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아이들과 궁궐에 가기로 하였으나 전날 <고지전>을 보고 자서 너무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궁궐 가기에는 시간이 어중간해서 아빠의 제안으로 산에 가기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수락산보다는 도봉산이 더 산다워서 택시를 타고 도봉산입구로 향하였다. 지난 번 아이들과 왔을 때는 입구에서 발 담그고 놀다만 와서 많이 아쉬웠는데 오늘은 남편이 있으니 어느 정도 올라갔다 올 수 있을 듯하였다.
산 입구는 명동을 방불케 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평상복 차림으로 온 사람은 우리 가족밖에 없어 보였다. 다들 등산복에 등산 장비에 차림부터가 달랐다. 예전에 남편이랑 데이트하면서 도봉산 정상을 가 본 적이 있는데 그 후로 도봉산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가족 산행은 마니산 이후 오랜만인 듯하다. 입구에서 아이들에게 지팡이 하나씩을 사 주고 코스를 정하였다. 일단 도봉서원쪽으로 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도봉서원은 복원공사 때문에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고, 김수영의 시비만 고즈넉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쉬는데 아이들이 " 엄마, 여기 누가 새 모이를 놔둬서 새가 있어 " 한다. 가 보니 진짜 앙증맞은 새가 모이를 먹으러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주 가까이 와서 모이를 먹고 날아갔다 왔다를 반복했다. 크기는 아주 작은데 목소리는 우렁찼다. 무슨 새인지 알 수가 없다. 참새는 확실히 아니었다.
도봉서원도 보지도 못한 채 그냥 하산하기는 너무 아쉬워서 일단 <천축사>라는 곳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 길이 자운봉-도봉산 정상- 가는 길이었나 보다. 길이 조금 전까지의 길과는 확연히 달랐다. 제대로 등산하는 것같았다. 순간 올레길로 갈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우리가 집에서 2시에 출발하였으니 남들은 모두 하산하고 있는데 우리 가족하고 일부 사람들만 등산을 하고 있었다. 이러다 컴컴할 때 하산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일순간 생겼다. 밑에서 지팡이를 사 주길 정말 잘했다.지팡이가 없었으면 천축사까지는 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예전에 데이트할 때도 도봉산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아들은 중간쯤에서 힘들다고 누나를 원망하면서 투덜대기 시작하였다. 누나가 " go" 를 외친 장본이었거든.
지난 번 강화도 마니산 때처럼 아빠가 업어 주고 하면서 겨우겨우 <천축사>까지 도착하였는데, 마지막 천축사에 가는 계단을 오르면서 아들이 하는 말이 " 죽을 것 같았다" 란다. 평소에는 거의 운동을 하지 않는 남편인데도 이럴 때는 괴력을 발휘하곤 해서 감동을 주곤 한다. 역시 아빠는 위대하단 말이다. 천축사에 도착하니 절 너머로 커다란 도봉산 봉우리들이 보인다. 옆에 계신 분이 친절하게 저게 자운봉, 만장봉 , 선인봉 이라고 설명을 해 주셨다. 암벽 등반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개미처럼 보였다. 집에 와서 찾아 보니 <천축사>란 절이 의상 대사가 만든 역사가 오래된 절이었다. 오래 된 보리수를 못 보고 온 게 아쉽다. 미리 공부하고 갔더라면 보고 왔을 텐데...... 언제 다시 갈 수 있을 지 기약하기가 뭐한데. 거기서 보니 상계동 아파트 지역이 한눈에 보였다.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점점 산이 좋아진다. 새삼 서울이라는 곳이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조금만 움직이면 신이 빚어낸 멋진 미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으니 말이다.
천축사에서 조금만 더 가면 마당 바위, 또 조금만 가면 자운봉이었나 본데 거기까지 올라갔다가 해가 져서 내려올 때 문제가 클 것 같아서 그냥 천축사에서 다시 되돌아 내려 왔다. 무엇보다 아들 체력이 바닥이 난 것 같아서 하산하였다. 내려와서 뜨끈한 설렁탕을 먹으니 아픈 다리가 조금 풀린 듯하였다. 곱게 단풍 옷으로 갈아 입었을 때 또 한 번 오면 참 좋겠다 싶다. 지원이 병관이 가족처럼 말이다. 병관이는 씩씩하게 북한산 최고봉 백운대까지 올랐었지. 우리 수퍼남매도 그럴 수 있으려나! 우리 체력 훈련 좀 해서 다음에는 북한산 최고봉 백운대까지 가 보자. 그런데 찾아 보니 도봉산보다 북한산이 더 높다. 우리 나라 오악산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만큼 험난하다는 이야긴데. 꼭 정상이 아니면 어때? 가족이 함께 한다는 게 의미가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