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수표 받아쓰기는 겨울 방학 하기 전에 이미 끝나서

랜덤으로 받아쓰기를 한다.

나 어릴 때는 선생님이 아무 데서나 불러주시면 받아적는 받아쓰기였는데

언젠가부터 친절하게도 급수표가 나가고, 아이들은 그걸 가지고 예습을 해 와서 시험을 본다.

그러니 점수가 높다고 해서 어휘력이 높다고 할 수는 없다.

받아쓰기 점수 따로, 평소 실력 따로. 뭔가가 잘못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오늘은 어제 읽어준 책 <노란 양동이>에 나온 문장들을 불러줬다.

 

급수표 받아쓰기는 연습해서 100점 맞던 아이들도

이렇게 랜덤으로 부르면 점수가 형편 없이 내려간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받아쓰기는 평소에 책을 읽을 때 얼마나 정독하느냐에 그 실력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책을 읽을 때 대강대강 읽는 아이들은 이렇게 랜덤으로 받아쓰기를 실시해 보면 금방 실력이 들통 난다.

물론 일기장을 봐도 맞춤법, 띄어쓰기, 문장 구성이 엉망이다.

 

그런데 오늘, 어떤 아이 덕분에 보람을 느꼈다.

1학기 때 일기장에 쓴 글자의 맞춤법이 너무 엉망이라서 해석도 못 할 정도였다.

아주 차분하고, 집중력 좋은 아이인데 깜짝 놀랐다.

보기와 다르게 맞춤법이 전혀 안 되어 있어서

지난 학부모 상담 때 어머니께 그 점을 말씀 드리고

해결 방안을 말씀 드렸다.

그 후 가정에서 그대로 실천을 하셨는지 점차 좋아지는 모습을 보이다가

오늘 랜덤 받아쓰기에서 90점을 맞은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무지 기뻤다.

이렇게 일취월장 하는 아이를 보면 교사로서 보람을 느낀다.

내 조언대로 꾸준히 실천해 준 부모님께도 격려의 박수을 보내 드린다.

저학년은 부모가 조금만 관심을 가져 주면 이렇게 몇 개월 안에  폭풍 성장을 할 수 있다.

그 아이의 성장의 가장 기본은 책 읽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것도 정독과 부모님의 책 읽어주기 말이다.

 

어떤 학자는 초등학교 1학년은 오로지 책 읽기만 교육해도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책 읽기가 전부다" 라는 의미이다.

1학년을 연거푸 4번 해 보니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 스스로 하는 책 읽기에 맡기지 말고, 가장 가깝고 신뢰도가 높은 부모와 교사가 아이들에게 책을 꾸준히

아니 매일 읽어준다면 놀라운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어른이 읽어줄 때 아이는 더 깊은 상상력과 더 깊은 독해력이 길러진다.)

무엇보다 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게 될 것이다.

앞에 예를 든 아이가 몇 개월 안에 받아쓰기 실력이 향상된 것도 정독과 책 읽어주기 덕분이라고 난 생각한다.

지금 아이가 받아쓰기 실력이 약하다면

기본으로 돌아가서 부모님이 매일 밤, 잠 자기 전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읽어주시라고 권하고 싶다.

 

이 아이들과 헤어질 날도 머지 않아 매일 책을 읽어주려고 한다.

이 아이들이 또 언제 책 읽어주는 선생님을 만나겠는가!

나도 우리 아이들도 이제껏 책 읽어주는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는데 꺼이꺼이~~

오늘은 국어 교과서에 나온 <황소 아저씨>를 그림책으로 읽어줬다.

훌륭한 그림책도 교과서에 실리면 내용이 다 잘려 나가고, 그림은 조잡해진다.애휴휴~~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하면서도 정말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문학 작품은 편집하지 말고 그대로 실었으면 좋겠다.

그림도 저작권 때문에 원그림 대신 유치한 삽화가 들어가는 것인 줄 알면서도

참 난감하고, 안타깝다. 이렇게 멋진 그림이 유치하게 변해 버리니 말이다.

그림책을 알고나서부터는

국어 교과서에 나온 문학 작품 만큼은 가능한 원작을 읽어주려고 한다.

 

도서실에서 빌려오라고 해서 그림책을 읽어줬다.

개정 전 교과서에도 <황소 아저씨>가 실려 있었는데 볼 때마다 참 멋지고 따뜻한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에는 정승각 그림 작가의 사인이 있는 그림책이 있는데 쥐를 그려 주셨다. ㅎㅎㅎ

아이들도 참 좋아하는 그림책이다.

따뜻함도 있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코딱지가 나와서 이 부분 읽어줄 때면 어김없이 웃음이 터져 나온다.

권정생 작가가 유쾌한 분이셨음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정승각 그림 작가가 권정생 작가의 문장은 고민할 것도 없이 그림이 쫘악 그려진다고 하셨다.

그래서 작업하기가 편했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이 그림책을 다시 읽어보니 정말 그렇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그대로 그림으로 재현된다. 내 머릿속에서.

넉넉한 황소 아저씨의 인심과 함께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다섯 마리의 새앙쥐들은

"겨울이 지나도록 따뜻따뜻하게 함께 살았습니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추운 겨울, 따뜻하게 해 준다.

우리 아이들도 "책 많이 읽어서 똑똑한 사람 되어야지." 라는 결심보다

책 읽으면서 내가 즐겁고, 책 속 인물들에 공감하고,

더 나아가 황소 아저씨처럼 이웃을 위해 사랑을 나눠주는 따뜻한 이들로 무럭무럭 자라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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