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아이들에게 고전을 읽어 주다 보니 고전이 이래서 좋구나! 실감한다. 창작동화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깊은 맛을 느낀다고나 할까? 요즘 아이들에게 <플랜더스의 개>를 한 꼭지씩 읽어주고 있는데 천천히 조금씩 읽어 주다 보니 그 깊은 맛이 더 살아나는 것 같다. 그래서 고전을 읽을 때는 속독하지 말고, 천천히 곱씹으면서 읽으라고 하는 것 같다. 완역본에는 플랜더스 지방의 모습을 한 꼭지에 세세하게 담아 묘사를 하였는데 축약본에는 얼마나 잘라 먹고 편집을 했을까 싶다. 축약본을 읽어도 줄거리 파악은 되겠지만 한 문장 한 문장 속에 담긴 작가의 철학과 문장미의 맛은 느낄 수 없을 듯하다. 그래서 어제 아이들에게 축약본을 읽는 것은 마치 독약을 먹는 것과 같다는 말을 해 주었다. 고전을 읽으려면 제대로 된 완역본을 읽으라는 의미였다. 읽기 힘들면 나중에 커서 읽으면 되지 고전을 읽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축약본을 읽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오늘, 울 반 아이가 자신의 고민을 말한다. 선생님은 고전의 축약본을 읽지 말라 하는데 엄마는 축약본을 읽어 두면 나중에 커서 완역본을 읽을 수 있으니 집에서는 엄마 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선생님과 엄마의 주장이 달라서 정말 헷갈린 나머지 나에게 슬쩍 고민을 말한 것이다. 엄마를 설득할 자신이 있냐고 물어보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그럼 너는 축약본 읽는 게 좋니?" 다시 물어 보자  " 아뇨" 라고 대답한다. 이런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 줘야 할까 잠시 고민이 되었다.  선생님 말을 들어라 할 수도, 엄마 말을 들어라 할 수도 없다. 이럴 때가 교사로서 가장 난감하다. 교사의 교육적 방향과 학부모의 방향이 서로 상반될 때 말이다.  

  이런 예는 교사 생활하면서 얼마든지 직면하게 된다. 가장 흔한 예로 나는 사교육과 선행을 하지 말라는 입장인데 학부모 중에는 사교육과 선행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그 속에서 아이는 가치관에 혼란이 올 수도 있다. 난 고작 해야 일 년 동안 그 아이를 교육하는 사람이고, 부모는 그 아이의 평생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비겁하게 보일 지 몰라도 난 이렇게 담임과 학부모의 견해 차이가 있으면 부모말을 따르라고 한다. 난 그 아이의 평생을  책임질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불어 요즘 학부모들은 똑똑해서 담임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수긍하지도  않기에 괜한 논쟁을 하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그 자리에서만이라도 교사의 말에 찬성를 해 주거나 차라리 침묵하셨으면 아이가 덜 헷갈리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일화가 있다. 어떤 식물학박사가 자녀의 담임 선생님이 식물 이름을 아이에게 잘못 가르쳐 준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 앞에서 " 야. 니네 선생님이 틀리셨어." 하면 아이가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고, 선생님 입장도 난처해지실까 봐 틀린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순간은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 박사님은 편지로 선생님이 무안해하시지 않도록 살짝 식물이름을 알려주셨단다. 선생님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시고 박사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제대로 된 식물이름을  자녀에게  다시 알려주셨다고 한다.  선생님도 무안해하지 않고 식물이름도 제대로 알게 되고 ..... 박사님의 지혜가 느껴지는 이 일화를 난 참 좋아한다. 

   만약 박사님이 자녀의 말을 듣자마자 "너희 담임이 틀렸어"라고 말하며 식물이름을 정정해 줬다면 아마 이 아이는 자신이 평생 만나게 되는 교사들을 신뢰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난 학부모들이 이런 지혜를 발휘했으면 좋겠다. 교사도 사람이기에 실수할 수 있고 부모와 다른 견해와 가치관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자녀 앞에서 직접 대고 선생님의 실수와 허물 내지는 자신과 의견이 다름을 말해버리면 결국 손해를 보는 건 자녀라고 생각한다. 특히 초등학생처럼 아직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은 위 똘똘이처럼 누구 말을 따라야 하나 혼란스러울 수 있다.  부모가 담임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자녀 또한 교사를 신뢰할 수 있고 그럴 때 교육의 효과가 극대화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초등학교 아이들 앞에서는 " 너희 선생님이 최고야. 너희 선생님 말이 맞아" 하는 말을 자주 해 주면 아이들이 담임말을 하늘처럼 생각하고 잘 따라하여 교육의 효과가  높아진다. 

   위에 언급한 학부모의 말이 우리 나라 대부분의 학부모가 갖고 있는 고전에 대한 선입견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쓴다. 나 혼자의 생각이었다면 아이들에게 축약본을 읽지 말라고 강하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난 여러 독서 연수와 독서 교육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축약본의 폐해가 크기에 아이들에게 이왕이면 좋은 책을 읽으라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 그래서 난 학부모들이 < 초등 고전 읽기 혁명>을 꼭 읽어 보시고 자신의 생각을 한 번 점검해 보셨으면  한다. 본인의  가치관이 아무리 확고하더라도 한 번쯤 전문가들의 생각도 들어 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아래 책의 작가님도 그래서 <혁명>이란 낱말을 쓰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학부모들의 선입견을 깨부수는 작업이 힘들다는 의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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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31 0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퍼남매맘 2013-01-31 12:49   좋아요 0 | URL
네! 아이패드로 작업을 하면 책 넣기가 안 되어요.
책 넣기를 했습니다.고맙습니다.

서영은준아빠 2013-01-31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성하신 글이 좋아서 우리 커뮤니티에 공유하고 싶은데요. 내용을 가져가도 좋을까요? ^^ 저희 커뮤니티 주소는 gpuser.com/BookPlus 입니다.

수퍼남매맘 2013-01-31 16:04   좋아요 0 | URL
이런 황공할 때가.... 그럼요. 출처만 밝혀 주세요.

서영은준아빠 2013-01-31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감사합니다. 출처 밝혔구요. 커뮤니티 주소는 위와 같고, 게시글은 http://goo.gl/Ou89M 입니다.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