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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가게 - 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ㅣ 보름달문고 53
이나영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13년 1월
평점 :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 윤아처럼 사는 아이들이 진짜 있는 걸까?" 였다. 동화가 되면서 약간 과장은 있겠지만서도 개연성이 있어야 하기에 윤아처럼 살고 있는 초등학생들이 분명 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많이 착잡하였다. 윤아의 삶을 지켜 보는 것이 엄마로서, 교사로서 참 힏들었다.
고작 초5인 윤아의 삶은 고3을 방불케 한다. 아니 내가 고3일 때도 윤아처럼 살지는 않았다. 비단 윤아의 이야기가 단지 동화 속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이렇게 사는 아이들이 있다는 그 자체가 참 씁쓸하였다. 누가 윤아에게 행복했던 추억과 10분의 사간을 맞바꿔 1등을 하라고 부추겼을까? 바로 어른들이다. 윤아의 엄마가 윤아에게 1등만이 살 길이며 네가 행복해지는 길이라며 지속적으로 말해왔고 너의 1등이야말로 엄마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며 그 어린 아이에게 지독한 부담감을 안겨 주었다.
성실하고 공부 잘하지만 만년2등이었던 윤아는 우연히 발견한 전단지에 시간을 판다는 문구가 마음에 들었고, 시간만 살 수 있으면 1등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 시간을 얻는 댓가가 자신의 행복한 추억 하나와 맞바꾼다는 것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오로지 1등이 되기 위해서는 그까짓 추억 따위는 없어도 되었고, 10분 동안 양심을 팔고 1등의 답안지를 베끼거나 다른 오빠의 토플 답안지를 베껴 쓰는 것도 주저하지 않고 한다. 그래서 1등이 되었다. 윤아는 과연 행복할까? 윤아가 1등이 되었으니 엄마도 행복할까?
지난 여름, 대치동 어느 독서실의 풍경이 누리꾼들을 경악하게 한 일이 있었다. 바로 어떤 초등학생이 독서실 자기 자리에다 " 나의 목표는 교원대학교" 라는 대자보를 붙여 놓고, 고3처럼 공부하는 모습이 올라왔던 것이다. 윤아의 이야기가 비단 지어낸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을 방증하는 예라고 생각한다. 1등만이 승자이고, 나머지는 모두 패자라는 무한 경쟁의 원리에 사로잡힌 이 사회는 마음껏 뛰어 놀고, 친구들과 수다 떨고, 꿈을 이야기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1등을 위해서는 양심도 추억도 친구도 다 부질 없는 짓이라고 부추기고 있다. 지금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야 그리고 1등이 되어야 성공하는 삶,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아이들에게 세뇌를 시키고 있다. 그런 부모 밑에서, 그런 사회적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신이 잘하는 게 무엇인지, 자신이 꿈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오직 1등이 되기 위해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서로서로 학원 스케줄 때문에 놀지도 못하고, 친구가 아니라 저 아이는 내가 밟고 일어서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고3처럼 살아가고 있다.
