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민이의 왕따 탈출기 미래의 고전 29
문선이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양파의 왕따 일기>를 처음 봤을 때 그 생생함에 몸서리 친 기억이 난다. 작가의 말대로 10년 전보다 지금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왕따며 폭력 등이 일상적인 행태가 되어 버린 것 같아서 정말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 책의 주인공 수민이는 왕따의 피해자가 되었다가, 반대로 가해자가 되기도 하며 그러다 방관자가 되기도 하는데 비단 이렇게 왕따와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를 오고가는 것이 비단 수민이만의 독특한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사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 수민이처럼 그 세가지 모습을 오가고 있지는 않을까?

 

  이 책의 주인공 수민이는 유명한 왕따였다. 1년간 반 전체의 따돌림 속에서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낸 아이이다. 그러다 다행히 그 지옥에서 탈출하게 되는데 바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기 때문이었다. 수민이는 새롭게 시작하는 학교에서 다시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고 이번에는 준비물도 여유있게 챙기고, 먼저 인사도 하는 등 친구들에게 밉보이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노력을 한다. 다행히 그게 통해서 반에서 짱인 민석이에게 준비물을 빌려 주는 일을 계기로 그의 마음에 들게 되고 함께 PC방에 가자는 말까지 듣는다. 그것으로 수민이는 민석이의 <이구동성파> 일원이 된다. 그러니까 찌질이로 불리며 반따였던 수민이가 하루아침에 남들이 우러러보는 반짱과 같은 이구동성파가 된 것이다. 수민이는 이것으로 이제 왕따에서는 해방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이구동성파가 되었어도 수민이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경험이 가져다주는 공감능력이 있다. 즉 자기가 겪은 경험을 남들이 같이 겪는 걸 보게 되면 그 마음에 어떤 것이 있을지 손에 잡힐 듯 훤히 보인다는 것이다. 이구동성파가 된 수민이는 이제 가해자의 입장에서 민석이에게 밉보인 대현이를 괴롭힌다. 하지만 대현이가 그렇게 철저하게 괴롭힘을 당하고 급기야 폭력까지 당하는 걸 보니 예전의 자기가 생각나서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다. 같은 경험이 만들어낸 공감 능력이 대현이에게 가해지는 괴롭힘을 볼 때마다 발동하는 것이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잘 아는 수민이는 속으로 대현이에게 대차게 반항해보라고 외쳐보기도 하고 민석이나 다른 아이들이 때릴 때 자신이 참가하지 않는 것으로 대현이를 보호해주려고 하지만 결국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대현이는 이구동성파의 무지막지한 폭력을 견디다 못해 그만 정신병원에 입원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자 다시 수민이에게 고통이 찾아온다. 대현이가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사라진 먹잇감을 대체하려고 찾던 이구동성파에게 대현이를 괴롭힐 때 머뭇거렸던 수민이가 좋은 표적이 된 것이다. 그렇게 이구동성파에 의해 수민이는 다시 찌질이로 낙인 찍히고 괴롭힘을 당한다. 그제서야 수민이는 깨닫는다. 자신을 보호하는 유일한 길은 그들과 맞서 싸우는 방법 밖에는 없음을...

 

  책은 좀 잔인하게 읽힌다. 초등학생이 설마 이렇게까지 할까 생각할 정도로 이구동성파가 괴롭히는 정도가 정말 무지막지하기 때문이다. 요즘 급증하고 있는 학교 폭력의 실제 모습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이 책에 묘사된 폭력을 보면 정말 문제가 심각해 보인다. 작가의 서문에서처럼 10년 전 양파의 왕따 일기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이렇게 왕따며 학교 폭력이 만연되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런 일이 일어나니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다. 가르치는 1학년 아이들을 보면 왕따나 폭력 같은 것과 전혀 무관하게만 보이는데 가해자인 아이들도 1학년 때는 이랬을텐데 어쩌다가 그렇게 변해버린 것일까 정말 궁금해진다. 수민이가 그랬듯 그 누구도 왕따나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두렵다. 이구동성파가 대현이를 괴롭히기로 작정한 것도 정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말이 안되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왕따가 될 수 있을 만큼 아이들은 그 누구도 왕따의 사슬에서 피해나갈 수가 없다. 잘 나도, 못 나도, 뚱뚱해도, 날씬해도 다 왕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왕따를 만들어내는 것이 비단 학교 교육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엔 부모의 책임 또한 그에 못지않게 크다. 일례로 책에서는 이구동성파의 주축인 민석이 어머니와 피해자인 수민이 어머니가 동시에 학교로 와서 폭력 사태에 대해서 담임 선생님과 상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반응이 정말 극과 극이다.

