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가는 줄 모르게 하루하루 살다보니

그 분의 서거 4주기가 된 줄도 모르고 있었다.

남편과 봉하 마을에 꼭 가 보자 약속했는데 그동안 뭐가 그리 바빴는지 가 보지 못했다.

그 분이 스스로 부엉이 바위에 자신의 몸을 던지던 날,

너무 놀라서 가슴을 쓰러내리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얼마 전 그 분이 국회의원에 출마하시던 시절,

부산에서 공터 연설을 하던 영상을 봤다.

그런 참담함까지 다 견딘 분인데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고 생각하니 더 안타까울 뿐이다.

둘째가 좀 더 튼튼해지면

온가족이 그 분의 숨결이 느껴지는 봉하마을에 꼭 가 볼 것이다.

 

4년 전 그 분이 떠난 날,

울 반 어린이 한 명도 갑작스레 전학을 갔다.

울 반에서 나의 비타민 역할을 해 주는 그런 아이였는데...

어제 오후 학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적잖이 서운했다.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아이들과 이별 카드라도 만들었을텐데.

2교시 말미에 나와서 작별 인사를 하라고 했더니

"그 동안 고마웠다"고 말한다.

한 번 꼭 껴안아 주고,

전학 가서도

" 건강하고, 책 많이 읽어라" 고 말해 주고,

짐을 챙겨 주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은 그 아이를 끌어안고 난리가 났다.

엄마와 그 아이가 떠나자

갑자기 여자 어린이 한 두명이 울기 시작하더니

점점 우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나중에 꺼이꺼이 대성통곡을 하고 한 남자 아이는 우는 아이들 찾아다니며 휴지를 잘라 주고....

3교시 수업을 못 할 정도로 울었다.

겨우겨우 진정을 시켰다.

 

해마다 전학생이 있곤 하였는데

오늘처럼 여러 명이 꺼이꺼이 우는 것은 처음이다.

어른이나 아이나 상대방에 대해서 느끼는 것은 매한가지인가 보다.

그 아이의 인품이 좋았길래

나도 아이들도 많이 서운하고 아쉬운 것 같다.

좋은 사람들은 왜 빨리 떠나는지 모르겠다.

여자 비타민 아이를 따로 불러서

" 넌 절대 전학 가면 안 돼" 하며 도장, 복사, 코팅까지 다 했다.

2명이나 결원이 생겨서 어떤 아이가 올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아이들에게 오늘부터 집에 가서

착한 아이가 오도록 기도를 열심히 하라고 했다.

 

하교 시간에 아까 너무 울어서 에너지 충전 좀 하라고

미니 초콜릿 바 하나씩을 줬더니

언제 울었나 싶게 해맑게 웃는다. 역시 1학년이다.

친구가 전학가는 걸 보고 우는 아이들을 보니

어쩐지 마음이 흐뭇해진다.

그렇게 정 많은 사람으로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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