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사촌모임에 다녀왔다.
왜 사촌들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해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나만 계속 빠진다고 째려보는(?)친언니들의 눈치를 외면할 용기도 없어 구시렁거리며 삼선교에 내렸다.
큰언니가 먼저 와있었다.
사촌언니 차를 타고 중국집으로 갔다.
우리 자매 셋, 둘째이모네 언니 하나, 셋째이모 넷. 이렇게 여덟 사촌이 모였다.
올해 들어 갑자기 사촌모임을 한다고 해서 진짜 의아했다.
친자매 모임도 안하는데 자랄 때 왕래를 자주한 사이도 아니고 왜 갑자기 모이지?
남편도 사촌들이 경조사가 아니라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은 첨 본다며 썩 내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나가면 본인이 아이 둘을 돌봐야 하니 당연 구시렁거릴 수밖에.
더구나 다른 언니들은 애들이 어느 정도 크지만서도 난 애들이 초딩이라 보살필 게 많은데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 만나서 하는 이야기가 뭐가 될지 뻔하기 때문에 시큰둥했다.
서천석박사님도 맘을 흔드는 모임에는 나가지도 말라고 하셨는데....
나가보니 왜 모임을 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예전에 곗돈 비슷하게 회비를 모은 게 있었는데 그 회비가 많아져서 얼굴도 볼 겸 모여서 먹게 된 거였다.
지방에서 온 언니들도 있으니 서울에 살면서 한 번도 안 나온- 그것도 막내이면서- 내가 얼마나 괘씸했을까 싶다.
하지만 모두들 인품이 되어서 티를 안 냈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출석 안 한 내가 괜히 마음이 불편했지.
가끔은 막내라는 위치가 하고 싶은 대로 못 하도록 하는 게 있다.
우리 부모님, 이모와 이모부도 나이가 많아서 서로 잘 지내시는지 안부를 물었다.
다들 나이가 많으셔서 골골하시는 듯하다. 유병장수라고 했던가!
우리 엄마는 딸 넷의 장녀였는데 두 이모는 먼저 돌아가시고 엄마와 둘째 이모만 살아계신다.
큰언니처럼 자녀를 다 키운 사촌도 있고 이번에 수능을 본 자녀를 둔 사촌도 있지만
아무튼 내가 막내라서 아이들도 제일 어리다.
시댁에 가면 내가 제일 연장자인데.
예전에는 막내인게 더 편했는데 요즘은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듯하다.
막내는 아무래도 윗사람 눈치를 보기 마련이다.
언니들도 예전보다 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세월이 지나간 흔저이겠지. 언니들 눈에도 내 모습이 그랬겠지?
마음 고생을 많이 한 언니는 얼굴이 확실히 조글조글했다.
40대 이후의 얼굴에서는 그 사람의 삶이 묻어나는 것같다.
고생 한 얼굴과 안 한 얼굴이 확 드러난다.
곱게 늙어가는 것이 참 어렵다.
언니 중에 독신으로 사는 어니가 있는데 확실히 같은 또래에 비해 더 젊어 보였다.
모임에서 얻은 지식은 비염 환자는 절대 찬물을 마시지 말라는 것이다.
사촌 중에 비염이 심한 언니가 있었다.
본인도 아토피와 비염이 너무 심해서 안 해 본 방법이 없는데 가장 기본으로
평소에 냉수 대신 온수를 마시라는 것이다.
우리 집도 당장 실천해야겠다.
집에 와서 냉수 금지령을 내렸더니
딸이 볼멘 소리를 해댄다.
본인이 비염이 제일 심하면서 말이다.
비염은 완치되는 병은 아니지만 증상을 완화시키는 방법이 온수 마시기라니 당연히 실천해야지.
<나폴레옹> 이라는 유명한 제과점에서 커피를 마셔서 나올 때 빵을 좀 샀다.
처녀 때 다니던 교회 앞에도 이 체인점이 있었는데 빵이 다소 비싸긴 하지만 참 맛있다.
샌드위치 두 상자, 카스테라, 빵을 샀는데 이만원이 넘었다.
원래 이 집이 비싸긴 한데 오랜만에 사보니 확실히 동네 제과점이랑 차이가 나네!
사촌이 소개해준 중국집 < 청도> 도 요리가 나름 괜찮았는데 마지막으로 나온 커피가 너무 보리차 같아서
여기에 와서 커피를 마셨다.
커피 맛은 보통이었다.
삼선교는 집에서 가까운 편이라서 모임 나가기가 덜 부담스러웠는데
다음에는 서초동에서 한단다. 나갈 수 있을까! 그때 가봐야 알겠지.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아프면 또 못 나가게 되겠지.
3월은 교사들에게 정말 바쁜 달이기도 하니깐.
그래도 나가기 전에 가졌던 부담스러움이 많이 가셨다.
어찌저찌하여 사촌모임을 하게 되었지만 오랜만에 사촌 언니들 만나니 예전에 외할머니 살아계셨을 적이 떠오른다.
외할머니 살아계셨을 때는 명절이나 할머니 생신 때 가끔 얼굴 보곤 했었는데....
매번 빠지다 처음으로 모임에 참석했다고 하니 친정 엄마가 좋아하신다.
엄마도 제일 막내가 매번 빠져서 체면이 좀 안 섰나 보다.
내가 사람 가리는 편은 아닌데 나이가 들어가니
일단 내가 편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받는 자리가 더 좋은 것은 사실이다. ㅋㅋㅋ
서천석 박사님의
쓸데없는 모임에는 아예 나가지 말라는 말에 동감한다.
내 갈 길 잘 가고 있다가도 동창회나 그런 모임들 다녀모연
나도 남편한테 바가지, 아이들한테 잔소리를 하게 된다.
한마디로 흔들린다.
하여 내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모임.
특히 뒷담화 잘하고, 남편 욕, 자식 자랑 하는 모임에는 아예 발을 내딛지 말도록 하자는 게 내 신조다.
오늘 사촌 모임은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