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아이 독깨비 (책콩 어린이) 22
R. J. 팔라시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때, 가끔 집 안으로 나환자들이 쑤욱 들어와 구걸을 하곤 했었다. 그 때는 사람들이 " 문둥이 온다. 전염된다. 얼른 도망 가라" 그랬던 것 같다. 사람들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던 나는 그 사람들이 오면 정말 무서웠다. 실수로 그 사람들과 접촉이라도 하면 병이 전염될까 봐 눈도 안 마주치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혹시라도 그 사람들 곁을 지나갈 때면 최대한 멀리 떨어져 가려고 노력했다. 나중에 성경이나 영화 '벤허'를 통하여 나병에 걸린 사람들이 가족에게마저 버림을 받는 것을 보며 더욱 무서운 병이라 실감했다. 물론 자라면서 사람들의 말처럼 단순한 접촉으로 전염되는 병이 아님은 알았지만 그래도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은 변함 없었다.

 

 내가 왜 나병인, 즉 한센인들에 대해 말하느냐 하면 바로 이 책에 나온 선천적안면기형을 안고 태어난 어거스트라는 아이를  대하는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은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 한센인들을 만나 본 기억은 있지만- 실제로 그들의 얼굴을 본 적은 없다. 다만 뭉툭해진 손은 본 적이 있다-  성장하고 나서는 지금까지 안면기형을 내 눈으로 직접 본 적은 없다. 어릴 때 그들을 봤을 때처럼 지금의 나도 어거스트 같은 아이를 보면 난 무서워서 도망을 갈까? 아님 조금이라도 염치가 있어졌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도망치지는 않더라도 집에 와서 가슴을 쓸어내릴까? 초등학생 때의 일이긴 하지만 어거스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철부지였을 때 무조건 그들만 보았다 하면 도망쳤던 내 모습에 대해 사과하고 싶어졌다. 어거스트가 자신을 보면 무슨 바이러스 취급하면서 도망치는 아이들을 보면서 매번 낙심하듯이 그들도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슬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지금이라도 사과를 꼭 하고 싶다.

 

작가는 실제로 안면기형을 가진 여자 아이를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그 기억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책에 나온 어거스트의 모습대로라면 누구나 한 번 보면 악몽에 시달릴 만한 얼굴이었던 것 같다. 나도 책을 읽는 내내 어거스트의 모습이 어떨지 떠올려 보곤 했다. 어거스트가 처음 다니는 학교 아이들의 말이 어거스트의 얼굴은 골룸처럼, 스크림처럼, 이티처럼 생겼다고 하는데 나의 상상력으로는 어거스트의 윤곽이 잘 잡히지 않는다.  남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하는 얼굴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어거스트의 고통을 누가 감히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수십 번의 수술 끝에 지금의 얼굴로 사는 것만도 기적이니 감사하며 살아야지 라고 누가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의 얼굴이 끔찍해 사진 찍는 걸 싫어했던 어거스트의 마음을 ,어거스트와 접촉하기가 싫어서 어거스트가 만진 물건은 절대 손대지 않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거스트의 마음을, 자신의 얼굴을 보면 꺄악 하고 놀래서 도망가는 사람들의 반응이 싫어서 2년 동안 헬멧을 벗지 않았던 어거스트의 마음을 내가 어찌 감히 헤아린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분만실에 가면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제발 내 아이가 기형이 아니기만을, 10개의 손가락과 10개의 발가락을 가지고 태어나기만을 간절히 간절히 기도한다. " 응애 응애" 소리가 나고, 의사가 아이의 얼굴을 보여주면 가장 먼저 " 건강한가요?" 부터 물어봤다. 그 말은 장애를 가진 것은 아니죠? 란 뜻이기도 하였다. 배 안에 있을 때부터 내내 그게 걱정이다. 우리 아이가 기형이 아닐지, 정상으로 태어날지 엄마는 아이의 얼굴을 볼 때까지 안심하지 못한다.  아이의 건강한 얼굴을 본 후에야 엄마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두 아이를 출산한 나는 어거스트의 부모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이지러진 얼굴을 갖고 태어난 아이를 첫 대면했을 때 그 부모의 마음이 어땠을지 말이다. 하지만 부모는 슬퍼할 겨를이 없다. 부모가 슬퍼하면 천형같은 얼굴로 태어난 어거스트가 더 아파하고, 자신 없어 할 것이기에 부모는 더 씩씩해지고, 더 용감해지고, 더 희망적이게 된다.

