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동안 둘째 구구단을 가르치다가 답답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우리 반 아이들 가르치는 건 아무리 열불이 나도 제어가 되는데
수퍼남매 가르칠 때는 가끔 제어가 안 돼 감정이 폭발하곤 한다.
자녀를 가르치기는 정말 힘들다.
아마 학원에 보내는 이유 중의 하나도 자녀 가르치다가 화병 날까 싶어서가 아닐까 싶다. 


 

구구단을 가르쳐 보니 둘째는 누나에 비해 암기력이 정말 뒤진다.
누나는 구구단을 아주 쉽게 줄줄줄 잘 외웠는데
아들은 왜 하나 가르쳐주면 하나 까먹는 지 모르겠다.

받아쓰기도 누나는 거의 다 100점에 한 두번 90점인데

아들은 받아쓰기도 딱 한 번 100점에  80점 아니면 90점이다.

구구단 못 한다고 누나와 비교해서 야단치면 마음 여린 아들은 훌쩍훌쩍 울고....
누나는 구구단을 잘 외웠는데 왜 동생은 힘들어하는 걸까?

 

교실의 아이들도 남녀 차이는 확실하다.
저학년을 하니 남녀의 발달 차이가 확 드러난다.

고학년에서는 남학생들이 산만하긴 해도 더 창의적이기도 하고, 영특하다고 느낀 적이 여러 번이었는데

저학년에서는 여학생들이 학습면, 생활면에서 많이 앞선다. 왜 그럴까?


 

오늘 교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5교시 정상 수업을 하는 내내

여학생들은 발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여러 명이 거수를 하는데

남학생들은 고작 1-2명만 손을 든다.

급식도 여학생들은 6명이 5칸을 깨끗이 먹어 상표를 탔는데

남학생은 겨우 한 명만 다 먹었다. 보통은 한 명도 없다.

어떻게 급식까지 여학생보다 못 하는지 솔직히 이해가 안 간다.

다른 남학생들은 발표에도 관심이 없고, 급식도 겨우 3칸 합격만 하고 나가 노는 것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는데

여전히 여학생에 비해 발표력도 떨어지고 급식도 뒤쳐지는 남학생들을 향해 잔소리를 했다.

제발 노는 것만 욕심 내지 말고 급식도 잘 먹고 발표도 여학생들처럼 잘하라고...
화이팅 좀 하라고 말이다.
 
퇴근 후,

딸과 아들

남학생과 여학생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궁금하여 책을 들춰 봤다.

이건 수퍼남매의 문제, 우리 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남편과 연애할 때부터

딸과 아들을 기르면서 남녀의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알긴 하였지만

그 동안 몰랐거나 간과한 사실들이 이 책에 적혀 있었다.

 

 

 

 

 

 

 

 

 

우선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에 비해 느리다"라는 말은 틀렸다. 느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남아는 여아와 다른 발달 순서를 밟는데 유감스럽게도 자신의 발달 순서에 불리한 환경을 제공받는다.

게다가 부모가 아이에게 기대하는 능력은 얄궂게도 대부분 여아의 발달 단계에 맞춰지고 학습 과정 또한

그렇다.

그래서 남자 아이들은 항상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여아는 소근육과 사고, 언어가 먼저 발달하는 데 비해,

남아는 대근육과 행동이 먼저 발달한다.

여자아이는 발달 시기에 맞게 말하기와 읽기, 쓰기를 배우고,

별 어려움 없이 원하는 정보를 얻고 실력을 발휘해서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남자아이들에게 그 시기는 대근육을 발달시키는 시기이다.

한창 움직이고 싶어하는 아이에게 우리는 앉아서 공부할 것을 강요하는 셈이다.

이 시기에 남자아이의 대근육 발달은 여자아이를 능가하지만,

아무도 아이의 대근육 발달을 칭찬해주지 않는다.

 

이 부분을 읽는데 망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 동안 남녀의 차이를 안다고 했지만 그건 성인 남녀의 차이를 이해한 것일 뿐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의 남녀 차이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었다.

고학년할 때는 별로 느끼지 못했던 남녀의 차이가

왜 저학년을 담임하면서 불거져 나온지도 이제 이해가 되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 동안 누나와 심하게 비교당한 울 아들과

오늘 반 여학생들과 비교해서 열심히 혼이 난 남학생들에게 많이 미안해졌다.

비교해서는 안 되는데 화가 나면 나도 모르게 비교할 때가 있다.

그들이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 것인데

나의 무지로 인해 괜히 야단을 맞은 셈이다.

 

내가 왜 저학년 남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답답해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 시기의 남학생들은 교사나 학부모가 필요로 하는 제반 능력이 여학생에 비해 2년 정도 느리다는 것이다.

그러니 발표력도 여자에 비해 약하고, 하물며 급식 먹기도 잘 안 되는 게 이해가 된다.

대근육이 발달하는 시기이기에 한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따라서

교실에서 산만해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학교 현실에서 대근육 발달을 평가할 일은 극히 드물고(체육 수행평가 정도)

여러 모로 여학생들에게 유리한 환경이기 때문에 남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여학생들보다 뒤쳐져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아이들을 못한다고 혼냈으니.

" 선생님이 몰라서 너희들을 야단쳤다. 미안하다"

내일부터는 남학생들이 발표 안 해도 '나중에 잘하겠지' 하고  넘어가야겠다.

 

책에서 하지현 교수는 "남자 아이를 키우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꾸준히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는 것" 이라고 말한다.

 

꾸준히 인내를 가진다는 말이 가슴에 콕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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