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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열쇠, 11 ㅣ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73
패트리샤 레일리 기프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은 ' 지금 부모님이 사실은 진짜 내 부모님이 아닐 지도 몰라' 하는 의구심을 가져봤을 게다. 나도 그랬다. 언니들이 " 너 다리 밑에서 주워 왔대" 하며 말할 때마다 속으로 ' 언젠가는 우리 친부모를 찾아 길을 떠날 거야' 굳은 다짐을 하곤 했었다. 성장기를 거치면서 자아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누구나 한 번은 거쳐야 할 의문인 듯하다.
샘은 자신의 열한 살 생일 선물을 찾으러 다락방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오래된 상자에서 삐져 나온 한 토막의 신문을 발견하게 된다. 그 신문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 사진과 함께 " 샘 벨, 사라지다" 라는 놀라운 기사를 보면서 자신이 지금 함께 살고 있는 할아버지가 실은 자신의 친할아버지가 아니라 혹시 자신을 유괴한 극악무도한 유괴범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한 조각의 신문 기사로 인하여 자아를 찾기 위한 샘의 여행은 파편으로 남아 있는 작은 기억들을 짜맞춰 가면서 비밀리에 진행된다. 작년에 이런 설정의 책을 본 적이 있다. <우유 팩 소녀 제니>라는 책이었는데 우연히 우유 팩 미아 광고에 실린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보고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 책이 낮설지가 않았다.
샘이 그 신문기사를 줄줄 읽어낼 줄 알았다면 이 이야기는 단박에 끝이 났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샘은 안타깝게도 11살이 되도록 글을 읽지 못한다. 한 마디로 난독증을 앓고 있는 아이이다. 신문 기사를 읽을 줄 알았다면 의외로 쉽게 일이 풀릴 수도 있었을 텐데 작가는 난독증 샘이라는 설정을 통해 사람마다 다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또한 글을 읽을 수 없기에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던 샘은 자신의 반에서 외톨이로 지내는 전학생 캐롤라인을 점 찍어서 함께 숙제를 하자고 제안을 하게 된다. 캐롤라인과 함께 자신의 정체를 파악하는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둘은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고, 진정한 우정을 찾게 되는 과정도 보여 준다.
샘이 자신의 정체를 찾아가는 과정은 아슬아슬하고, 혹시나 화 한 번 내지 않는 할아버지와 옆집 온지 할아버지, 매일 밤 책을 읽어 주는 애니마 아줌마 모두 한통속이 아닐까 싶어 읽는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하지만 난 이 책이 난독증을 앓고 있는 어쩌면 세상의 잣대로 보면 수준 미달의 아이로 보일 수 있는 샘이 프로젝트 학습의 하나인 거대한 중세의 성을 캐롤라인과 함께 완성해 가는 과정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해 가는 과정에서 감동이 느껴졌고, 그렇기에 이 책은 샘의 성장 동화라고 보고 싶다. 특히 샘의 할아버지가 글을 읽을 줄 몰라 매번 힘들어 하고 낙담하는 샘을 향해 하는 말은 학부모, 교사가 아이들에게 가져야 할 태도라고 보여진다. 누구나 다 다른 재능을 타고 났다는 믿음이야말로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심어 주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는 사실 말이다.
" 넌 아직 모르지만, 우리는 나무를 다루는 재능이 있단다. 나무가 우리에게 말을 걸지. "
" 너는 나무를 읽어.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
" 샘, 너는 글을 읽게 될 거야. 다만 시간이 좀 더 걸릴 테고, 다른 아이들보다 잘 읽지는 못 하겠지. 하지만 너한테는 이게 있잖니" (본문 55쪽)
열한 살이 되도록 글을 읽지 못하여 매일 나머지 공부를 해야 했지만 그래도 실력이 늘지 않아 자신의 실종 사건이 적혀 있는 신문 기사 하나 읽어내지 못해 친구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어쩌면 비참한 처지에 있는 샘이 결국은 그 멋진 중세의 성을 완성한 것을 보고, 학교의 선생님과 친구들도 " 멋지다, 잘했다" 고 칭찬하는 것을 보면서 마치 내가 칭찬을 받는 것처럼 뿌듯했다. 샘은 글은 읽지 못하지만 나무를 읽을 줄 아는 그런 아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다시 전학을 간 캐롤라인과 메일을 주고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글을 읽고 쓸 줄 알아야 하기에 나머지 공부를 도와주는 선생님께 자신이 반드시 글을 읽을 줄 알아야 함을 강력하게 피력하는 모습에서 이제 머지 않아 샘은 난독증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니까 11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이제 더는 무섭지 않은
집 주소, 번지수, 굴뚝 한쌍
열한 번째 생일
단짝을 만난 해.
어쩌면 여름마다 세인트로렌스 강에서
할아버지와 온지 할아버지, 애니마 아줌마, 캐롤라인,
모두와 함께 탈
돛단배의 쌍돛대가 될지도 모른다.
열한 살이 되던 해, 샘은 글을 읽기 시작했다.
(본문 231쪽)
끝으로 이 책에 나오는 미국과 캐나다 국경 근처에 있는 세인트로렌스강, 천섬, 미완의 볼트성 등의 이미지를 찾아 보니 마구마구 여행이 가고 싶어진다. 샘과 캐롤라인이 함께 작업한 중세 성의 모습이 볼트 성과 닮았다고 하니 샘의 나무 다루는 실력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 샘, 너는 나무를 읽을 줄 아는 아이구나! 진짜 멋지다! 네가 만든 볼트 성이 정말 궁금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