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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책장수 조신선 ㅣ 징검다리 역사책 2
정창권 지음, 김도연 그림 / 사계절 / 2012년 12월
평점 :
나는 책을 거의 인터넷서점을 이용해서 구매한다. 편리하고, 다양한 책들이 구비되어 있으며, 배송이 빠르기 때문에 인터넷서점을 이용하는 편이다. 이 전에는 책을 어떻게 구매했었지 떠올려 보니 지금은 사라진 종로서적 같은 대형 서점에 가거나 시내에 가기가 귀찮으면 동네 서점에서 구매했던 것 같다.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중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동네에 서점이 없었기에 사야 될 책이 있으면 반드시 시내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샀던 것 같다. 물론 학교 앞에는 서점 비스무레한 것이 있긴 하였지만 참고서 위주의 책들만 있었지 다양한 책들이 구비되어 있지는 않았었다. 그에 비하면 이렇게 집에서 인터넷으로 주문하여 내가 원하는 책을 손쉽게 받아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나같이 게으른 사람에게는 번화가까지 나가서 책을 구매하는 일이 참 번거롭다. 그래서 난 솔직히 인터넷서점 생기고나서 편리함 때문에 더 책을 많이 구매하게 된 것 같다. .
솔직히 옛날 우리 조상들은 책을 어떻게 구하여 봤을까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그러던 중 사계절 출판사에서 실존인물인 책장수 조신선에 대한 책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책을 보면서 내가 모르던 조상들의 책 이야기에 대해 이모저모 알게 되었다. 오늘날의 서점을 대신하여 조상들에게 책을 사고팔았던 기이한 책장수 조신선의 이야기에 한 번 들어보도록 해 보자.
조선 시대에도 서점 같은 것이 있기는 하였지만 주로 조신선 같은 책장수들에 의해 책이 거래되었던 것 같다. 실존인물이었던 조신선의 원래 이름은 조생이라 하는데 신선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나중에 밝히도록 하자. 조생은 조선 후기 한양에 살았던 아주 유명한 책장수였다고 한다. 조생이 활약한 시기는 영조, 정조, 순조 임금 무렵으로 한양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고 한다. " 기이한" 책장수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그의 외모부터가 독특해서였다고 전해진다. 그의 외모로 말할 것 같으면.
체구는 얼마나 장대만한지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천하대장군'장승만 했고, 뺨은 늘 술에 취한 듯 불그스름했으며, 푸른 눈동자에서는 빛이 번쩍번쩍 나는 듯했대요. 또 수염은 어찌나 붉은지 언뜻 보면 매우 무서웠어요.
이런 범상치 않은 외모만큼이나 그는 언제 봐도 나이가 35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아 마치 불로초를 먹은 듯이 늙지 않고 늘 그 나이정도로 보였으며 전해지는 말로는 그가 130-140살까지 살았다고 하여 그를 조신선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다 그는 다른 책장수들은 보따리에 책을 넣어서 팔러 다니는데 그는 많은 양의 책을 몸 속에 가득 넣고 다녔다고 한다. 이 정도면 기인이라고 할수밖에. 문필가 조수삼은 책장수 조생의 이야기를 <육서 조생선>이라는 책으로 펴냈고, 이 책에서는 조수삼이 어린 아이 추재로 나와 조신선과 함께 책에 대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한다.
조신선에 대한 외모만 들어도 그의 이야기가 정말 궁금해지지 않는가? 조신선 같은 책장수들은 필요한 책을 주문 받아 그 책들을 역관이나 다른 사람들을 통해 공급받고 그 책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파는 유통업자 역할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조신선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중국책들이 인기가 많아서 역관들을 통해 중국책들을 들여와 필요한 이들에게 팔곤 하였는데 이 때도 금서가 있었다고 한다. 이 당시 금서는 조선의 역사를 왜곡한 중국 역사가 주린이 쓴 <명기집략>과 <강감회찬>같은 책들이었는데 나중에 이 책을 읽거나 구해 준 책장수들은 색출당하여 고초를 겪는 일이 발생하는데 그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 또한 조신선 뿐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책을 출판하는 일은 주로 나라에서 도맡아 하였고 이 일을 하는 곳이 바로 <교서관>이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가면 개인 출판업자들이 만든 방각본이 나오게 되는데 이는 교서관에서 나오는 책보다 크기가 작고 조잡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즐겨 찾았다고 한다. 교서관에서는 오자 하나당 30대의 곤장을 맞을 정도로 한 활자라도 틀리지 않도록 교정을 엄밀히 봤다고 한다.
