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이라도 하늘에서 눈가루를 뿌려 줄 것 같은 날씨 속에 멤버들이 오랜만에 다 모였다.

영양사 선생님이 직접 드립 커피를 시연해 주시니 교실 가득하게 커피 향이 진하게 퍼져 나갔다.

캡슐 커피와는 또 다르게 향이 퍼져 나가는데 교실에 하나 갖다 놓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아 오르는구나!

커피를 싫어하는 사람까지 커피 한 잔 먹고 싶어지게 만드는 커피 향기에 모두들 취해 버렸다.

동호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던 눈은 오지 않았지만

첫눈만큼이나 반가운 동호회 선생님들과 함께 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장님께서 보여 주시는 여희숙 선생님께 선물 받았다는 독서 노트가 모두의 관심을 끌었다. 

눈으로 읽고, 포스트 잇으로 표시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직접 손으로 하나하나 기록하는 것은 더 좋을 듯하다.

요즘에는 쓰기도 싫어 휴대폰으로 찍는 분들이 많으시다고.

하기사 나도 밑줄은 긋지만 옮겨 적지는 않는다.

갈수록 손글씨를 안 쓰게 되는 것 같아 일부러라도 독서 노트에 한 번씩 기록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동호회 예산이 있는지 한 번 알아봐야겠다.

부장님께서는 공공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서 일일이 독서노트에 적어 오셨다. 대단한 정성이시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법>이란 책을 원서로 함께 읽어 볼 사람을 모집하셨지만

나부터도 영어하면 머리에 쥐가 나서....

다른 분들도 영어로 하면 탈퇴(?) 한다는 소리를 하셔서 모두들 웃었다.

하여튼 부장님의 열정은 알아줘야 한다니깐.

 

부장님의 보물은 첫째

추천사에 나온 부분이었다.

코르착이 이미 50년 전에 좀 큰 아이들과 교사들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고아원의 주요 문제들에 대해 아이들이 발언할 수 있는 근간을 마련하였다는 사실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오늘날 학교에서 교사들이 아이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아이들의 감정을 존중한다면 민주적이고, 즐거운 학교 분위기를 조성하여 결석률을 줄일 수 있을 것 이라고도 했다.

지금 학교 현장에 있는 학급회의나 전교어린이회의는 유명무실하다. 하지만 벌써 50년 전에 코르착은 어린이들이 주체하는 이런 위원회를 구상하고 실천하고 있었다니 그야말로 혁신이 아닐까 싶다.

 

두 번째 보물은 이 글이다.

사과꽃도 사과만큼 소중합니다.

 

시장에서는 덜 자란 것들은 값으로 쳐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의 눈으로 보기에는

사과꽃이나 사과나 똑같이 소중합니다.

새싹도 다 자란 옥수수 밭만큼 소중합니다.

 (본문 29쪽)

코르착은 의사이자 교육자이며, 철학자이며 문학가이다. 그래서 그의 글귀들은 이렇게 시적이다. 옮긴이도 쓰셨듯이 그의 시같은 글귀들은 어쩌면 쉽게 읽힐 수도 있지만 그만큼 함축적이기 때문에 읽는이로 하여금 사색하게 만들며 깊은 감동을 준다.

 

다음은 4학년 선배님이 골라오신 보물이다.하루만에 다 읽으셨다고..... 이제는 이 책을 구하지 못하여 후배한테 빌려 주셨단다.

앞날에 대한 기대가 종종 현재를 왜곡합니다.

 

우리는 앞날을 내다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앞날에 대한 갈망 섞인 기대가 종종 현재에

대한 생각을 왜곡합니다.

(본문 152쪽) 

우리 나라처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현실을 왜곡하고, 저당잡힌 채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 불쌍한 국민들이 어디 있을까? 우리 나라보다 경제적으로 더 가난한 나라 사람들도 행복해 하며 사는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현실에 만족하지 못 하고 갈망 섞인 미래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 때문에 지금 해야 할 일을 놓치고, 따라서 주변을 돌아 보지 못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 추구해야 할 행복들은 놓치고 살아가고 있다. 코르착도 그 이야기를 짚어 주고 있다. 현재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 내가 돌봐야 할 것들이 더 중요한데 말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 일에도 무관심, 세상 돌아가는 일에도 무관심과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겠지. 3.1운동, 4.19와 5.18 등은 모두 깨어 있는 학생들이 주도하였지만 이제 그 학생들은 오로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초등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내내 공부를 해야 하고, 대학 가면 또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스펙을 쌓는 데만 몰두해야만 하는 현실이니 우리 사회가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무관심의 벌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나와 내 가족, 내가 속한 사회를 찌른다는 것을 우린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드립커피를 우리에게 맛보게 해 주신 영양사 선생님의 보물은 이 부분이다.

엄마 마음은 아이와 함께 성숙해집니다.

 

 

아이는 엄마의 삶에 시적이고,

신비한 침묵을 가져다줍니다.

-중략-

이러한 영감은 책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옵니다.

이에 비하면 엄마가 읽는 책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중략-

조용한 침묵 속에서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본문 129쪽)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이라면 누구다 공감할 내용인 듯하다.

특히 "지금 읽고 있는 이 책 또한 아무 것도 아니다"는 코르착의 그 말은 가슴을 뜨끔하게 만든다.

아이를 키우면서 얼마나 못난 나를 발견하는지, 아이와 함께 나 또한 성장하고 있음을 매순간 깨닫는다.

 

나의 보물은 이렇다.

아이들의 침묵은 때때로 정직함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아이들은 정직합니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있을 때도 아이는 대답하고 있습니다.

사실을 얘기할 수 없지만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연히 알게 된 아주 놀라운 사실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침묵은 때때로 정직함을 표현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126쪽)

 

수퍼남매도, 반 아이들도 함께 지내다 보면 이런 일들이 자주 있다.아이들이 잘못을 하여 야단치다 보면 끝까지 대답을 안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대답을 안 하는 그 아이의 태도 때문에 더 화가 나서 아이를 몰아부치게 된다.어제도 이런 상황이 교실에서 벌어졌는데 만약 이 글귀를 읽지 못했다면 예전처럼 대답 안 하는 아이의 태도 때문에 더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이 생각나서 넘어갈 수 있었다.

 

좋은 책은 이런 힘이 있다. 사람을 변화시킨다. 예전의 나 같았으면 부르르 떨었을 일도 책에서 읽었던 글귀를 생각하며 참게 되는 것 같다. 코르착의 말처럼 부모나 교사, 어른들이 가져야 할 것은 엄격한 도덕률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이란 것을 점점 알게 된다.

 

책을 안 읽으신 분들이 계셔서 다음 주 한 번 더 이 책으로 나누기로 하였다. 읽으면 읽을수록, 알면 알수록 야누슈 코르착이 대단한 분이란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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