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없는 색시
임어진 글, 김호랑 그림 / 한림출판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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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 겨울밤, 코끝이 얼얼한 추운 날, 따끈한 아랫목에 둘러앉아

군밤을 호호 불어 먹으며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행복했던가!

요즘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옛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저학년 어린이들은 옛이야기들을 참 좋아한다.

그림책으로 읽어도 재밌지만

할머니가, 엄마가, 아빠가 들려주면 더 좋아할 거다.

 

옛이야기의 매력은

내용이 쉽고, 주제가 명징하고, 신기하고 특별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는 점일 것이다.

권선징악적 결말은 아이들에게

" 착하게 살아야 돼"라는 인성 교육을 자연스럽게 시켜주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큰 옛이야기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재미가 아닐까 싶다.

 

교실 아이들과 함께 하나하나 옛이야기들을 섭렵하고 있는 중에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다른 이야기들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이고 약간 으스스한 분위기의 이야기이다.

처음 봤을 때는 이런 잔인한(?) 이야기도 우리 나라에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림형제 동화집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의붓딸의 손을 자른 새어머니와 전후사정도 모르고 새부인에 속아 딸을 내치는 아버지, 

그 손 잘린 아가씨를 거두어 아내와 며느리로 받아들인 총각과 총각의 어머니는 정말 대조적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던데 이 옛이야기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오히려 가족이 아니라 남이 더 가족 같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손 잘린 아가씨를 벽장에 숨긴 채 돌봐주는 총각,

자신의 아들을 손 잘린 아가씨와 혼인시킨 어머니,

오갈데 없는 아가씨와 그녀의 아기를 거둬들인 마고할미를 보면 이웃이 더 가족 같고 정이 느껴진다.

반면

어미 잃은 딸이 손이 잘려나가는데도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는 아비와

비록 의붓 자식이지만 그래도 자식인데 그런 몹쓸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새어미를 보면

가족도 가족 나름인 듯하다.

 

이렇듯 옛이야기 속에는 선인과 악인이 등장한다.

악인은 의붓 자식의 손을 자르는 일을 스스럼 없이 저지르며

잘못을 뉘우치기는 커녕 더 나쁜 짓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쯤 되면 우리는 이 악인이 언제쯤 죄값을 치를까 기다리게 된다.

'사람이 어쩜 금수 만도 못하네!' 라는 생각이 든다.

이 그림책은 얼마 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취재한

어느 8세 아이의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가족 중 누군가의 상습적인 구타로 인해 숨진 가여운 그 아이.

아이의 시신은 여기저기 상습적인 구타로 인한 끔찍한 흉터들로 가득했다.

시신은 정말 처참했다.

팔은 꺾여진 채 제대로 치료 받지 않아 휘어진 상태였다.

누가 이 아이를 죽음으로 몰았는가!

그 아이의 죽음의 진실을 숨기는 가족들.

그들을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 방송 보고 우리 가족 모두 분개한 기억이 난다.

가장 이해 안 가는 사람은 바로 아버지였다.

딸이 그렇게 무참히 죽었는데 침묵하는 아버지.

그를 가장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옛이야기 속에는 어리석어 보일만큼 착한 사람이 등장한다.

이 이야기 속의 아가씨도 마찬가지이다.

손이 잘리는데도 비명 한 번 안 지르고 그 일을 당한다.

새어머니의 농간에 또 한 번 아기를 안고 시댁에서도 쫓겨나건만

"억울하다"라고 말 한 마디 하지 않는다.

'착해 빠졌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무지 착하다.

 

이야기가 막바지로 향할 즈음에

독자들은 언제쯤 착한 사람이 복을 받고

언제쯤 악한 사람이 벌을 받나 기대하게 된다.

권선징악적 결말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드라마도 악인이 악인다워야 더 재미나는데

이 이야기도 새어머니의 악행이 심해서 더 재미난 것 같다.

분위기가 으스스해서 " 전설의 고향"을 보는 듯하다. 흐흐흐

 

살다 보면 옛이야기처럼 권선징악적 결말이 이뤄지지 않음을 깨닫는 날이 온다.

악인이 꼭 벌을 받지 않고

선인이 꼭 복을 받지 않는 세상이기도 해서 허무할 때가 있다.

아니 오히려 악인이 더 승승장구 잘  살고

착한 사람이 등신 취급 받고 피해 보는 세상이기도 해서 분노할 때가 많다.

정의가 살아 있다면

권선징악이 이 현세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 맥이 빠질 때도 있다.

그러기에 옛이야기를 읽으면 더 통쾌한 것인지도 모른다.

옛이야기에서만큼은 권선징악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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