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강 - 2012 볼로냐 라가치 상 수상작 Dear 그림책
마저리 키넌 롤링스 지음, 김영욱 옮김, 레오 딜런.다이앤 딜런 그림 / 사계절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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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만큼 비밀로 흥분되는 때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어렸을 때였어요. 언니와 같이 학교 뒷산에서 옥색을 캐곤 하였습니다. 옥색은 분필처럼 글씨가 써지는 것이었는데 그걸 발견하고는 우리 둘만이 아는 상자에 넣어 고이고이 간직하곤 했었죠. 가끔 언니와 선생님 놀이를 할 때 언니는 그 옥색으로 분필 삼아 선생님 역할을, 나는 학생 역할을 하곤 하였답니다. 행여나 누가 와서 옥색이 들어있는 보물 상자를 가져갈까 봐 얼마나 마음이 조마조마했는지 모릅니다. 그 당시 남자 아이들에게 딱지 상자가 보물 상자였다면 우리 자매에게는 옥색 상자가 보물 1호였지요. 옥색을 모아놓기만 하고 아까와서 쓰지 않는 바람에 결국 나중에는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 추억만은 남아 지금까지도 날 행복하게 만듭니다. 비밀을 간직한다는 것은 그런 것 같습니다. 커다란 추억 하나를 나에게 선물하는 것이죠. 그래서 일까요? 아마 제목 때문이었겠지만 '비밀의 강'을 처음 봤을 때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도 어린 시절 비밀로 행복했었던 그 추억이었습니다. 과연 이 '비밀의 강'에 숨어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으로 책을 펼쳤습니다. 

 

 

  보통 그림책에는 잘 쓰지 않는 검은색 표지에다 그림 스타일마저도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독특하면서도 신비로와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긴 이 책은 내게 여러 면에서 즐거움을 맛보게 해 주었습니다. 일단 작가가 성장 소설로 유명한 '아기 사슴 플렉'을 쓴 마저린 키넌 롤링스라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알고보니 이 글은 그녀가 죽은 뒤에야 비로소 발견된 유작이더군요. 그 때가 1955년이었는데 인종 차별이 심했던 때인지라 발간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합니다. 주인공이 흑인 여자아이였기 때문이죠. 그 때까지만 해도 그림책에 흑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당시 초판본을 그린 레너드 웨이즈 가드는 여자 아이가 흑인이라는 것을 숨기려고 일부러 커피색 종이에 그렸다고 합니다. 이번에 나온 라가치 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두 번째 만들어진 책입니다. '모기는 왜 귓가에서 앵앵거릴까?'란 그림책으로 이제는 우리들에게도 제법 잘 알려진 딜런 부부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물론 여기에서는 흑인임을 감추기 위한 꼼수를 더 이상 부리지 않습니다. 흑인의 인권이 그만큼 나아졌다는 걸 이 그림책을 통해서도 확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원래 딜런 부부의 그림을 좋아했습니다. 레이 브래드버리가 썼던 '밤을 켜는 아이'로 처음 만났고 인류 역사상 등장한 모든 그림 스타일을 다 반영했던 '무슨 일이든 다 때가 있다'로 팬이 되었죠. 그래서 이번 그림책도 아주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림책마다 늘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주었던 그들이었기에 이번엔 또 어떤 새로운 그림을 보여줄까 잔뜩 기대를 했습니다. 역시나 딜런 부부였습니다. 이번 그림도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스타일이더군요. 그들의 그림을 보면서 가장 많이 기억났던 것은 '앤서니 브라운'이었습니다. 앤서니 브라운은 그림 속에 이런저런 자잘한 비밀들을 숨겨놓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책은 마치 숨은그림찾기 같습니다. 그런데 '비밀의 강'의 딜런 부부의 그림도 이와 비슷합니다. 그림 속에 자잘한 숨은 그림들이 참 많이도 있습니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그런 그림 찾아내는 재미도 좋았습니다.

