훨훨 간다 옛날옛적에 1
김용철 그림, 권정생 글 / 국민서관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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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옛이야기의 매력에 빠져 있는 나날이다.

교실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줬는데

세 번 장난하면 책을 그대로 덮는다고 하였는데도

세 녀셕이 장난을 하여 끝까지 읽어주지 못하였다.

다른 아이들이 많이 아쉬워했다.

가끔은 이렇게 밀당을 해야

책 읽어줄 때 딴짓하는 게 얼마나 다른 친구들에게 미안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ㅋㅋㅋ

더불어 책 읽어주는 시간의 소중함도 깨달을 수 있다.

 

권정생 작가의 글에 김용철 작가의 그림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권정생 작가의 작품 중에 이렇게 유머러스한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더 애착이 간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김용철 작가의 그림 또한 익살스럽게 잘 표현하였다 싶다.

이런 그림풍 정말 좋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의 켜켜이 있는 주름이나 하나 남은 이빨은

고단했던 노부부의 삶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 주면서도 정겹다.

할머니가 할아버지 바지춤을 잡아 당기며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대는 장면에서

살며시 할아버지의 엉덩이가 보이는 게 얼마나 웃기는지.

 

밭일 하고 집에 돌아온 할아버지에게 이야기 한 자리 해 달라고 하는 할머니가

어떤 측면에서는 배려심이 없어 보이기도 하다.

힘들게 일하고 온 할아버지에게 무슨 힘이 남아 있어 이야기를 할까 싶은데

가만 생각해 보니 그렇게라도 부부가 대화를 하게 하려는 속셈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야기 한 자리도 모르는 할아버지는

다음 날 할머니가 싸 준 무명 한 필을 어깨에 짊어지고 장터에 나간다.

이야기 한 자리와 바꾸려고 말이다.

장터 사람들은 할아버지의 말을 모두 이상하다 생각하여 아무도 무명을 안 사고,

할아버지는 이야기 한 자리 얻지 못하여 아주 무거운 마음으로 터벅터벅 집을 향해 걸어간다.

아이들에게 이럴 때 할아버지의 마음이 어땠을까 물어보니

"슬퍼요, 걱정돼요"란다.

 

어떤 마을 정자 나무 곁을 지나다가

빨간 코 농부 아저씨가 할아버지에게 " 그 무명으로 무얼 할 거냐" 물어본 것을 계기로

빨간 코 농부와 할아버지의 거래가 성립된다.

농부 아저씨는 어리숙해 보이는 할아버지에게 이야기 한 자리를 해 준답시고

논에 날아온 황새의 몸짓을 흉내 내는데 농부의 꾀를 눈치 채지 못한 할아버지는 이야기인 줄 알고 농부의 말을 따라한다.

농부가 " 훨훨 온다" 하면

할아버지도 "훨훨 온다 "따라하고

" 기웃기웃한다"하면

"기웃기웃한다"따라하고.

 

엊그제 국어과 교과서를 집필하는 등 국어과에 조예가 깊은 교감님의 강의를 들었는데 강사 말씀이

1-2학년 아이들은 주로 말놀이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들을 선택하는 게 좋고, 교과서도 그런 방향에서 집필을 한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말놀이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이다 싶다.

농부 아저씨의 말을 따라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어느새 나도 흥얼흥얼 따라외고 있다.

 

과연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이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좋아할까!

이야기 같지도 아닌 이야기를 무명과 바꾸었다고 잔소리를 한 바가지 듣는 것은 아닐까!

놀라운 결말이 기다리고 있으니 기대해도 될 듯하다.

 

아이들과 앞면지와 뒷면지를 번갈아 보며 달라진 점을 찾아보기도 하였는데

의외로 아이들이 달라진 점을 여러 개 찾아내어 칭찬을 듬뿍 해 주었다.

이야기의 겉표지, 면지도 꼼꼼히 보면 많은 것을 찾아낼 수 있다.

 

지난 번 딸과 우연히 옛이야기에 대해 말하다가

딸이 어릴 때 외할머니가 자신에게 자주 들려주시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걸 보고 우리 모녀 엄청 웃었다.

외할머니는 마르도 닳도록 오로지 그 이야기만 딸에게 들려줬던 것 같은데-내가 어릴 때도 그 이야기 뿐이었다.-

용케 딸은 그 이야길 기억하고 있었다.

들려주는 이야기의 힘이라고 할까!

 

이야기는 외어서 들려주는 게 가장 좋다고 한다.

지금은 그림책이며 동화책들이 많아서 어른들이 이야기를 줄줄 외어 들려주는 예가 전보다 많이 줄어들었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이렇게 할아버지처럼 외어서(또는 지어내어)이야기를 들려줬다.

아랫목에 이불 뒤집어 쓰고 누워 할머니 이야기 한 자리 들으면

마음까지 따듯해지던 기억이 아스라히 난다.

 

난 창의성이 약해서 외어서 또는 지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재능이 없었는데

남편은 그 부분에 있어서 탁월하여 아이들 어릴 때 정말 유치찬란한 이야기들을 지어 내어 들려주곤 하였다.

내가 듣기엔 정말 어이없고 허무맹랑한데도 아이들은 아빠의 이야기를 정말 좋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림책을 읽어주면 내 시선이 아이들보다 책에 고정되기 쉬운데

외어 들려주면 아이들과 마주할 수 있어서 더 좋다.

 

나도 그런 경험이 전에는 몇 번 있었다. 학교 아이들과 말이다.

그때는 아이들이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했다.

하여 비가 추적추적 내리면

아이들에게 귀신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였다.

열심히 외어서 들려주기도 하고, 즉흥적으로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었다.

내가 생갹해도 썩 잘하지 못했는데도 아이들은 정말 집중하여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우린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듯하다.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은 서로 마주본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오늘부터 이야기 한 자리 지어내볼까!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들려 줄 으시시한 이야기 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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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율맘 2014-03-27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정생 작가님!
예담이가 어제 숙제를 하면서 "엄마 권정생할아버지가 누군지알어?"
이래서 첨에는 못알아들어서 뭐라고? 되물으니깐
"권정생할아버지, 강아지똥지은할아버지!!" 이러더라구요!
그러면서 "이할아버지는 초가집에서 살았는데 책파는돈으로
어려운사람에게 10억을 기부했데,그리고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지금도 책판돈이 통장에 들어와서 아줌마(?)한테 주고갔데
어려운사람도와주라고" 이렇더라구요! 아줌마라했던것 같은데 아닌지
매일 예담이한테 배우고 있는 예담엄마예요^^;;
그리면서 "권정생할아버지가 강아지똥책만 있는게 아니고 "훨훨간다"책도 있어 이렇더라구요.
우리 훨훨간다 책사서 읽어볼까? 이러더라구요^^;; 자극이 팍팍되요 선생님^^~
떠든 아이들때문에 끝까지 보질 못해서 아이들 많이 섭섭했겠네요^^;; 혹시 예담이가 떠든건 아니겠지요?
오늘하루도 화이팅하세요 전 목요일이 젤힘들더라구요^^;;

수퍼남매맘 2014-03-27 12:52   좋아요 0 | URL
아줌마는 아니구요 늘 옆에 계셨던
친구분에게 맡기고 돌아가셔서 재단에서 그 돈을 관리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계속 책은 팔리고 인세가 들어오니 이 돈을 운영할 관리자가 필요하였겠죠.
우리가 권정생 작가의 책을 사면 그것 또한 기부가 되는 것이니 많이 사줬으면 좋겠어요.
예담이는 엄청 집중하여 듣는답니다.
오늘 끝까지 다 읽어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