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인권 연수가 있었다.
강사가 두 분 오셨는데 한 분은 겉으로 보기에도 아주 심한 장애를 갖고 있는 분이셨다.
어떻게 강사로 오셨을까 몹시 궁금했다.
장애우가 강사로 강단에 선 것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제대로 말씀을 못 할 것 같은데 어떻게 강의를 하실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먼저 다른 강사의(비장애우)의 강의가 이뤄지고
이어서 장애우 강사-별칭은 천둥소리-의 강의가 있었다.
본인의 별칭이 왜 "천둥소리"인지부터 소개를 하는데
뇌성마비를 앓고 계셔서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평소에 비장애우들이 자신과 같은 장애우들의 내면의 목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까닭에
자신의 목소리가 천둥소리 같아서 비장애우들에게 장애우들의 목소리를 잘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
천둥소리라고 지었다고 한다.
천둥소리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조금 답답하여 옆에 분이 통역을 해 주시면 좋겠다 싶었는데
그 분 말씀이 영어도 처음에는 잘 들리지 않다가
정신을 집중하고 익숙해지면 잘 들리듯이
천둥소리의 말도 조금씩 잘 들릴거라고 하였다.
그런데 차츰차츰 천둥소리의 이야기가 잘 들렸다.
집중하면 들리는구나!
소통하고자 노력하면 상대방의 마음이 들리는구나!
좋은 것을 깨달았다.
천둥소리는
길에서 자신과 같은 장애우를 보면 첫 느낌이 어떤지 자유롭게 말해보라고 하였다.
자신은 어떤 소리에도 주눅 들거나 상처 받지 않는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낯설다.
답답할 것 같다.
불편할 것 같다.
매우 힘들어 보인다.
무섭다.
불쌍하다
시선을 어디 둬야 할지 모르겠다 등등
우리 학교 선생님뿐만이 아니라 비장애우들이 장애우들에게 갖는 보편적인 생각과 느낌들일 것이다.
왜 이런 느낌들이 생겨났을까?
천둥소리는 어릴 때부터 몸으로 부딪히며 함께 자라지 못했기에
장애우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자리잡고 있다고 하였다.
왜 장애우와 비장애우는 같은 공간에서 함께 놀 수 없었는가란 문제가 또 대두된다.
장애우들이 학교에 다닐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장애 시설 부족)
장애우들과 어울리면 내 아이에게 해가 될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
또는 사회적 통념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강사들은 장애우들의 학력이 초졸인 경우가 50%에 육박한다고 하였다.
정말 놀라운 수치이다.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인 우리 나라에서 유독 장애우들의 학력만 이렇게 낮다는 것은
그들이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처지를 사회가 그대로 묵인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장애우들 대부분은 집에서 개인 지도를 받거나 하면서
비장애우들과 함께 생활할 기회마저 박탈 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앞서 말한 것처럼
장애우들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들이 많을 수밖에 없겠지.
<휠체어를 탄 사서>가 생각났다.
어린아이일수록 장애우에 대한 편견이 적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통합교육을 하는 것이 장애우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같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장애우들과 비장애우가 같은 공간에서 공부하고, 노는 것이 흔하지 않다.
앞서 이야기한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이다.
하나 더 놀라운 사실은
천둥소리처럼 선천적 장애를 가진 사람과
후천적 장애를 가진 사람의 비율이 1 : 9 라는 것이다.
장애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장애가 없다고 해서 미래에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는 셈이다.
내가 가장 불편한 장애를 가졌다는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마련해야 하는 것이 바로 복지 정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대목이었다.
비장애우들에게 계단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장애우들에게는 에베레스트 등반처럼 아주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단 옆에 장애우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나, 휠체어 승강기, 경사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
사회와 나라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단골 미용실 원장님 자제분이 장애우라서
미용실 가면 이런저런 불편한 점을 듣는다.
가장 불편한 점이 휠체어가 다니지 못하는 곳은
아예 갈 엄두를 못 낸다는 것이다.
비장애우들은 어디든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지만
장애우들에게는 이동할 수 있는 권리마저 원천봉쇄당해 있다는 것이다.
장애우들이 마음껏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야말로 우선 해야 될 일이 아닐까 싶다.
그래야 장애우들이 학교 와서 또래들과 공부하고, 놀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천둥소리는 결국
장애우와 비장애우로 이분화시키는 것은 "사회"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이렇게 앞에 나와 강의하는 것이 힘들지 않다면서
다시 한 번 호탕한 웃음 소리를 만들었다.
아이들에게도
천둥소리처럼 장애우들이 직접 나서서 장애 인권 교육을 한다면
훨씬 더 아이들의 생각이 긍정적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