 

              

 

 아들도 처음에는 근사한 앞표지 그림에 혹하여 그림책을 보다가 제법 글씨가 많아 중간에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저기 숨은 그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그림 찾기에 흥미를 느낀 나머지 결국 끝까지 다 읽더군요. 개인적으로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이들이 얼른 이해하기에는 좀 어려울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림 덕분에 끝까지 완주하는 것을 보고 다시금 그림책은 그림도 글만큼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플로리다 숲 속 작은 집에 살고 있는 칼포니아는 생선 가게를 하는 아빠에게서 더 이상 물고기들이 잡히지 않아 살기 어렵게 되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보통의 아이라면 아빠의 그 말을 흘려 들었겠지만 어린 시인인 칼포니아는 아빠의 그 말이 뇌리에 박혀 하루 종일 물고기 생각만 합니다. 칼포니아는 자기가 직접 나서서 물고기를 잡기로 결심하고 마을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알버타 아주머니를 찾아갑니다. 그 아주머니로 부터 '비밀의 강'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된 칼포니아는 바로 '비밀의 강'을 찾아 나섭니다.

 

             

 

  아버지를 돕기 위해 직접 물고기를 잡으러 나서는 칼포니아는 그 마음이 참 따스해 보입니다. 하지만 칼포니아의 가정은 넉넉해 보이지 않습니다. 딜런부부는 그 사실을 그림 여기저기에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1-2번 봤을 때는 나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는데 오늘 다시 보니 눈에 들어왔어요.  깨진 꽃병, 손잡이가 하나 없는 서랍장, 금이 간 침대, 끈으로 꽁꽁 동여맨 의자 다리 등등. 칼포니아 집 곳곳에 가난의 흔적이 남아있네요. 당시만 해도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했던 미국. 거기다 별로 여유롭지도 못한 가정. 그렇게 칼포니아의 환경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포니아는 자연을 사랑하며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남도 위할 줄 아는 따스한 마음을 지녔습니다. 거기다 참 천진난만하기도 합니다. 아침에 자신의 잠을 깨우는 이른 새소리에서 사랑의 밀어를 들을 줄 아는 아이입니다. 그렇게 자연의 어떤 작은 하나라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마치 자기 일처럼 보듬어 안으려는 그 마음. 사랑이라고 밖에는 달리 말할 수 없는 그 마음이 제 생각엔 칼포니아를 시인으로 만들어 준 것 같아요. 칼포니아에게 시란 나 아닌 다른 존재를 헤아리는 것이며 그 이해를 통해 그냥 눈으로만 보면 볼 수 없었던 자연의 온갖 생명들에게 간직된 비밀을 엿보게 되는 하나의 창문입니다. 아마 그래서 그 누구도 볼 수 없었던 '비밀의 강'을 칼포니아는 찾을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싶어져요.   

 

          

 

   칼포니아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자화상이 있다면 나는 바로 이 그림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다른 존재를 자신만큼 소중히 여기면서 먼저 깊이 이해하려고 하는 칼포니아의 모습이 정말 잘 나타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 그림책에 나오는 '비밀의 강'이 정말로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것 같습니다. 칼포니아에게 비밀의 강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알버타 아주머니는 나중에 칼포니아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비밀의 강은 네 마음 속에 있단다. 네가 원할 때면 언제든 그 곳에 갈 수 있지. 자, 눈을 감아보렴.

 그럼 보일 테니까"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오래 생각한 끝에 알버타 아주머니의 이 말은 사실 이걸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연과 사람을 자신만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 비밀의 강을 찾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비밀의 강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칼포니아가 가진 사랑으로 가득찬 마음이 비밀의 강이 되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강에 그토록 많았던 메기들은 그만큼이나 풍성한 칼포니아의 사랑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건져온 메기를 칼포니아가 부엉이와 곰 그리고 표범에게 나누어주는 건, 다 같이 어려운 시절을 살고 있는 그들에게 칼포니아의 사랑을 나눠주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널 겁주려 할 때

가장 먼저 마음을 읽어 줘야 해.

