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아이들에게 권정생 작가 허구 그림의 <용구 삼촌>을 읽어줬다.

잘 보이는 곳에 이 책이 꽂혀 있는데

아이들 손길이 잘 안 가는 듯하여 내가 읽어줬다.

난 이 책 참말로 좋아하는데

왜 아이들 손길이 안 갔을까 하니 제법 글밥이 많다.

그림도 언뜻 보기에 아이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스타일일 수 있다.

(약간 무서워 보일 수 있다.)

난 개성 넘쳐서 좋던데....

 

용구 삼촌은 서른 살이지만 정신 연령은 다섯 살 정도이다.

흔히 말하는 바보이다.

바보 삼촌은 바로 옆에서 불러대도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문 채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런 삼촌이 잘하는 일이라곤 암소 누렁이를 밖으로 데려가 먹이를 먹이는 일인데

이 날 따라 해가 저물었는데 삼촌이 돌아오질 않는다.

암소 누렁이 혼자 돌아온다.

바보 용구 삼촌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화자인 경식이가 용구 삼촌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이 가슴 깊이 박힌다.

" 삼촌은 바보지만 새처럼 깨끗한 착한 마음씨를 가졌다"는 경식이의 말이 심금을 울린다.

서른 살 나이에 다섯 살의 지능을 가지고, 할 줄 아는 것이라고 소를 데려가 꼴을 먹이는 것 정도,

자기 이름을 불러도 대답 한번 제대로 못하고 벙어리처럼 사는 삼촌이지만 용구 삼촌은 착하다.

맛있는 게 있으면 자신이 먼저 먹지 않고 조카들 먼저 먹게 하고, 자신은 찌꺼기를 먹는다.

 

항상 내 옆에 있을 것 같던 사람이 사라지면 잘해 주지 못한 기억들이 비수가 되어 남는다.

그러지 말 것을.

좀더 잘해 줄 것을.

왜 그런 모진 말을 했던가.

사랑하기도 아까운 시간인데 왜 미워했을까 등등.

경식이네 가족도 삼촌이 사라진 그 날 저녁, 후회 가득이었을 테다.

맛있는 음식, 좋은 옷 한번 제대로 챙겨 주지 못한 그 일들이 가슴을 후벼팠을 테다.

 

도대체 삼촌은 어디 갔을까!

혹시 잘못 된 것은 아닐까!

나도 애 타는 마음으로 경식이 가족과 함께 삼촌을 이리저리 찾는다.

이 그림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경식이 가족이 삼촌이 혹시 못에 빠졌을까 봐

손전등을 깊숙하게 비추는 장면이다.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최고조에 달하는 장면이다.

붓 터치도 아주 강렬하다.

 

전에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이번에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 용구 삼촌의 모습이 바로 권정생 작가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평생 늘어진 윗옷과 기워 입은 바지에, 검정 고무신을 신은 모습이 권정생 작가와 흡사하다.

게다가 용구 삼촌의 성품이 권정생 작가와 닮았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기 것을 남에게 퍼주었던 분이 권정생 작가이지 않았던가.

속물들이 보면 "바보"처럼 살다간 권정생 작가의 모습이 바로 용구 삼촌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이 이 책을 많이 사랑했으면 좋겠다.

세상은 바보처럼 살지 말고

내 것 챙기면서 약게 살라고 유혹하지만

바보처럼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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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05-27 0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알라딘에 들어오지 못했어요.
분주했고 또 인터넷이 안된 기간도 닷새나 되었고....

용구삼촌이 권정생 선생님이구나!
이런 발견은 참 뿌듯하면서도 마음이 아파요.
이젠 그분을 만날 수 없으니까요.ㅠ

수퍼남매맘 2014-05-28 18:10   좋아요 0 | URL
5월은 좋은 분들이 많이 떠나신 달이잖아요. ㅠㅠ
왜 권정생 작가가 살아계실 때 알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이 커요.

2014-05-27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퍼남매맘 2014-05-28 18:11   좋아요 0 | URL
@@가 꼭 꿈을 이루길 저도 기도합니다.
제가 하는 말을 흘려 듣지 않고 귀담아 들어
앞으로 더 말 조심하고, 아름다운 말, 감동적인 말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