 

 민석이 어머니의 태도는 정말 낯이 익다. 문제를 일으킨 학생의 부모들이 학교에 와서 흔히 하는 말들과 모습이기 때문이다. 철저히 자기 자식은 문제가 없다는 투로 늘 친구 탓만 하는 그 모습은 어찌나 한결 같은지... 바로 그런 식의 책임 회피가 더 큰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지 정말 부모들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 얘가 원래 안 그러는데 그럼 정말 안 좋은 친구랑 어울렸나 보네요. "

" 어머, 선생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어디 증거라도 있으세요? 선생님, 왜 우리 민석이만 미워하고 차 별하세요? 제가 누구예요, 민석이 엄마잖아요. 누구보다 민석이를 잘 안다니까요. 걘 절대 그럴 아이가 아니예요. 애 아빠한데 골프채로 맞으면서도 반항 한 번 안 하는 순한 아이라니까요. 분명히 나쁜 애들이 시켜서 할 수 없이 그랬을 거예요. "

" 그럼 뭐예요? 지금 우리 아이를 퇴학이나 전학이라도 시키실 건가요? 정말 민석이 담임 선생님 맞으세요? 우리 아들 앞길을 망칠 작정이냐고요, 이거야 원, 교육청에 진정이라도 해야지, 참.... "

 

 반면에 함께 온 수민이 어머니는 이런 반응을 보인다.

 

"선생님 죄송해요. 우리 수민이가 대현이를 왕따로 몰아가는 일을 했는지도 정말 몰랐어요. 제가 다 부족해서 벌어진 일 같아요. 죄송합니다. 오늘 수민이한데 알아듣도록 잘 말할게요."

 

 이렇게 두 어머니의 반응은 참 다르다. 그런데 실제도 그렇다. 주동자였던 친구의 어머니는 늘 당당하고 목소리도 크다. 하지만 그저 지켜만 보았거나 피해자인 친구들의 부모님은 마치 자신이 죄인이라는 듯이 움츠러들어 있고 목소리도 조용하다. 옛말에 맞은 놈은 발 뻗고 자도 때린 놈은 편히 못잔다고 했는데 이제 그 말은 완전히 틀린 세상이 되었나 보다. 결국 왕따란 타인을 존중해 주어야 할 인간이 아니라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도구라는 생각에 생겨나는 문제이다. 그렇게 자기 중심적인 사고가 결국 한 아이의 비극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의 자기 중심적 사고는 그 아이만의 것이 아니라 바로 부모로 부터 물려받은 것임을 민석 어머니 뿐만 아니라 이렇게 모든 폭력 사태의 가해자 부모들을 만날 때마다 깊이 깨닫게 되는 사실이다. 독을 품은 나무에는 독을 품은 과실 밖에는 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런 일들을 겪을 때마다 새록새록 체감한다.

 

 결국 왕따란 학교와 학부모가 같이 협력해서 풀어가야 할 문제이다. 학교는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동급생으로 향하지 않도록 적절히 대처함과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아이들을 괴롭히도록 만드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결코 학교에 보안관을 몇 명 더 둔다거나 폭력방지 교육만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왕따의 1차적인 원인은 아이들의 다양한 개성을 인정하지 않는 획일적인 성적 위주의 교육 방식 때문이다. 그들의 다양한 에너지가 나갈 통로가 그들이 원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오로지 성적 하나 밖에는 없기 때문에 미처 발산하지 못한 에너지들이 그들에게 스트레스를 만들고 결국은 밖으로 뻗어가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니 교육과정이 성적 일변도에서 벗어나서 보다 다양하게 형성되어 그들이 가진 에너지를 다양한 방향으로 발산시켜 주어야 한다. 아마도 그것이 왕따를 막을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대책중의 하나일 것이다.

