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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이야기
유리 글.그림 / 이야기꽃 / 2013년 11월
평점 :
어제 저녁으로 삼겹살을 맛있게 먹고 오늘 아침독서시간에 이 책을 봤다.
이 책을 먼저 봤더라면 내가 삼겹살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그림책은 지난 2011년에 전국적으로 돌았던 구제역 때문에 살처분된 돼지들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당시 우리 나라에는 1000만 마리 정도의 돼지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구제역이 돌자 331만 마리 이상의 돼지들이 구덩이에 버려진 채 살처분되었다.
법에는 가축들을 산 채로 묻지 않고 고통을 극소화시켜 도살 후에 묻게 되어 있었지만
그건 그냥 법일 뿐 그 당시 돼지들을 비롯한 많은 가축들이 산 채로 매장당했다고 한다.
겉표지에 보면 눈 오는 날 돼지가 처음 본 눈을 보며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눈을 맛보는 장면이다.
이 외출이 마지막 외출이 될 지도 모르고 마냥 행복해 하는 돼지의 표정이 더욱 슬프다.
그림책을 보기 전에는 돼지들이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라는 줄 몰랐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통해 닭의 고단한 인생을 알게 된 것처럼
이 그림책을 통해 돼지들의 슬픈 인생을 알게 되었다.
돼지들도 닭 못지 않게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었다.
번식 전용 돼지들은 콘크리이트 바닥인 사육장에 갇힌 채, 자신의 꼬리 조차 보지 못하는 아주 좁은 곳에서
먹고, 자고, 싸다가 인공 수정을 받고, 분만할 시기가 되면
분만틀에 옮겨진다고 한다.
분만틀은 말 그대로 분만을 위한 것으로 돼지 한 마리가 딱 들어갈 만큼이다.
어미 돼지가 새끼 돼지들을 분만하고나서 젖도 줄 수 없을 만큼 좁고,
어미 돼지는 분만을 하고나서 새끼 돼지를 안아 주지도, 핥아 주지도 못한 채 생이별을 한다.
갓 태어난 돼지들은 이빨과 꼬리가 잘린 채, 또 다시 좁은 사육장에 갇혀 평생을 지내게 된다.
번식용돼지로 뽑히지 못하면 그렇게 6개월을 기른 후
도살장에 가게 되고 우리 인간은 그렇게 사육되고 도살된 돼지 고기들을 먹는 것이다.
내가 먹는 삽겹살이 바로 이렇게 자란 돼지들로부터 나온 것이었다니....
전혀 행복하지 않았던 돼지들의 인생이었을진대 그들로부터 나온 고기가 과연 해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스트레스를 받았을 법한 돼지들로부터 나온 고기들이 과연 온전할까 싶다.
이런 환경이다 보니 여러 가지 질병에 쉽게 노출된단다.
하여 돼지들은 예방 주사를 맞거나 항생제가 들어간 사료를 먹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염성이 엄청 강한 구제역은 살처분해야 하는데
2011년, 사육장에만 갇혀지내던 돼지들은 생전 처음으로 눈을 맞으며 밖으로 나온다.
"어라 이게 웬일이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밖으로 나오자 몽둥이와 전기 막대가 그들을 커다란 구덩이로 밀어 넣는다.
그림은 구멍 속에 떨어지는 돼지들의 시야가 흙으로 뒤덮여지면서 점점 구멍이 작아지다가
완전히 깜깜해지는 것으로 표현된다.
태어나자마자 이빨과 꼬리가 잘리고,
내내 옴짝달싹 못하는 사육장에 갇혀 지내던
돼지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외출이었다.
그렇게 살처분된 지역은 3년 동안 파헤칠 수 없다고 한다.
그 곳에 우뚝 솟아오른 관들은
돼지 사체가 썩으면서 내뿜는 가스들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는 플라스틱 관이라고 한다.
양계장에서 나와 마당을 거닐고 암탉이 되어 새끼를 품고 싶었던 잎싹이처럼
돼지들도 자신의 새끼에게 젖을 물리기도 하고, 안아주기도 하고, 사랑 담아 핥아 주기도 하고 싶었을 텐데.....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육장 밖을 나와 흰 눈을 맞으며 걸어간 곳이 지옥이었다니....
이 책을 보고나니 왜 채식주의자들이 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채식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동물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채식을 하는 사람도 있겠다 싶다.
이 그림책을 보고나니
인권이 중요한 만큼, 동물들의 권리 또한 지켜져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람의 식량이 된다는 이유 만으로 우리는 너무 가축들을 학대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반성을 해 본다.
3년 전과 비교하여 지금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불편한 그림책이었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가축들,
그런 가축들을 예의를 갖춰 도살하고(고통을 극소화 시켜서)
그렇게 얻어진 고기들이 사람의 양식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