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희 선생님 강연 중 하이라이트였던 <뒤집힌 호랑이>를 살펴보자.
이 책도 옛이야기인만큼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다양한 버전들이 있다.
선생님은 단언컨대
보리 출판사의 이 그림책을 추천한다고 힘주어 강조하셨다.
이유인즉 원작을 가장 충실히 담아내고 있고, 그림부터가 불온하지 않는가! 라고 하셨다.
빨강 바탕! 그림책에서 겉표지에 빨강을 쓰는 것은 흔하지 않아 보인다.
옛날부터 빨강은 불온한(?) 세력을 뜻하지 않았던가!
요즘에 들어서야 모 당에서 지난 선거 때 빨강을 사용한 이후
빨강이 전혀 다른 이미지가 되었지만
그전까지 빨강은 불온 세력을 대표하는 색깔이었다.
빨강 = 빨갱이 로 통하는 시대였다.
모 당이 빨강을 사용하고부터 이제 빨갱이라는 말보다 "종북세력"이라는 말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는 선생님 말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어느 시점부터 "종북"이란 말이 가열차게 나온 것 같다.
이 그림책은 마을 사람들이 거대한 호랑이를 통쾌하게 이긴 재밌는 이야기이지만
그 면면을 들여다 보면
가난하고 힘 없는 민중들이 거대한 자본가, 막강한 권력자들을 전복시킨 혁명의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다는 말씀이다.
난 이 부분에서
저자의 내공이 정말 대단하구나! 다시 한 번 절감했다.
남편이 모든 드라마, 영화를 정치, 사회적으로 보고 해석하려고 해서
내가 늘
" 당신은 왜 그리 머리 아프고 복잡하게 보냐?" 고 핀잔을 하곤 하는데(그러면서도 내심 놀라곤 한다.)
남편에게 들었던 그 존경심이 최은희 선생님과 김용철 작가님께도 들었다.
까면 깔수록 새로운 것이 나오는 이 양파 같은 그림책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래서 일부러 빨강색을 겉표지에 사용하였구나!
심오한 이야기를 유머있게 하는 사람이 가장 멋져 보이는데
김용철 작가가 그런 분이었구나 싶었다.
(20년 전에 보리출판사로부터 계약금을 받고선 이제야 출간을 하게 되었다고 하니, 출판사도 작가님도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겉표지에 보면 담뱃대로 호랑이 똥꼬를 찌르고 있는 한 노인이 보인다.
바로 호랑이한테 잡아 먹히는 소금 장수이다.
이 사람을 잘 보길 바란다.
소금 장수가 길을 가다 거대한 호랑이한테 꿀꺽 잡아먹히는데
호랑이 뱃 속에 들어간 소금 장수는 전혀 당황해 하지 않는다. 목숨이 위태로운데 참 태연하다.
찬찬히 주위를 둘러 본다.
호랑이 굴에 잡혀 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아나올 수 있다지 않았나!
일단 호랑이 장기들로 요기를 하기로 결정하고
뒤이어 잡혀온 숯장수와 힘을 합하여 불을 지핀다.
그런데 이 장면을 좀 더 깊이 살펴보자.
소금 장수 노인은 온힘을 다해 불을 지피지만
숯 장수는 나이도 젊어 보이는데 대강대강 바람을 불고 있다.
최 선생님은 개혁이라는 큰 그림을 그릴 때 각자의 역할이 있는 거라고 이 장면을 읽었다고 한다.
소금 장수처럼 온힘과 열정을 다해 앞장서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숯 장수처럼 하는둥 마는둥 지켜보는 자도 필요하다고 말이다.
리더가 다른 사람들이 자신만큼 열정을 다하지 않는다고 뒤에 있는 사람들을 욕하고 비난할 때 연대는 깨지는 것이 아닐까.
사람은 각자 제 역할이 있다.
앞장 서는 자도 필요하고, 뒤에서 후원해 주는 자도 필요하고, 말없이 지지하는 자도 필요하다.
자신만큼 열정이 없다고, 온힘을 다하지 않는다고 , 마음 아파하거나 성질을 내거나, 욕지거리를 할 필요는 없다.
나도 앞장 서 본 적도 뒤로 물러난 적도 있어서 이 맘을 이해한다.
뒤에 오는 사람들이 나만큼 열정이 없을 때 얼마나 속이 부글부글 했던가.