 

  또한 부모들은 너무 자기 자식이 최고라는 생각만 주입시키지 말고 늘 다른 아이들과 공존하는 것이며 그래서 다른 아이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무엇보다 우선적인 것임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예전의 학부모들은 " 선생님, 때려서라도 사람 되게 가르쳐 주세요." 하는 말들을 참 많이 했었다. 그런데 요즘엔 " 설사 잘못 한 일이 있더라도 혼 내지 마시고, 칭찬만 해 주세요. " 라는 말을 더욱 자주 듣는다. 학교란 교육을 위한 곳이다. 말 그대로 한 사회의 성원으로 당당하게 될 수 있도록 필요한 인성을 키우는 곳이다. 그런데 학부모님들은 학교를 무슨 애완동물 가게 쯤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다. 자꾸 멋있게 예쁘게 치장시켜 달라고만 하시니... 그동안 교사 경험에 비추어보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의 생각을 그대로 모방한다. 정말 아이들의 인성이 나아지기를 원한다면 부모부터 달라져야 한다.

 

  왕따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방관자들이다. 대현이가 그렇게 당하고 있어도 다른 아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담임 선생님에게 신고는 커녕 그들에게 '그만해'라는 말조차 없다. 오히려 이구동성파에 가담해서는 자기들까지 대현이를 더욱 따돌림 시킨다. 이렇게 방관자와 가해자는 정말로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방관 그 자체가 사실은 가해의 다른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가해자가 지는 도덕적 책임을 당연히 방관자도 나누어져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책에서는 대현이의 그러한 생활을 알게 된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을 야단치면서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있다.

 

"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 있다. 세상은 악당에 의해 파괴되는 게 아니라, 악당을 보고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이들에 의헤 파괴된다고."

 

 

 그러므로 설사 운좋게 피해자가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모든 부모님들은 방관자가 되지 말 것을, 그런 일이 있을 때 용감하게 '그만해!'라고 외칠 것을 아이들에게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 왕따의 많은 부분은 정작 가해자들 보다도 방관자들의 역할이 더 많이 크게 차지한다. 그러니 모든 아이들이 그 폭력에 대해 참견을 하고 그만둘 것을 종용한다면 왕따를 막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아무리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르는 자도 결국은 사람이기 때문에 다수의 힘 앞에서는 약해진다. 문제는 나만의 비겁은 언제나 집단의 비극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그런 일이 있을 때 자신의 아이가 비겁한 방관자가 아니라 용감한 저항자가 될 것을 교육 시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아이 또한 당할지 모르는 왕따의 사슬로 부터 벗어나게 하는 길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왕따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점증하고 있는 학교 폭력으로 인해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대책들이 나오곤 있지만 정작 아무것도 해결책이 되지 않는 것은 왕따의 문제를 그 근본에서 바라보고 정말 근절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여론 무마용으로 전시행정식으로만 그 때 그 때 배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로 하여금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게 하려면 국민 스스로 먼저 왕따 문제에 대해 정말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우리들에게 좋은 생각거리를 가져다 줄 것 같다. 10년 전의 왕따 일기 보다 수민이의 왕따 탈출기는 그 괴롭힘과 폭력의 정도가 정말 세졌다. 근데 이게 다 현실이라는 사실이 정말로 참담하다. 앞으로 10년 뒤는 또 어떻게 될까? 그 생각만 하면 저절로 모골이 송연해진다. 왕따 문제를 하루라도 빨리 해결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있다.

 

  한 가지 책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3/4지점까지 긴장감 있게, 밀도 있게 진행되던 이야기가 후반부에 가서는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대현이 때는 그렇게 많은 일들이 벌어졌는데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던 선생님이 수민이 때는 우연히 하은이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오셔서 민석이가 수민이를 공격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이라든지, 민석이와 수민이 그리고 하은이와 선생님이 산행을 가는 부분도 약간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건 아주 사소한 아쉬움에 불과하다. 그런 아쉬움은 저 멀리로 날려버릴 만큼 이 책은 왕따의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주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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