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4교시에 도서실 수업을 갔다.
말이 도서실 수업이지 도서실 가서 읽고 싶은 책 읽는 시간이다.

정식 사서 교사가 도서실에 있는 학교가 거의 드물기 때문에 도서실 수업은 아직 요원한 일이다.

담임이 정말 뜻이 있고 도서실 협력 수업을 하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도서실 수업은 도서실에서 책 읽기 정도가 되겠다.

그래도 이 시간만이라도 알뜰히 챙겨서 도서실에 와서 책을 읽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아이들이 도서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저학년이라서 20분 넘어가면 떠들고 장난하기 시작하므로 
20분 정도는 책을 읽히고, 나머지 시간은 내가 그림책 한 권을 읽어주는 편이다.
 

오늘 도서실 가서 읽었던 책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자수로 표현된 책이었다. 
 이 책은 노자의 철학을 그림책으로 담은 책인데 표현 방식이 독특하게도 수를 놓은 것이다.
자수로 표현된 그림을 보니 일단 입이 떠억 벌어졌다.
 한 땀 한 땀의 정성이 그대로 전해졌다.

이제 이런 책들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그림책이 말이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 그림책은 괄목할만한 성장을 한 게 틀림 없다.
더불어 중고등학교 때 수예하던 기억이 났다.
나의 어머니 세대들은 뜨개질도 잘하고, 수도 잘 놓았는데
나는 그저 중고등학교 때 배운 게 다니 딸에게 알려줄 것도, 물려줄 것도 없다. ㅋㅋㅋ
딸 세대는 어떨까?
학교에서 수예를 배우기는 할까 싶은데.....가정기술이 있으니배우긴 하겠지.
초6 때 뜨개질이 나오는데 그것도 거의 내가 해 줬다.
알려 주는 게 더 힘들어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낫겠다 싶어 절반 정도는 해 주고 나머지는 딸이 조금 기술을 익혀 완성했다.
배울 당시는 쓸모 없어 보이고 왜 이런 구닥다리를 배워야 하나 볼멘 소리가 나왔지만
지나고 보니 학창시절이라도 안 배웠으면 전혀 배울 기회가 없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중학교 때 배운 수예 덕분에 이 그림책을 마주하니 반갑고,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학창시절로 돌아갈 수도 있어서 좋았다.
 
노자의 가르침은 바로 " 비워라"는 것이다.
 
접시가 옴폭하게 비어 있어야 음식을 담을 수 있고,
집 안이 비어 있어야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비어 있어야 상대방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심히 공감이 되었다.
가득 차있는 접시에는 다른 음식을 담을 수 없고
자아로 가득찬 내 맘에는 다른 이가 들어오지 못할 테다.
하여 나도 요즘 교실에 있는 짐들을 열심히 비우고 있는 중이다..
쓰던 교실을 깨끗이 비워야 새 주인과 짐들이 들어올 수 있을 테니까.

아이들은 도서실에 오면 교실보다 더 떠든다.

아무래도 책상 배열이 자유롭고, 소파도 있고, 따뜻한 바닥에 앉아 있을 수도 있으니 그럴 것이다.
아주 심한 경우가 아니면 내버려뒀다.
교실에서는 혼자서 책과 대화하던 아이들이
도서실에서는 여러 명이 한 책에 달라붙어 읽는다.
독서 연수 때 도서실에서 너무 정숙을 강요하지 말라는 말에 공감하고나서 그런 자유를 허락하게 되었다.

삼삼오오 앉아 조금 떠들며, 자유로운 자세로 책을 읽는 것도 허락해야 

아이들이 도서실을 편하게 생각한다는 강사님 말씀에 깊은 울림을 느꼈다.

물론 심하게 떠들거나 뛰어다닐 경우는 조치를 취해야겠지만서도...

 

아이들을 책자리에 모아 읽은 책은 아이들이 내가 아니면 도서실에서 아이들이 잘 찾지 못할 보물책이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의 계보를 잇는 책이라고 해도 될 성싶다.

우리가 도서실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는 이 시각,

어떤 아이(이란이다.)는 전쟁 때문에 어머니를 잃고, 다리를 잃어 절망에 빠진 채

온종일 전쟁 놀이를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만 한정된 시각을 좀더 넓혀주고

내가 아닌 타인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켜 줄 수 있는 그런 책이다.

더불어 "복수"라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지조차 깨달을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전쟁"이란 괴물이 한 아이의 인생을 이렇게 짓밟을 수 있다는 것을 보며 전쟁을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가 하는 전쟁 놀이는

자신이 대장이 되어 어머니를 죽인 그 놈에게 복수하는 것이다.

그림으로 봐서 고작 유치원 또래쯤 되어 보이는 아이이다.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고, 다리 한 쪽을 잃은 슬픔은 얼마나 참혹할까!

그것보다 더 슬픈 건 마냥 천진하게 뛰어 놀아야할 아이는 그 후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온통 복수, 전쟁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아이를 어떡하면 그 지옥에서 건져낼 수 있을까!

이 정도의 나이가 되다보니

복수는 해결책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복수는 답이 아니고....

아이가 안고 있는 무거운 짐을 내려 놓는 게 답이 아닐까!

"복수"만을 꿈 꾸며 사는 인생이 얼마나 아프고, 무겁고, 힘들고, 허망한지 우린 안다.

이런 "복수"를 다룬 또 하나의 멋진 그림책이 있는데 이것도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4-02-09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자요 대장>은 놓치면 안될 우리 아이 책에도 소개된 책이죠.
<거짓말 같은 이야기> <내가 라면을 먹을 때> 같은 계보의 책으로 묶어서 활용하면 좋지요.
<아툭>도 주제가 좋아서 고학년 수업에 여러번 활용했던 그림책이고...
<노자~>는 검색 들어갑니다. 감사~ ^^

수퍼남매맘 2014-02-09 16:20   좋아요 0 | URL
저도 순오기 님이 말씀하신 책 정말 좋아해요.
아이들에게 꼭 읽어주거나 소개하는 책들이고요.
< 잘 자요 대장>읽어주고 나서 < 놓치면~~> 책을 보니 이 책이 들어 있어서 무지 반갑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