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 사계절 아동문고 83
최나미 지음, 정문주 그림 / 사계절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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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부터 딸이 이 책을 골라서 읽는 것을 보았다. 어제 이틀만에 이 책을 다 읽었길래 마음 속의 보물을 이야기 해 달라고 하자

" 가영이가 축구를 잘하는데도 남자 아이들이 단지 가영이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축구 시합에 뛰지 못하게 하는 부분이 제일 기억에 남아. 성 차별이 너무 심하잖아" 하며 갑자기 흥분하면서 이야기를 한다. 내가 다시

"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한다면? 뭐가 있을까?" 하고 묻자

" 응~  가영이 엄마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림을 다시 시작해서 전시회를 갖게 되는데 그 팜플릿을 아빠가 박박 찢는 장면에서 마음이 아팠어. 어쩜 그럴 수가 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엄마에게 소중한 팜플릿을 그렇게 찢다니 아빠가 너무한 것 같아 " 하면서 딸의 눈시울이 어느새 붉어졌다.

 

왠만해서는 책, 드라마 , 영화 보고 울지 않는 씩씩한 딸을 울게 한 이 책이 무지 궁금해졌다.  참고로 난 드라마 보면서 잘 우는데 딸은 그렇게 울고 있는 엄마가 신기한 듯 멀뚱멀뚱 쳐다 보는 스타일이다. 딸 말이 자신을 울게 만든 책이 두 권이 있는데 바로 이 책과 나머지는 <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란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볼 때 마다 너무 슬퍼서 울게 된다고....그건 엄마도 그래. 볼 때마다 저 밑바닥에서부터 눈물이 차오는 것 같은 작품이지.

 

아무튼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도 울었다. 슬프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말이다. 가영이 같은 사춘기에 접어 든 딸과 마흔 즈음에 있는 나 같은 사람이나 이제 막 자신의 꿈을 떠나고 싶은 주부들이 읽으면 정말 좋을 듯하다. 여자의 인생에 대해서, 자신의 꿈을 이룬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여러 가지 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주는 그런 책이었다. 가영이 반의 남자들과 여자들이 토론하는 장면도 흥미진진하다.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가영이는 엄마가 이해가 안 된다. 이제껏 전업 주부로서 가정을 잘 돌보던 엄마가 갑자기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놔두고 자신이 꿈 꿔왔던 그림을 다시 시작한다고 하면서부터 가정은 삐그덕 거리기 시작한다. 한 마디로 집 안에 냉이가 그득하다. 아빠와 엄마는 엄마의 직장 문제로 첨예한 갈등을 겪게 되고, 결국은 할머니의 죽음을 맞이하며 엄마와 아빠는 별거에 들어가게 된다.

 

가영이가 그림을 시작하겠다던 엄마를 보고 처음에는 자신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라고 여기며 이해를 못했는데 가영이 자신 또한 여자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축구 대회에 나가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겪으면서 차츰 엄마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이 책의 주된 줄거리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가영이가 다는 아니지만 엄마가 왜 그토록 다른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심지어는 아빠와 별거까지 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꺾지 않았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건 상황만 다를 뿐이지 가영이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축구 대회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랑 똑같기 때문이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중에서 <때론 맘, 때론 쌤 그리고 나>라는 책도 결국 " 나 "가 행복해야 내 자녀도 내 학생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 주고 있는데 가영이의 엄마도 더 늦기 전에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며느리가 아닌 그대로의 나를 찾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결심을 한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처음부터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봉착하지 않았지만 가영이 엄마처럼 전업주부로 지내다가 중간에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이런 일들을 단행할 때는 가영이 아빠와 시댁 식구들처럼  주변 인물들로부터 온갖 핍박을 당할 수도 있겠다 싶다. 단지 엄마, 아내, 며느리라는 이름만으로 자신의 꿈을 꺾어야 한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  만약  아빠, 남편, 사위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꿈을 버리고 가정을 돌보라고 한다면 남자들은 납득할 수 있을까?