기억에 남는 일은 영조 임금은 궁녀들에게 휴가를 주었는데 집이 가난한 궁녀들은 휴가 기간에도 서점에 나가 필사 아르바이트를 하였다고 한다. 궁녀들은 필사를 할 때 시간이 없기에 흘림체를 주로 사용하였다고 하니 잠시 휴가 나온 그 기간 동안에도 가정에 도움이 되고자 애 쓰던 궁녀들의 고단한 삶이 느껴지던 대목이었다.
옛날 책을 말할 때 몇 권 몇 책 이라는 말을 종종 보게 되는데 여기서 " 권" 이라 함은 내용별로 모은 것이고, " 책 " 이라 함은 지금의 책 한 권을 말함이다. 즉 50권 28책 이라 함은 50 가지의 이야기를 28 책에 나눠 담았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조선 후기에 가면 누가 썼는지 모르는 한글 소설들이 대유행을 하게 되는데 그 중 <완월회맹연>은 무려 180권 180책이나 되었다고 하니 이 정도면 완전 대하 시리즈이다. 무슨 내용이길래 그렇게 아녀자들에게 인기가 있었을지 궁금하다. 규방 여성들의 소설 읽기 열풍을 심히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쓴소리를 한 분들이 계시는데 간서치라 하는 이덕무, 다산 정약용도 포함된다. 그들은 이렇게 일침을 가하고 있다.
이덕무 : 한글 소설을 탐독하여 집안일을 방치하거나 그 외 여자가 할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심지어 돈을 주고 한글 소설을 빌려 보는 등 거기에 빠져 집의 재산을 파탄 내는 자까지도 있다.
정약용 : 한글 소설은 인간의 재앙 가운데 가장 큰 재앙이다. 음탕하고 추한 말들이 사람의 마음을 방탕게 하고, 사특하고 요사스런 내용들이 사람의 지식을 미혹시키며 황당하고 괴이한 이야기들은 사람의 기품을 교만하게 하며 나약한 글들은 사람의 씩씩한 기운을 없애 버린다.
그 당시 아녀자들이 열광하였던 한글 소설을 읽지 못하여 함부로 판단하기 뭐하나 두 사람의 우려하는 글을 읽어 보니 그 당시 아녀자들이 한글 소설에 대한 탐닉이 대단하였던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이 부분에서 전에 봤던 한석규 주연의 <음란서생>이란 영화가 떠오른다. 고금을 막론하고 좋은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단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대목이기도 하였다. 물론 한글 소설이라고 해서 다 음탕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보니 나 어릴 적만 해도 이런 책장수들이 더러 있었던 것 같다. 많이 사라지긴 하였지만 요즘도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주로 전집을 팔러 다니는 방판업자들. 책장수들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책이 귀하던 시절, 조신선 같은 책장수를 통하여 책을 주거니 받거니 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소탕을 당하기도 하던 책장수들. 그들은 책 내용을 다 알지는 못하였지만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그들이 유통하는 책에 대해서 어지간한 상식을 가지고 있던 전문가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필요한 책이 무엇인지 정확히 꿰뚫고 구하기 어려운 책도 구해다 주며 내게 필요없는 책들은 그 책이 필요한 이들에게 처분해 주는 조신선 같은 믿음직한 책장수가 주변에 있다면 인터넷서점보다 더 많이 이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그런 유익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