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이 울려 일어나 보니 주위가 온통 깜깜하다. 날씨가 흐린 탓이었다.
땅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우산을 들고 나섰지만 쓸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날에는 아이들이 더 재잘재잘댄다. 각오를 해야지.
주요행사가 하나 있는데 바로 학부모연수이다.
출근하자마자 교무부장샘이 차 준비, 단상 준비, 멀티실 청소를 해야 한다고 하셔서 순간 멘붕이 왔다.
나는 가정통신문까지가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런 일들을 주문하시니 마음이 바빠졌다.
다행히 새로오신 교감님께서 1학년 쌤들은 수업에만 집중하라고 하셔서 안심하였다.
교감님 최고!!!
은근 꼼꼼하시고, 합리적이시고, 유머러스하시다.
오늘 연수는 교장님과 교감님께서 신입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연수를 하는 것이다.
수업 후 교장실에 내려가서 잘 끝나셨는지 여쭤 보니
50여 분 오셨는데 작년보다 현저히 인원수가 줄었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1년이 이렇게 다르다.
그만큼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고, 그건 어떤 의미로 가정 경제가 악회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학부형 총회 때도 못 오시는 분들이 꽤 있겠다 싶다.
학부형 총회 때는 다 오셔야 하는데 말이다.
선 긋기를 하는데 오늘은 유난히 틀리는 아이들이 여러 명 있었다.
모두 남자로 5명 정도가 틀린 것 같다.
다시 설명을 해 주고, 직접 같이 해 봤는데도 여전히 틀려서 집에 가서 엄마와 하라고 하였다.
오후에 동학년샘들과 대화를 하다보니 다른 반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고 한다.
주의력이 약한 아이들은 눈으로 본 것을 손으로 그려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단체 사진을 찍었다.
정문 현관에 학급 액자를 만들어 놨는데 거기에 필요한 사진이다.
3열 횡대로 만들어 옆반 선생님을 잠시 불러서 나도 함께 찍었다.
찍기 전에 큰 소란이 일어났다.
한 남자 아이가 계속 장난을 하는 바람에 아이들이 이르고 정작 본인은 소리를 꽥 질러대고....
나도 들으란 듯이 큰 소리로 혼을 내 줬다.
교실에서 그렇게 큰 소리를 내다니.....
나중에 살짝 불러서 " 담엔 그렇게 소리 지르면 안 된다고"고 타이르니 " 죄송합니다" 한다.
그럴 때 보면 멀쩡한데.
생기부에 들어갈 개인 증명 사진을 찍어야 해서 아이들에게 색칠공부 한 장씩을 나눠 줬다.
뭔가 작업을 해야 할 때 그림공부를 시키면 참 유용하다.
출석번호 순으로 교실 앞문 쪽에 놔둔 의자에 앉아 사진 촬영을 하였다.
사진을 찍다 보면 아이들이 참 이쁘다는 걸 느낀다.
이렇게 한 명 한 명 보면 이쁜데 모아 놓으면 와글바글하니...
색칠공부를 시켜 보니 미술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몇 명 눈에 보인다.
김@@, 이@@ 등등
1학년 치고는 아주 색칠도 꼼꼼하게 잘하고, 옆에다 스스로 꾸민 것을 보니 창의력이 보인다.
칭찬을 많이 해 주었다.
간혹 가다가 한 가지 색만으로 낙서하듯이 그리는 아이가 발견되곤 하는데 그런 아이는 다행히 없었다.
유치원에서 아님 가정에서 색칠공부를 많이 했는지 색칠공부 실력은 높은 편이었다.
크레파스로 색칠을 하다보니 손에도 묻고, 책상에도 묻어서
물티슈 있는 사람은 가져다 닦으라고 했다.
없는 친구들한테는 한 장씩 빌려주라고 했더니 역시 잘 빌려주는 착한 신입생들
빌린 아이들은 나중에 가져 오면 꼭 갚으라고 해줬다.
손도 닦고, 책상도 반짝반짝 잘 닦는 어린이들!
넷째 시간에는 <우리들은 일학년>이란 노래를 배웠다.
인생에 단 한 번 뿐인 일학년.
일학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노래인데
어제 배운 <사뿐사뿐 걸어요>노래는 음을 못 잡더니
오늘은 그런대로 잘 따라 부른다.
2분단이 제일 잘 불러서 급식을 가장 먼저 받았다.
작년 아이들보다 편식하는 습관은 없는 듯해서 다행이다.
맞아. 우유도 잘 먹는다.
아이들 다 가고 나서 책상 속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김##가 숙제할 거리를 가져 가지 않았다.
전원 숙제를 다 해와야 재미있는 그림책을 읽어준다고 했건만.....
어제도 통신문을 고대로 학교에 놔두고 가서 오늘 숙제 검사에서 걸렸는데
내일도 걸리게 생겼구만.
전체에게 책상 속에 있는 8칸 공책, 통신물 파일 가방 속에 넣으라고 했건만 또 안 듣고 있었던 게지.
이런 아이들이 99% 남자 아이들이다.
남자 아이 부모님들은 그래서 여자 아이들보다 2-3배 신경을 써야 한다.
통신문 파일 검사를 해 보니 오늘에서야 전원 다 가져왔다.
이제야 서서히 생활습관이 길러지는 것 같다.
상담자료를 쭉 훑어보니 울 반 어린이들이 5명 빼고는 모두 큰 아이이다. 허걱!!!
큰 아이인 경우에 또 장단점이 있다.
관심이 많다는 것이 장점이고, 서툴다는 것이 단점이다.
그래서 통신문 회수율이 저조했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둘째 자녀 보호자 두 분이 다행히 센스 있게
청소도 해 주시고, 커튼도 빨아 주셔서 그나마 다행이다.
큰 아이를 키워 본 보호자들이 훨씬 대하기가 편하다.
큰 아이 보호자들은 자녀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조그마한 일에도 전정긍긍하고, 상처 받고 그러는 경향이 있다.
일 년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도 큰 애 입학시킬 때 내가 더 떨렸던 기억이 난다.
둘째 때는 한결 여유로왔다.
담임도 마찬가지이다.
첫 일학년을 맡았을 때 난 아이들의 수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정말 기대치가 높았고, 요구하는 게 많던 교사였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린이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이제는 한결 여유가 생겼고, 아이들 수준도 파악되고,
지금 몰라도 나중에 천천히 알게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큰 아이를 학교에 보낸 보호자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저 아이가 " 학교가 즐겁다. 우리 선생님 좋다. 친구들이 좋다" 라는 말만 나오면 성공한 일학년이니
다른 것에 너무 중점을 두지 마시길 바란다.
보호자가 너무 경직되고, 긴장하면 어린이들도 그렇게 된다.
그러니 보호자가 먼저 기대를 낮추고, 욕심을 버리고, 편안한 마음가짐을 갖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