 하얀 종이 위에 무엇을 그려야할지 몰라 뚫어져라 쳐다만 보고 있는 아이를 보곤 한다. 아이의 표정에서 당혹감이 느껴진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처럼 그림을 잘 못 그리는 사람은 하얀 종이가 너무 두려운 존재다. 맥스도 그랬던 것 같다.
그림에 재능이 없는 맥스의 실수로 친구 아트가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진다. 친구를 예전처럼 되돌리기 위해서 맥스는 실로 아트의 몸을 만들어야 하고, 색을 입혀야 한다. 아까 하얀 캔버스 위에 아무 것도 그리지 못했던 맥스이건만 친구를 살리기 위해선 더 이상 주저할 수가 없다. 맥스가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아트의 형체를 만들고 색을 입힌다. 무엇을 그려야할까 고민하던 맥스는 사라지고 없다. 오직 친구를 되살려야 한다는 일념이 맥스를 예술가로 만든 기적 같은 순간인 셈이다. 맥스의 예술 행위로 재탄생한 아트도 전과 달라졌다. 아트의 그림이 그 증거다. 아트 역시 사진처럼 똑같이 그리던 그림에서 진일보하여 창의적인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친구란 아트와 맥스 같은 사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친구 뿐만 아니라 부부, 부모-자식, 스승-제자도 마찬가지이다. 나를 만나 상대가 업그레이드 되고, 나 또한 상대를 만나 업그레이드 될 수 있는 사이, 그런 사이라면 정말 좋겠다. 아트가 맥스를 만나 그림을 좀더 창의적으로 그리게 되고, 그림에 문외한이었던 맥스가 아트를 만나 그림에 눈 뜨게 되었다. 사람과의 관계는 모름지기 아트와 맥스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외적인 업그레이드가 아니더라도 좋다. 내가 그를 만나, 그가 나를 만나 어제보다 오늘 좀더 좋은 사람이 되었는가? " 네" 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 내 짝이, 모둠 친구가 나를 만나 업그레이드 될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하자" 고 힘 주어 말해줬다.
아트의 그림이 달라졌다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말해 준 것은 딸이었다. 딸이 말해주기 전까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사실 이 그림책을 3-4번은 읽었는데 말이다. 전에는 이 그림책이 우정을 다룬 그저 재밌는 그림책으로만 느껴졌는데 이번에 읽고나서 더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