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하는 내 마음 다시보기
혜민 지음, 이영철 그림 / 쌤앤파커스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제가 스님이 쓴 글을 읽는 것은 법정 스님 말고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아 읽게 된 책인데 제목이 참 시적이다는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단은 혜민 스님이라는 개인사가 참 호기심을 자극하더군요. 하버드 재학 시절에 스님이 되겠다고 결심을 하셨다니 그 사연이 궁금해졌습니다. 스님은 고국에 있는 사람들과 모국어로 트윗을 하고 싶어 트윗을 하던 중에 자신이 툭툭 던지는 그 말 한 마디에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해 오는 사람들로 인하여 상처 받은 영혼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스님의 인상을 보니 참 맑았습니다. 예전에 저희 담임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사람은 40세를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곤 하셨습니다. 즉 그 나이 쯤 되면 그 사람의 삶이 얼굴에 묻어 나오니 하나님의 말씀 대로 잘 살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잘 나고 못 나가고를 떠나서 선한 인상을 풍기는 사람으로 보였으면 하는 게 40이 넘은 지금 저의 희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님은 참 인상이 선합니다. 성직자 중에서도 안 좋은 인상을 풍기는 분들이 여럿 있지 않습니까? 원래 저 이런 종류의 책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책 제목과 스님의 인상이 하도 선해 보여서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책을 보면서 저 또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여러 구절들이 있었지만 가장 많은 위로를 주었던 구절입니다.

한두 사람의 비평에 상처받아 쉽게 포기하지 마세요.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쉽게 한 말에

너무 무게를 두어 아파하지도 말아요.

안티가 생긴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용기 내어 지금 가고 있는 길, 묵묵히 계속 가면 돼요.

(본문 20쪽) 

 

지금 한창 교원능력개발평가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동료 평가, 학부모 만족도, 학생 만족도 등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저는 교원평가에 대한 큰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원평가가 처음 도입되어 실시되던 2년 전, 그 해는 제가 아침독서를 처음 하게 되었던 해이고, 1학년 담임을 하면서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읽어 주면서 독서 교육을 열심히 하던 해였습니다. 그 해 교원평가는 시범 학교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알려진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일선학교에 전면적으로 실시되었고, 지금과는 달리 1학기에 평가가 실시되었습니다.

 

전 1학년 담임이었기에 학생 평가는 받지 않았고, 학부모 평가를 받게 되었는데, 그 결과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대부분의 학부모는 독서 교육에 열과 성의를 다한 저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지만 몇 명의 학부모는 아주 낮은 점수를 주었더군요. 그래서 평균 점수는 낮아졌고, 동학년 선생님들과 비교해 보니 거의 하위권이었습니다. 억울했습니다. 저는 아이들 인성교육에 도움이 되라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책을 읽어줬건만 어떻게 하루도 책을 읽어 주지도 아침독서를 하지도 않은 다른 반 선생님들보다 제 점수가 더 낮은지 납득이 안 되었습니다. 정말 미쳐 버릴 정도로 화가 났습니다. 익명성의 잇점을 악용하여 그렇게 평가를 한 학부모를 끝까지 찾고 싶었습니다. 아니 찾을 필요도 없이 누가 그렇게 나쁜 점수를 줬는지 훤히 알겠더라고요. 당연히 평소에 나쁜 생활 태도로 저에게 야단을 많이 맞은 어린이의 학부모죠.

 

저는 정말 제가 왜 그 동안 목이 쉬어라 책을 읽어줬을까 후회도 되고, 한글 못 뗀 아이 한글 가르친다고 그 고생을 했을까 ,내가 이런 대접 받을려고 나머지 공부에, 아침 독서에 이런 저런 일들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면 중간이라고 갈 걸 하는 후회를 하였습니다. 요즘 말로 멘붕 상태였고, 자괴감이 들었고, 분노, 복수심 등이 일었습니다. 아이들이 미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과를 받아든 다음 날부터 책도 읽어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신이 아니기에 그런 상태에서는 도저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평상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과표를 보면서 학부모들은 담임을 객관적으로 평가를 못 하는구나를 깨달았습니다.  내가 어떤 교육 철학을 가지고 어떤 교육 목표를 향해 교육 활동을 하는지보다 우리 애가 당장 야단 맞은 그 사실 하나만 기억하고 평가를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99번 잘해 줘도 1번 야단 맞아 온 기억만으로 평가를 하는 셈이었습니다.왜 자녀가 야단 맞았는지 그 원인도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학부모들도 다 적으로만 보이더라구요. 그런데 그 때 청소를 도와주시러 오던 몇 분의 학부모들과 허심탄회 말할 기회가 생겼고 다 털어놓자 그 분들이 절 진심으로 위로를 해 주시더라고요. 하지만 아무리 다른 학부모들이 저를 좋다고 해도 한 명이 상처 주는 말을 하면 그게 교사에게는 평생 가더라고요. 그 때가 그랬어요. 저를 좋아하고, 신뢰하고, 응원해주는 많은 학부모들이 계셨지만 몇 분이 저에게 준 상처의 말들이 비수가 되어 저를 비참하게 만들었지요. 제가 페스탈로찌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열과 성의를 다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정말 제대로 한 방 얻어맞았죠.

 

아이들은 잘 못해도 칭찬으로 자신감을 키워 주라면서 교사들은 왜 그렇게 칭찬해 주지 못할까요?  교사도 신이 아니기에 실수할 수도 있고, 허물이 있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 뿐만 아니라 교원평가 때 학부모나 아이들이 쓴 비수 같은 말에 상처 받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물론 교사도 어린이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사-학생 간은 풀 기회가 있지만 교사-학부모는 풀 기회가 없습니다. 그대로 상처로 남습니다. 학부모, 아이들은 신원이 철저히 보장되니까 그 잇점을 가지고 마음껏 쓰실 수 있겠지만 그걸로 인하여 1년 동안 아이들을 잘 가르쳐 보려고 노력한 선생님들은 엄청난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아셨으면 합니다. 2년 전 제가 매우 힘들어 할 때 어떤 학부모님이 직접 손으로 쓴 편지를 살짝 주시더군요. 참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제 옆에 신랑이 없었다면, 저의 가치를 알아주는 동료 교사들이 없었다면, 저를 좋아해 주는 아이들이 없었다면 참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만약 그 때 혜민 스님의 이 글을 만났더라면 더 일찍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것 같아요. 학부모들이 얼마나 저에 대해서 잘 알겠어요? 저도 학부모님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평가를 내릴 수 없습니다. 저도 우리 아이 담임들에 대해서 잘 몰라요. 아이들이 들려 주는 단편적인 이야기들- 아이들이 거짓말은 안 하지만 앞뒤 맥락 잘라먹고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말하잖아요- 만으로 어떻게 담임을 평가할 수 있을까요?  교사-학생은 그나마 서로를 잘 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 구절을 읽으면서 그 때 그 느낌들이 되살아나서 또 다시 억울해지려고도 하였지만 이제는 당당해지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아픈 기억들을 이제는 날려 보내려고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물론 이 글로 인하여 100만 안티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혜민 스님의 말씀처럼 그것은 제가 하는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으니 저의 길을 묵묵히 가렵니다. 제가 지금도 아주 좋은 교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제보다는 오늘 더 좋은 아내, 엄마, 교사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는 저를 존중할 것입니다.

 

이 책 그러고 보니 사인본이네요. 혜민 스님이 이런 말을 적어주셨네요.

남 눈치 너무 보지 말고

나만의 빛깔을 찾으세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저 처럼 상처 받은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많은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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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8 01: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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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8 0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