말없이 지지만 보내고 있을 때 너무 초라해 보이지는 않았던가.
속 탈 일도, 초라할 일도 없는데 말이다. 누구나 리더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걸 존중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싶다.
고작 숯 피우고 고기 굽는 이 장면에서 그런 해석을 내 놓다니.
최 선생님은 정말 창조적인 독자이다.
누가 호랑이를 전복시킬 리더인지 이제 감이 온다. 맞다. 소금 장수이다.
찬찬히 둘러보니 숯 장수 이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호랑이에게 잡혔는데
소금 장수는 그들과 함께 호랑이 장기로 맛있게 식사를 한다.
뭐니뭐니 해도 사람은 식사를 하면서 친해지는 것이다. 그래야 연대도 되는 것이고.
이 때 단 한 사람만 고기를 안 먹고 있는데 바로 스님이다.
이 스님을 주목해야 한다.
이 스님이 남들 다 고기를 먹는데 뒤로 앉아 염불을 외우는 바로 이 장면의 해석에서 또 한 번 놀랐다.
스님은 고기를 구워 먹을 때도 모른 척 뒤돌아 앉아 염불을 외우지만 정작 자기 몫의 커다란 고기 덩어리를 하나 감춘다.
게다가 소금 장수의 제안대로 똥꼬로 담뱃대를 집어 넣어 호랑이 꼬리를 잡아당길 때
모든 사람들이 영차영차 죽을힘을 다해도
정작 스님은 아무런 일을 하지 않는다. 아니 염불만 외우고 있다.
바로 입만 살아 있는 지식인의 모습을 그림책에서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사회의 개혁은
정작 입으로만 떠드는 지식인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힘 없고 배운 것 없는 민중들 때문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멋진 장면이었다.
우리의 역사가 그걸 입증하고 있지 않던가!
녹두 장군 전봉준이 그렇고, 전태일 열사가 그렇고.
나중에 뒤집힌 호랑이 속에서 나오자 이 스님은 호랑이를 전복시킬 때 마치 자신이 큰 역할을 했다는 듯이
떡 하니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있다. 생색은 혼자 다 내는 모습 아닌가!
호랑이 가죽을 모두 나눠 가질 때도 스님은 욕심을 부려 가죽을 많이 가져간다. 스님이 호랑이 가죽이 뭐가 필요하다고?
무소유를 실천하셔야지.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그림책 한 장면 한 장면을 다시 보니 그림책이 새롭게 읽혀진다.
그냥 재밌고 우스운 이야기가 아니라 정치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는 심오한 그림책이었다.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그림책이었다.
마지막
소금 장수가 항상 왼쪽 눈 하나를 뜨고 있는 것도 간과할 장면이 아니다.
모두가 눈을 다 감고 영차영차 호랑이 꼬리를 잡아당길 때도 소금 장수 혼자 왼쪽 눈을 뜨고 이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다.
바로 리더의 역할을 말해주는 장면이었다.
위험한 상황,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리더만큼은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상황을 지켜 봐야 한다.
어쩌면 소금 장수는 이 날, 일부러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소금 장수의 발걸음이 시원시원하고, 호랑이 뱃 속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는 점 등을 볼 때 예견한 게 아닌가 싶다.
소금 장수는
호랑이 뱃 속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전복시킬 수 있다는 불온한 생각을 전부터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말고. 이건 나의 해석이니까.)
전복할 기회, 혁명의 기회가 왔을 때
전혀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상대를 살펴본 후
자신을 지지해 줄 지원자들을 규합한다.
절대 명령만 내리지 않는다.
자신이 모든 일에 앞장선다.
그리고 때가 되자 가장 더럽다고 꺼려하던 똥꼬 속으로 과감히 담뱃대를 집어 넣어 호랑이 꼬리를 잡는다.
이 멋진 리더 소금 장수의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다.
지금 우리에게도 그런 리더가 필요한데 말이다.
이 그림책을 보고
최은희 선생님의 창조적인 해석을 들으면서 환호하게 됨은
현실이 답답하기 때문일 것이다.
민중이 거대한 자본가들과 막강한 권력자들를 통쾌하게 전복시킬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
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내일은 다른 분의 강의를 들으러 정독도서관에 간다.
이 책 저자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이다.
기대된다.
어떤 울림을 주실지....
이 책 주문했는데 제발 오전 중에 와야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