밥을 먹으면서 영어 cd를 배경으로 틀어 놓고, 하교하자마자 학원으로 직행하여 이 학원 저 학원으로 투어를 하고, 간식은 편의점에 들르거나 패스트 푸드로 때우고, 불 꺼진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읽을 시간마저도 없이 또 학원 숙제를 한다. 하루를 25시간처럼 살고 있는 윤아를 보면서 이게 현실이라면 더 이상 우리 나라에 미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렇게 공부하여 윤아가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한다고 하자. 윤아는 과연 행복할까? 이렇게 초중고 시절을 보낸 수많은 윤아들이 사회인으로 있는 사회가 과연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엊그제 옛동료들을 만났다. 한 분이 수석교사가 되셔서 교원임용고사 면접을 하셨다고 한다. 요즘 신규들의 학력을 보면 우리 때와는 완전 차이가 난다. 유명한 외고 출신들도 많고, 강남 출신들도 부지기수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사라진지 오래다. 면접을 보는데 하나같이 예쁘고, 잘 생기고, 출신 고등학교도 좋고, 심지어 지방에서 교직 생활을 하다가 서울로 시험을 보러 온 현직 교사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수석님은 면접을 보면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곱게 자란 이 사람들이 고된 교육 현실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 싶었단다. 교사들의 학력은 예전보다 막강해졌지만 교사를 둘러싼 환경은 더 열악해진 상황에서 공부만 하고 자란 이 새내기들이 이 거친 세상을 잘 헤쳐나갈까 싶으셨단다. 면접을 하는 도중에 말이 막혀 우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특목고 출신에다 영어도 기본적으로 잘하고 예전의 교사들보다 여러 가지 방면에서 뛰어난 새내기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파심이 생기는 것은 그들이 좋은 환경에서 오로지 공부만 하다 보니-오죽 하면 임용고시라고 할까?- 너무 세상 물정을 몰라 갈수록 거칠어지는 학부모들과 아이들을 잘 견뎌낼까 싶으셨단다.
<시간 가게>와 새내기들의 이야기가 겹쳐졌다. 공부만 잘하는 아이 윤아가 자라서 일류 대학에 진학하고, 또 잘 나가는 전문인이 된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초중고 시절에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현실을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온전히 저당잡힌 채 공부만을 위해 달려온 윤아가 과연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온전하게 살 수 있을까? 공부 잘하고, 1등하며,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다니면 행복하다는 공식이 성립한다면 소위 말하는 엘리트 그룹에서는 자살자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 카이스트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이나 직업군에서 치과의사들의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자료만 봐도 공부 잘하고, 좋은 직장 다니는 것이 행복한 길로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 준다. 주변은 돌아보지 않고, 오직 <공부>만 바라보며 한 눈 팔지 않고 공부하여 판사가 된다면 올바른 판결을 내릴 리 없으며, 공부만 잘하여 의사가 된다면 소명감이 강한 의사가 될 수 없으며, 공부만 잘하여 교사가 된다면 아이들의 영혼을 울리는 선생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난 근본적으로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딸에게 " 너, 꼭 이 책 읽어 봐라. 니 또래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 지 알면 깜짝 놀랄 거야." 하면서 강력하게 추천해 주었다. 딸은 매번 자기가 반에서 유일하게 학원 안 다니는 천연기념물이라고 말하곤 한다. 어떤 때는 나도 불안하다. 이렇게 천연기념물로 자라게 해서 나중에 힘들게 살면 어쩌지 불안불안하다. 하지만 그래도 윤아 엄마같이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1등을 강요하는 엄마, 공부만이 최선이라고 말하는 엄마, 너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라고 부담을 팍팍 주는 엄마이고 싶지는 않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부모들이 하나 둘 많아지면 아이들이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뜻이 맞는 사람들이 성미산에 모여들었다지. 그 곳이 궁금하다.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사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아이들이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부모들이 많아지면 조금씩 사회가 변화할 터인데....난 적어도 내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해서든 1등이 되라고 말하는 부모가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지 네 자신이 떳떳하고, 행복하면 된다고 말해 줄 수 있는 부모로 남고 싶다. 그럴려면 깨어 있어야 하고, 깨어 있으려면 이런 책을 읽어야 한다. 이건 무슨 깔대기냐하면 <책 깔대기>이다.
아쉬운 점은 후반부에 가서 너무 급작스럽게 마무리가 된다는 점이다. 다른 독자들도 이 점을 많이 지적하신 것 같다. 그래서 별4개를 주었다. 4/5까지 아주 흥미롭게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갑자기 마무리를 하니 그 점이 정말 아쉬웠다. 후반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정말 현실을 직시하게 해 주고, 문제 의식이 있으며,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웠기에 더 안타까웠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 대한민국 학부모들은 꼭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이렇게 아이들을 윤아처럼 살게 하는 게 맞는 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