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는 평북 정주 출신이다.
우리 어머니는 평남 평양 출신이다.
두 분의 고향은 북한땅에 있다.
피난 오고 나서 단 한번도 고향에 가 본적이 없으시다.
두 분 다 1.4 후퇴 때 피난 오셨다고 하니 60여 년 넘게 고향에 가 보지 못한 셈이다.
두 분은 아직도 고향 꿈을 꾸신다고 한다.
60년이 지났는데도 전쟁 이야기를 하실 때는 마치 어제 겪은 일인 듯 실감 나게 하신다.
듣고 있노라면 전쟁 영화를 보는 듯하다.
어릴 때부터 줄곧 부모님으로부터 피난 이야기며 전쟁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어떤 때는 속으로
'으~~ 저 레퍼토리는 언제 그칠까!' 생각한 적도 여러 번 있다.
아버지는 식기도할 때마다 고향에 두고 오신 가족과 평화 통일을 위해 기도하곤 하셨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철 없을 때는 어차피 통일도 안 될 텐데
왜 그리 똑같은 기도를 주문 외우듯이 하시나 불만도 있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두 분 모두 살아 생전에 꼭 고향땅을 밟아 보는 날이 왔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그 런 데 그게 가능할까?
내일이 6.25 전쟁 64주년이다. 내일이 6.25임을 기억하는 우리나라 국민이 얼마나 될까?
기사를 보니 6.25가 일제 식민지 때 이뤄진 일이라고 아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하니 진짜 안타깝다.
5교시에 한국 전쟁을 다룬 권정생 작가의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그림책을 읽어줬다.
동영상으로 한국 전쟁을 잠시 시청하고
전쟁 경위를 조금 설명해 줬다.
저학년이 혼자 읽기에는 이 그림책은 많이 어렵다. 글밥도 상당히 많다.
내가 안 읽어주면 아이들 스스로 읽을 것 같지 않아 이 책을 골랐다.
생소한 낱말도 많고, 글밥도 많기 때문에
역사적 배경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혼자 읽으면 십중 팔구 중간에서 책을 덮어버릴 지도 모른다.
하여 부모나 교사가 읽어주었으면 한다.
오늘 끝까지 다 읽어주지 못하였다. 이런저런 배경 설명하느라 시간을 많이 할애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6.25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이니 모두 설명해줘야 한다.
내일 시간이 되면 마저 읽어줘야겠다.
대동강 근처가 고향인 오푼돌이 아저씨와
함경도가 고향인 곰이는 30년 전에 총과 포탄에 맞아 숨졌다.
숨진 이들이 어떻게 대화를 하느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들은 이미 죽은 자들이다. 즉 귀신들이다.
고학년 아이들은 귀신이라는 말에 급관심을 가진다.
저학년은 무섭다는 아이가 있다.
한국전쟁 때 억울하게 죽은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는
치악산 골짜기에서 30년 동안 고향을 그리워하며 원혼으로 지내고 있다.
서로가 왜 죽었는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까지 진도가 나갔다.
곰이는 피난 나오다 전투기에서 쏟아붓는 포탄에 머리를 맞았고(겨우 아홉살이었다)
오푼돌이 아저씨는 국군과 대치하다 국군이 쏜 총알에 가슴을 맞았다.
30년째 그들은 그 모습 그대로이다.
오늘 이 그림책을 다시 읽어보니
권정생 작가가 참 문장을 잘 쓰시구나 새삼 느껴졌다.
예전에 정승각 그림 작가가
" 권 작가님의 문장은 그림 그리듯이 써져 있어 그대로 그리면 된다"고 하셨던 게 떠올랐다.
이 그림책도 마찬가지이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그림을 그리듯이 써져 있어 그림 작가는 별고민 없이 그리면 될 듯하다.
예를 들자면 문장이 이렇다.
"바윗덩어리가 여기저기 흩어진 으슥한 골짜기에 희끗희끗 남아 있던 눈이 말끔히 녹아 버렸습니다.
응달쪽 소나무 숲 사이로 분홍빛 진달래가 불을 밝히듯이 피어났습니다. "
게다가 이 그림책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이 담 작가가 그림 작업을 하셨다.
엊그제 파주 책잔치에 가서 이 담 작가 그림책이 눈에 들어와 얼른 사왔다.
정말 독보적인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시는 분이시다.
이 담 작가가 그리는 방법은 "왁스 페인팅"이라는 것인데
양초를 녹여 거기에 물감을 섞어 그린 후 철필로 긁어 내면서 형태를 잡는 것이다.
설명만 읽어도 얼마나 고되고 오랜 시간이 걸릴 지 짐작이 간다.
이 담 작가의 그림은 보고만 있어도 경외심이 생긴다. 일단 소장한 것만 담아보면 이렇다.
정말 좋아하는 두 작가의 합작품인 이 그림책이 진짜 좋다.
서슬퍼런 군사정권이 한창이던 때에
북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글을 쓴 권정생 작가의 용기는 다시 읽어봐도 정말 대단하다.
나 어릴 때는 북한 사람들은 모두 빨갛게 생긴 괴물이라고 배웠는데
지금 아이들은 아예 6.25 자체를 모른다.
둘 다 올바른 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되듯이
우리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치는 게 교사로서 나의 사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6.25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고, 수많은 이산가족이 존재하며,
휴전으로 인해 지금도 많은 젊은이들이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가슴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으려면 잊지 않아야 하고, 후대에게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이 책 말고 한국전쟁을 다룬 또 다른 그림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
도서실에 문의하였더니 도서실에 없다고 하여 주문을 넣었다.
1학년에게는 이 그림책이 더 이해하기 쉬울 지도 모르겠다.
이외에도 한국전쟁을 다룬 그림책이 더 있는데 기억이 안 난다. ㅠㅠ
내가 설명하기 힘든 아픈 역사는 그림책을 읽어주는 방법을 추천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