그럼 절대로 더 괴롭히지 않을 테니까.

가끔씩 어떤 누군가는 " 고마워." 라며 인사말도 건넬 테니까.

 

 이건 숲에서 세번째로 표범을 만났을 때 칼포니아가 들려주는 시입니다. 남을 먼저 헤아리려는 사랑 가득한 칼포니아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뒤에 숲을 빠져나오면서 두루미가 떨어뜨린 깃털 하나를 칼포니아가 주워 자신의 머리에 꽂는 것도 역시 이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서양에서 두루미는 부부애가 강해서 사랑과 평화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니 그 깃털을 머리에 꽂는 것은 칼포니아가 두루미와 같은 사랑의 존재라는 걸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메기가 바로 칼포니아 사랑의 은유라는 것은 그 메기들을 가져간 아버지가 마을 사람들에게 하는 것에서도 나타납니다. 아버지도 칼포니아가 동물들에게 그랬듯이 힘든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 메기들을 돈을 받지 않고 그냥 나눠주니까요. 이걸 사랑이 아니라 달리 무엇으로 볼 수 있을까요? 

 

  그림책에는 '힘든 시기'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옵니다. 저는 그래서 마저린 키넌 롤링스가 사람이 살면서 언제든 만나게 되는 힘든 시기를 어떻게 이겨나갈 것인지 바로 거기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 이 책을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해답은 바로 사랑인 것이죠. 칼포니아는 정말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지만 거기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흑인이고 집이 가난해도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남을 자신만큼 아끼는 그 마음은 털 끝하나 상처입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마음 때문에 칼포니아는 힘든 시기를 행복하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부엉이, 곰, 표범을 비롯하여 다른 마을 사람들까지 결국은 이겨내게 만들었습니다. 사랑만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힘든 시기라도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이야기는 미국에서 대공황이 한창일 때 쓰여졌다고 합니다. 대공황은 지금도 역사책에서 가장 어렵고 힘들다고 말하는 시기입니다. 정말 어느 누구하나 힘들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마저린 키넌 롤링스는 그토록 힘겨운 시절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힘든 시기를 잘 보낼 수 있을까 생각했고 그 대답을 이와 같은 이야기로 만들어 들려준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비밀의 강'은 마저리 키넌 롤링스가 독자들에게 건네는 사랑의 메기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여기에 담긴 마저린 키넌 롤링스의 주제를 더욱 잘 보여주기 위해 딜런 부부는 그림으로 이렇게도 표현했습니다.

 

 

 딜런 부부는 뒷표지에 이렇게 비밀의 강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칼포니아 가족 셋이서 아침 식사를 하는 장면을 유심히 보면 바로 이 그림이 벽에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칼포니아 가족이 식사하는 자리에 저 그림이 있다는 것은 비밀의 강은 어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가족들의 사랑이 충만한 공간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서로 믿고 헤아리며 더욱 사랑하면 칼포니아 가족이 그랬듯이 얼마든지 이겨나갈 수 있다는 것이죠.

 

 결국 '비밀의 강'은 살면서 힘든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보여주는 책입니다. 힘들다는 핑계로 나만 위하면서 살지말고 그럴수록 다른 생명이나 타인을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찾아낸 이 책이 간직한 비밀이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세상에 나온지는 오래되었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낡았다거나 남의 이야기 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나라도 몹시 어렵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지난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비밀의 강'이 세상에 나왔던 그 대공황만큼이나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칼포니아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며 지금 우리들에게도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전해주는 그대로 비록 지금이 아주 힘든 시기이지만 사랑으로 이겨나갔던 칼포니아와 마을 사람들처럼 우리 역시도 '사랑'으로 함께 한다면 잘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마음 속에 원래부터 있는 '비밀의 강'을 찾아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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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9 0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19 0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