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봤어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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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의 19금 소설이라는 것 때문에 이 책이 정말 궁금했다.

<완득이><가시고백>등 청소년문학의 대표주자격인 김려령 작가가 어떤 식으로 성인소설을 썼을까 호기심이 생겼다.

 책을 보고 펼쳐든 순간 내친김에 다 읽을만큼 흥미롭고 재미 있었다.

흡사 <완득이>를 읽어나갈 때처럼 한달음에 다 읽었다.

19금 소설답게 수위는 좀 세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다.

 

46세의 중견작가 정수현.

중견작가에다 모 출판사의 편집자로서 어느 정도 성공도 했고,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인 아내를 둔 데다

본인의 예쁘장한 외모 등으로 겉에서 보기에는 행복한 삶을 누릴 것 같은 그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아내하고는 남남처럼 지내고, 작품을 쓴 지도 좀 되고,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씻지 못할 아픈 기억이 있다.

그건 바로 폭력에 대한 기억들이다.

술 취한 아버지는 무지막지하게 형을 때렸고, 아버지에게 맞은 형은 동생 수현이를 때렸다.

어머니는 무능한 아버지를 빌미 삼아 몸을 팔기도 하였고, 지금은 늘 전화로 돈을 부쳐라고 읊어댄다.

별로 행복하지 않은 가정사는 그를 글쓰기에 매달리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기억들을 애써 외면한 채 어쩌면 시체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정수현의 눈에 한 여자가 클로즈업 된다.

바로 살인 소설을 주로 쓰는 통통 튀는 매력덩어리 후배 작가 서영재이다.

수현의 마음에 처음으로 저 여자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고,

등단하기 전부터 예쁘장한 정수현을 짝사랑했던 서영재는 열정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

 

화양연화 같은 그들의 시간도 잠시

둘의 사랑은 수현이 어려서 경험한 폭력을 그대로 영재에게 휘두른 결과 파국을 맞게 된다.

아버지의 폭력을 보고, 형에게 맞고 자란 수현은 자신을 거부하는 영재의 한 마디에

되돌릴 수 없는 폭력을 가하고 말았다.

폭력이 오고 간 둘은

더 이상 예전의 연인 사이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수현은 결국 자신이 저질렀던 또 다른 잘못들과 영재에 대한 폭력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꽃중년처럼 보이는 수현이었지만

속은 썩은 내가 진동하고 있었던 그였다.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을 청소년기에 문학 소년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거기다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일들을 어떻게 감내할 수 있었을까!

아마 수현의 마음은 영재가 아니었다면 평생 누구 한 번 사랑하지 못하고 꽁꽁 얼어붙어 있었을 게다.

수현에게 영재는 그런 존재였는데 무엇보다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무자비하게 때렸으니.....

지난 일들도 엄청난 죄의식으로 남아 있었지만 영재를 때린 것이야말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으리라.

그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해되면서도 아버지와 형의 일을 보면서 그 방법 밖에 없었나 싶기도 하다.

 

"너를 봤어"는 수현이 영재를 처음 봤을 때의 그 떨림을 의미하기도 하고

수현이 끔찍한 일을 저지르던 그 순간, 너(수현이)를 봤어 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거기다 마지막 영재와 도하의 합작품 제목이기도 하고 말이다.

 

등장인물들의 직업이 작가라서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았다.

영재의 모습 중에 김려령 작가의 모습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은교>가 많이 떠올랐다.

변영주 감독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가 떠올랐다지?

성공한 작가이지만 마음 한 구석이 늘 텅 비어 있던 그들에게 한 줄기 햇살 같은 존재로 다가온 여인들과의 사랑 이야기라는

점이 말이다.

두 작가 모두 파국을 맞는 결말 부분도 비슷하고 말이다.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또 다른 것을 찾아 떠나는 모험을 즐기는 김려령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그게 어른을 겨냥한 소설이든, 청소년소설이든, 동화든지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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