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오랜만에 명동에 갔다. 아이패드2 커버와, 액정필름, 터치펜을 사기 위해서다. 며칠 전 딸이 책상에서 아이패드를 떨어뜨린 바람에 집안에 폭풍이 한 번 지나간 적이 있었다. 명동 한복판에 애플매장 <프리스비>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온라인 보다는 오프라인에서 사는 게 낫겠다 싶어서 딸하고 둘이만 지하철을 타고 갔다. 난 아직까지 온라인으로 물건 사는 게 못미덥다. 가능한 오프라인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사는 걸 선호한다. 유일하게 온라인으로 사는 게 있다면 바로 책이다. 아들은 누나하고 엄마만 명동 간다는 사실에 어제부터 뾰로통했지만 명동은 어마어마한 인파 때문에 도저히 아들은 데려갈 수 없어서 불쌍해도 놔두고 갔다. (아들에겐 과자 2개를 안겨 줬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명동에는 사람이 많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한국인 반, 외국인 반인 것이다. 예전에는 가끔 가다 외국인을 만났는데 지나 가는 사람들의 절반 정도가 일본어, 중국어를 쓰고 있어서 내가 지금 한국의 명동을 걷고 있는지 일본과 중국의 거리를 걷도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명동에 처음 나온 딸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상인들이 사용하는 일본어, 중국어를 듣고는 " 엄마 여기 일본 같다." 이런 말을 한다.  5-6년 전에 명동에 왔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였던 것 같은데 그 동안 세상이 많이 변한 걸 실감하였다.

 

하여튼 명동 지하철역에서 내려 인파에 밀려 <프리스비> 매장에 겨우 도착하였다. 5-6년 전에 물론 이 매장도 없었지.  매니저에게 물어서 커버와 액정 필름, 터치팬을 샀다. 딸이 마음에 들어하는 터치팬은 다른 것에 비해 가격이 2배로 비쌌는데 그걸로 그림 연습 많이 하라고 사 줬다. 역시 인터넷쇼핑보다 직접 눈으로 보고 사는 게 나는 더 편하다.

 

이왕 명동에 나온 김에 명품 가방 매장에 구경이나 가보자 해서 딸과 함께 소공동 롯데 명품관을 가 봤다.  프라다 매장은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대기하는 모습도 보였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영화 때문에 프라다가 더 유명해졌나 싶었다. 그 영화 아직 못 봤는데. 처음 가 본 곳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명품 가방 루이비통 매장이었다. 어쩐지 들어가기가 조심스러웠다. 딸과 내가 동시에 마음에 든 가방이 하나 있었는데 가격이 무려 215만원이나 해서 눈만 호강하고 나왔다. 진짜 비싸다. 저렇게 비싼데 너도 나도 들고다닌단 말이야? 남편은 대부분이 짝퉁이라고 하지만.

 

구경하다 보니 배가 고파져  롯데리아에 가서 햄버거를 먹는데 바로 옆테이블에 곱게 차려 입으신 할머니 4-5분이 앉아서 심각하게 말씀들을 나누시는 게 보였다. 딸이 " 엄마, 여긴 다양한 연령이 다 보이고, 어딜 가나 상점이 보이고, 먹을 곳이 깔려 있어요." 라고 말한다. 우리 동네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긴 하다.  딸도 12년만에 처음으로 명동에 와서 엄마 놓칠까 봐 손을 꼭 잡고 다녔다. 사람이 무지 많아서 어리둥절한가 보다. 내가 애들을 별로 안 데리고 다녔다 싶어서 미안한 마음도 좀 들었다. 그런데 간만에 인파에 밀려 다니다보니 너무 진이 빠졌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

 

딸 아이가 가오리옷인가 뭔가를 사고 싶다고 해서 명동 밀리오레까지 또 걸어갔다. 어차피 지하철 타려면 거기까지 가야하지만 이번에는 아까 백화점으로 내려올 때보다 인파가 더 늘어서 진짜 사람에게 떠밀려 다녔다.  동대문 밀리오레까지 가려면 너무 힘들 것 같아 대충 이 곳에서 고르자 하고 데려갔다. 다행히 딸이 찾던 디자인이 있어서 샀다. 생전 옷 사달라는 말을 안 하던 아인데 이제 서서히 사춘기가 시작되려나 얼마 전부터 가오리옷 타령을 하는데 그런 옷은 밀리오레 같은 곳에 많으니까 한 번 구경삼아 데려온 것인데 진짜 있었다. 딸 것만 사면 아들이 삐지니 아들 옷도 샀다.  좀 더 크면 친구들과 와서 옷도 사고 그러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 딸 많이 컸네!  엄마랑 명동도 오고, 밀리오레도 오고 말이야"  " 다음에 더 크면 친구들이랑 와서 옷도 사고 그럴 거야. 사촌 언니들도 용돈 모아서 옷 사러 오곤 하더라" 했다.

 

남편과 나는 쇼핑을 같이 다니지 않는다. 예전에 데이트할 때도 남편은 서점에, 나는 백화점에서 각자 볼 일 본 후 만나곤 했었다. 그런데 오늘 딸과 다녀보니 앞으론 딸이 나의 쇼핑 파트너 노릇을 할 듯하다. 전에도 그러긴 했지만 서도. 아가씨 때 혼자 쇼핑 다니면 간혹 엄마와 딸이 함께 쇼핑을 다니는 게 참 보기 좋아 보였다. 친정엄마는 40살에 나를 늦둥이로 낳으셔서 엄마와 쇼핑을 가 본적이 한 번도 없다. 그래서 쇼핑을 함께 온 모녀를 보면 참 부러웠다. ' 나도 나중에 딸이 생기면 저래야지'생각했는데 그 소원을 이룬 듯하다. 지금도 동네 백화점이나 마트는  딸과 자주 다니지만 아마 더 크면 더 자주 할 것 같다. 그리고 머잖아 딸과 내가 옷을 같이 입지 않을까 싶다. 딸은 어떤 때는 친구 같다. 앞으로 자라면서 더 친구 같을 것 같다.

 

명동에 진짜 오랜만에 와 보니 주거리는 변함이 없는데 외국관광객들이 무지 많아서 서울이 아닌 듯하였다. 매장 직원들도 한국말보다 일본어, 중국어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여기가 서울인지, 중국인지, 일본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전에는 일본인들이 많았는데 오늘 보니 중국이 대세더라.   그래도 오랜만에 와보니 예전에 아가씨 때 작은언니랑 쇼핑왔던 기억이 떠올라 잠시 추억에 잠겨 보기도 했다. 그리고 남편과 데이트하러 여기 가끔 오곤 했었는데... 그때는 LP와  클래식 CD 구경하러 왔었지. 모르긴 몰라도 그 매장들 다 페점했을 것이다. 그 때는 3-4시간 돌아다녀도 끄떡 없었는데 오늘 2시간 정도 쇼핑하니 허리며 다리가 엄청 아팠다.  

 

사람 많은 곳에 다녀오니 진짜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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