 

멀리 갈 것도 없이 얼마 전 추석 명절만 떠올려 보자.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가부장적인 제도들이 구석구석 많이 남아 있다. 그게 절정으로 치닫는 게 바로 명절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하는 일 없이 빈둥대며 TV시청이나 자신의 취미생활을 하지만 여자들은 명절 연휴 내내 허리가 끊어져라 일을 한다. 오죽하면 명절 후에 이혼률이 증가한다는 통계도 나오지 않았던가! 평소에는 가사 일을 분담하던 남편들도 유독 명절 때는 정말 일을 안 한다. 너~ 무 안 한다.수퍼남매 아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집에서는 일을 잘하다가도 시댁만 내려가면 손 하나 까딱 하지 않는다. 나는 눈치 보여서 못 부려 먹고 시어머니를 부려 먹는다. 그나마 평소에는 일을 분담해서 도와주기 망정이지 평소에도 가사 일은 나 몰라라 하는 남편이었다면 정말 저 아래서부터 화가 부글부글 끓어 넘칠 것 같다. 우리 어머니 세대들은 그런 것들이 당연하다고 살아오신 듯하다. 남자 일, 여자 일이 따로 있고 여자들은 평생 가사 일을 전담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래 어머니 세대는 그렇다고 치자. 가영이 엄마 세대는 좀 달라졌을 줄 알았다. 그런데 별반 다르지 않다. 

 

가영이 엄마 나이가 나보다 어린데도 불구하고 가영이 아빠는 철저하게 가부장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물론 안 그런 사람들도 있다. 세대를 막론하고 개인차는 분명 있다. 젊어도 가부장적인 태도에서 못 벗어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어르신 중에도 양성평등적인 자세를 취하는 분도 계시다. 난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2012년인 지금도 가영이네 가정처럼 엄마가 자기 꿈을 실현하고 싶다는데 이렇게 심하게 여자 운운하고, 자격 운운하면서 엄마의 꿈을, 엄마의 행복을 짓밟는다는 것이 안타깝다. 가영이가 둘째라서 아이들도 웬만큼 자랐는데 가영이 아빠가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 하는 이유는 바로 어머니가 병환 중이신데 왜 굳이 이 타임에 직장을 나가야 하냐는 것이고, 가영이 엄마는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없으며 더 늙기 전에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다는 것이다. 만약 할머니가 병환 중이 아니셨더라면 가영이 아빠는 엄마의 꿈 찾기 프로젝트를 적극 지지해 주었을까?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할머니의 병환은 단지 가영이의 엄마의 발목을 잡기 위한 좋은 핑계일 뿐이다.

 

남자에게 꿈이 중요한 만큼 여자에게도 꿈이 중요하단 사실을 가영이 아빠가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다. 가영이 아빠는 직장다닌다는 것만으로 전혀 가사 일을 돌보지 않고(남자들이 가사일을 도와준다는 표현도 좀 그렇다. 분담하여 함께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나 몰라라 하면서 가영이 엄마는 아내이고, 며느리이며, 엄마이니까 무조건 그 모든 가사 일과 병 수발을 전담해야 한다는 논리는 옳지 않다고 본다.

 

여기서 갑자기 얼마 전 종영한 넝굴당의 방귀남 씨가 오버랩된다. 국민 남편이란 별명을 얻은 방귀남이야 말로 이 시대 여성들이 원하는 남편상이 아닐까 한다. 우리 나라에도 이런 남편들이 아빠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통계에 의하면 아빠가 가사나 양육에 적극 가담하는 경우가 반대의 경우보다 아이의 사회성이 우수한 걸로 나온다고 한다. 이스라엘만 해도 아빠들이 제 시간에 퇴근하여 손수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우리 나라가 제대로 된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이런 가부장적인 것들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서 진정한 양성 평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얼마 전 택시 안에서 라디오 사연을 들었는데 전업 주부로 사는 어떤 남편의 이야기였다. 아직도 여자가 직장에 다니고 남자가 전업 주부로 있다면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되는 우리 사회인데 이 분은 전혀 그 상황을 부끄러워 하시지 않고, 당당하게 밝히시며 입장을 표명하셨다. 그 분이 참 멋져 보였다. 가정의 형편에 따라 그리고 본인의 꿈에 따라  남들과 다르게 살 수도 있는데 우린 그동안 너무 획일적인 가정의 모습들을 표방하고 그 모습이 아니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여기는 경향이 짙었던 것 같다. 한 가지 예로 아이들과 병원놀이를 하려고 역할을 정하라고 하면  의사 역할은 남자 애들이 하려고 하고, 간호사 역할은 여자 애들이 하려고 한다. 난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이 말을 해 준다. 여자 의사도 많고, 남자 간호사도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나서 다시 역할을 정하게 한다.

 

난 가영이 엄마 윤서영씨에게 아낌 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더 늦기 전에 마흔 번째 생일을 맞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여행을 떠난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비록 많은 사람들의 핍박이 있고, 가장 사랑하던 가족들조차 외면하던 자신의 꿈이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윤서영씨의 꿈에 대한 열정에 한 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비록 지금 남편과 사랑하는 두 딸과 헤어져 지내지만 언젠가는 남편도 이해할 날이 오지 않겠는가! 이 땅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누구든지 읽어 보면 공감이 팍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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