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어린이들은 일주일에 두세 번 책을 읽어주면서
정작 수퍼남매에게는 책을 자주 읽어 주지 않았다.
첫째는 두꺼운 명작도 여러 권 읽어준 데 비해 둘째는 참 무심했다.
가끔 새로 들어온 그림책을 읽어주긴 하였지만 누나에 견주어 정말 부족했다.
둘 째는 항상 첫째에 비해 신경을 덜 쓰는 것 같아 늘 미안해 하면서도
잘 안 고쳐진다.
요즘 다니엘 페낙의 <소설처럼>을 재차 읽어보니
아이들이 책으로부터 멀어지는 건 바로 부모가 책 읽어주기를 부모 맘대로 중단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런 부모 중의 한 사람이다.
수퍼남매가 먼저 그만 읽어달라고 요구한 적은 없다.
내가 이런저런 핑계로 그만둔 것이다.
교실의 아이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실 내 자녀가 더 중요한데
교실아이들
책 읽어주느라 목이 아파서 우리 수퍼남매한테는 책을 못 읽어줬다.
물론 그것도 핑계지만서도.
마음만 있었으면 읽어줬겠지.
책읽어주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어느샌가 책읽어줘야 할 시간에 다른 일들을 하고 있었다.
아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그러면서 너희들은 집에 이렇게 책이 많은데도 왜 스스로 책을 즐겨 읽지 않냐고 잔소리를 해댔다.
수퍼남매가 책과 멀어진 건 결국 책읽어주기를 중단한 내 탓인데 말이다.
오늘부터 매일밤 10 시에 책을 읽어주기로 했다.
초6 과 초2 라서 책선택이 좀 힘들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책을 우선 선택했다.
아이들 스스로는 안 읽을 것 같은 책을 골랐다.
<책만 보는 바보> 이다.
이 책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 중의 하나이고 수퍼남매가 꼭 읽어봤으면 하고 바라는 책이기도 하다.
딸에게 몇 번 추천을 했지만 들춰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은 내가 읽어줘야겠구나 결심했다.
작가 서문과 첫꼭지를 읽어줬는데 남매 반응이 의외로 좋았다.
지루해 할까 봐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싶다.
무엇보다 유려한 문장이 압권이다.
읽는 나조차 감탄사를 연발시키는 좋은 문구는 느리게 두세번 읽어줬다.
아들에게는 좀 난해할 수 있지만 모르면 언제든 질문을 하라고 했다.
스스로를 간서치-책만 보는 바보-라 칭했던 조선 시대 선비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를 통해
수퍼남매도 진정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다니엘 페낙의 경고를 통해 깨달았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려고 한다.
사람마다 책을 받아들이는 자신만의 리듬이 다 다르니
어른은 그저 자녀가 아기였을 때 아무 댓가 없이 자신이 스스로 멋진 이야기꾼이 되어 밤마다 이야기를 들려줬듯이
지금도-자녀의 나이는 상관 없다-책을 읽어주면서 때를 기다리라고 충고해 준다.
자녀가 책을 즐기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매일 책읽어주기임을 난 왜 놓치고 있었을까!
교실 아이들에게는 읽어주면서 말이다. 참 어리석었다.
이제부터라도 나 스스로 중단하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수퍼남매야, 그 동안 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