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짱 시공 청소년 문학 31
이명랑 지음 / 시공사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읽은<아이의 사회성>이란 책에서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게 되면, 거짓말을 한 것부터 꾸중을 할 게 아니라 거짓말을 하게 된 원인부터 알아보는 게 바람직하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다. 거짓말은 무조건 안 된다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말하지만 살다 보면 선의의 거짓말도 하게 되고, 이런저런 이유들로 피치 못하게 하게 되는 거짓말들이 있다.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아이들의 거짓말을 발견했을 때 물론 부모가 화가 나고, 어이가 없고, 실망스럽기도 하겠지만 일단 분을 잠재우고 아이가 거짓말을 하게 된 원인을 묻고 아이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아이들이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게 되거나 심한 거짓말을 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는 논점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 이빛나는 그야말로 구라짱이다. 문화예술고등학고 문예창작과에 다니고 있는 빛나는 백지 강사가 매 시간 내 주는 백지는 물론이고, 백일장 대회 나가서도 구라를 친다. 심지어 친구의 글까지 훔쳐서 백일장에 제출한다. 이런 사실만 보면 빛나라는 아이가 진짜 정직이라고는 요만큼도 찾아 볼 수없는 정말 양심 부재의 인간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알고 보면 빛나가 그렇게 된 데는 아픈 사연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구라로 사유서를 쓰고, 거짓으로 문학을 하고, 친구의 것을 훔쳐서 대회에 출품한 그 모든 행위가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상참작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서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아 본 경험이 전무한 빛나는 아빠와 새 엄마에 의해 중1때부터 기숙학교에 보내지고, 그 후론 놀토나 방학 때도 혼자 기숙사에 남아지낸다. 그렇게 혼자 지내면서 한 줄 두 줄 끄적거리던 자신만의 공상이, 이제는 마치 현실인 것처럼 포장되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구라인지 모호해 진지 오래. 아니 지금의 빛나는 지탱하고 있는 것은 구라일 뿐이다. 빛나는 오늘도 놀토인데 혼자 기숙사에 남아 있다. 놀토에 기숙사에 남아 있으려면 사유서를 매번 써야 하는데 물론 그것도 구라로 쓴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눈덩이처럼 커져 버린 거짓말에 이제 빛나는 양심을 선언할 여지도 없어 보인다.

 

전에 내가 가르친 아이들 중에도 유독 거짓말을 잘하는 여자 아이가 있었다. 심지어 도벽도 있어서 반 친구들의 물건을 가져다가 쓱쓱 지운 후 자신의 이름을 네임펜을 써 놓기도 하였다. 금방 들통이 나곤 하였지만 말이다. 그 아이를 보면서 왜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지- 그것도 1학년이라 금방 들통 나는 거짓말인데 -이해가 안 갔었다. 그 아이가 왜 거짓말을 하게 되었는지 좀 더 심층적으로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다. 그 아이도 빛나처럼 가정 환경이 좋지 않았다. 장애인 어머니에, 언니들이 여러 명, 경제 형편도 어렵고, 본인은 학습 부진아에다 뚱뚱한 몸매, 그 아이를 둘러싼 여러 가지 환경들을 볼 때 그 아이가 왜 거짓말을 하게 되었을까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왜 거짓말을 하니? 라고 다그치기 전에 그 아이를  따뜻하게 한 번 안아줄 걸 하는 후회감이 든다. 다음에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아이를 보게 되면 부르르 할 게 아니라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거짓말을 하게 된 이유를 찬찬히 물어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아이들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거짓말을 하는 것일 테니까.

 

빛나가 왜 하나부터 열까지 구라를 칠 수 밖에 없는지 빛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결국 가족 사랑의 부재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것, 엄마가 자신이 아닌 쌍둥이 미나의 손을 잡고 간 것, 아빠의 재혼, 중1때 기숙학교로 보내진 것, 오랜 만에 집에 갔을 때 자신의 자리가 없어진 것, 그 후 다시는 집을 찾아 가지 않고 놀토에 혼자 기숙사에 남이 있는 것. 빛나는 그런 일련의 일들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백지에 쓰기 시작하였고, 그것들이 백일장에 나가 수상을 하면서 더 이상 진실을 말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것을 안다. 그런데 이야기는 흥미롭게도 빛나가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쓴 이야기에서 표절을 했다는 의혹을 받게 되고, 빛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자신이 진실을 쓴 이야기가 진실이란 것을 밝히면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모두 구라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는 찰나,빛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빛나라는 아이를 통하여 인간이 하는 거짓말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고, 빛나가 쓰는 글을 통하여 진정한 문학이란 무엇인지 또한 되돌아 보게 한다. 빛나와 정반대에 서 있는 한빛이라는 인물의 말은 그런 의미에거 깊은 울림이 느껴진다.

 "  문학은 우선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된 글,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읽고  삶의 변화를 가져다 주는 그런 글을 쓰러 이곳에 왔습니다. " (본문 72쪽)

 

끝으로 내가 가르친 그 아이와 빛나의 거짓말도 결국은 " 나를 사랑해 주세요" 라는 또다른 절박한 외침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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