 

누나는 또 어떤가!  심한 장애를 가진 동생 때문에 누나는 6세 때부터 뭐든지 혼자서 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온통 동생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지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참는 것에 선수가 되어 버렸다. 오죽하면 어거스트와 떨어져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던 그 한 달이 누나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고백하겠는가! 누나는 부모와는 다르다.  어거스트의 누나라는 이유만으로 항상 주목을 받게 되는 그 생활이 지긋지긋하여 고등학교부터는 동생과 될 수 있으면 멀리 떨어져 지내고 싶어하고 그래서 연극 공연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던 누나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장애인 형제를 가진 경우 애어른이 되기 쉬운 듯하다. 주변 사람들을 봐도 그렇다. 나만이라도 부모님 속 썩히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 버린 경우가 많다. 그들이 감당해야 할 몫도 가벼운 것은 아닌 듯하다. 비아처럼 은근히 속이 곪는 경우가 있다. 그들도 부모의 관심이 필요하고,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인데 말이다.

 

내내 홈스쿨링을 하던 어거스트가 5학년(중1)에 입학하게 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가족과 이웃 사람들에게만 노출되었던 어거스트가 학교라는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서부터 이런 저런 일들이 예견되기 시작한다. 괴물 보듯이 쳐다보는 아이들, 전염병 놀이, 믿었던 친구의 배신, 혼자 서기 등등. 오래 전 읽었던 <오체 불만족>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책의 저자는 정상인보다 더 씩씩하고, 자신감이 넘쳐서 그들이 외면당하는 고통을 잘 알지 못했는데 이 책에서는 어거스트가 사회에 첫 걸음을 내딛으면서 겪게 되는 온갖 시련들을 함께 겪으면서 장애우가 있는 가정이 겪는 여러 가지 일상적인 일들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고, 더불어 어거스트 같은 아이를 대면했을 때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좀 정리가 된 기분이 든다.

 

어거스트의 관점에서만 이야기를 진행하는 게 아니라 어거스트의 주변인들의 이야기도 함께 나오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심리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어거스트의 이야기를 보면서 몇 년 전에 인간극장에 나왔던 어떤 아가씨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교통사고로 인하여 얼굴에 심한 화상을 당했는데 가족들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인하여 좌절하지 않고 용기 있게 삶을 개척하는 그런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회자되었었는데..... 그 아가씨도 그렇고, 어거스트도 그렇고 가족들은 어거스트를 외모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여기기 때문에 시련을 극복할 수 있다. 가족에게는 그들의 외모는 그닥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처음에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당사자가 사회에서 겪어야 할 것들은 그렇게 녹록하지만은 않다. 그들이 언제까지 집 안에서, 가족들의 품 안에서만 지낼 수는 없기에 그들은 언젠가는 사회에 나갈 수밖에 없다. 그들이 사회로 진출하였을 때 직면하게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아름다운 아이>는 주변인들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사회로 한 걸음 나왔을 때 내가 어떻게 그들을 대해야 할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어릴 때 나처럼 그들을 보자마자 도망치지 말고, 잭이나 미란다처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을 베풀어 주는 이웃이 되어 주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 온다.

 

나에게 이 책이 주는 의미 또한 크다. 한참 힘들 때 이 책을 읽었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절망하고, 다시는 나와 내 가족 이외의 사람들에게 관심 두지 않으리라 다짐하던 때였다.  어거스트와 어거스트의 가족들이 고난과 직면하고, 고난을 헤쳐 나가는 것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  어거스트도 자신만의 성에 갇혀 지내지 않고, 고난이 뻔히 내다보이는 불구덩이에 뛰어 들지 않았던가!  2012년이 이제 이틀 남았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정의가 지켜지는 사회가 올 거라고 기대하였지만 글쎄.....  세밑에 벌써 5명의 노동자들이 저 세상으로 떠나갔다. 힘들게 버티온 그들을 누가 사지로 내몰았을까! 그들의 절망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래서 다가올 2013년도 그리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견뎌낼 것이다. 버티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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