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형제 동화집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40
그림 형제 지음, 아서 래컴 그림, 이옥용 옮김 / 네버엔딩스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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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태교를 위해서 동화책 한 권을 사서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책이 바로 <그림 형제 동화집>이었다. 그런데 한 편 한 편 읽으면서 " 아이들 책 치고, 너무 잔인하다" 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태교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아서 중간쯤 읽다가 책을 덮고 말았다. 그러니까 제대로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읽다가 그 때 기억이 새삼 나서 빙그레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 때는 그저 "잔인하다. 더 이상 못 읽겠다" 로 끝나고 말았는데 이번엔 왜 그림 형제의 동화가 잔인할 수 밖에 없는지 깨닫게 되는 것 까지 나아갔다. 그동안 나의 독서 여정에도 나름 진보는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그 때문에 옛 성현들은 같은 책이라도 여러 번 읽으라고 하셨던 것은 아닐지.

 

  우선 그림 형제의 동화집은 그들이 창작한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독일에 전해지고 있던 우리나라로 치면 전래 동화를 모은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안데르센 동화집은 안데르센의 창작 동화이지만 그림 형제의 동화는 동화를 채집 각색한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안데르센상'은 있어도 '그림 형제상"은 없는게 아닐까?

 

 처음에 그림 형제는 어머니의 소망 대로 법학도의 길을 걸었다. 당시 독일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처럼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여러 개의 봉건 영주들이 나누어 지배하는 소위 영주국가였다. 그런데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과 더불어 독일에서 본격적인 통일 논의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차츰 게르만 민족 정신이라는 것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철학자 피히테가 독일 민족을 강조하기 시작했고 문화적으로도 같은 민족으로 하나라는 생각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림형제가 있는 법학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독일 법학 분야도 독일 통일을 위해 하나라는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는 독일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성문법인 독일 민법이 필요하다는 것엔 입을 모았다. 하지만 그 성문법을 어떻게 만들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달랐다. 이것은 티보와 사비니의 논쟁으로 집약되어 나타났는데 그렇게 티보는 로마법을 그대로 독일 민법전으로 쓰자고 주장했고 사비니는 법은 민족정신과 더불어 태어나고 발전하고 죽는 것이니 법과 민족정신은 별개일 수 없으며 따라서 독일 민법엔 로마법이 아니라 독일 고유의 법전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그 논쟁에서 사비니가 이겼고 때문에 독일 법학은 독일만의 고유한 법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당연히 그림 형제 또한 그를 위해 노력했다. 말하자면 '그림동화집'은 바로 그러한 그림 형제가 독일만의 고유한 법을 만들기 위한 노력 가운데 태어난 산물이었다는 얘기다.

 

 사비니는 민족정신은 언어와 이야기에 깃들어 있다고 말했고 그림 형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은 독일만의 고유한 민족성을 살피려면 무엇보다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민담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독일만의 고유한 정신을 찾기 위해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민담을 모았던 것이다. 그렇게 모은 86편의의 이야기를 그들은 결국 <어린이들과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옛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내게 되는데 이것은 다시 말하자면 그들이 생각한 독일 민족 정신의 정수 같은 것을 모은 것이었다.

 

 그래도 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왜 이토록 이야기가 잔인한 것일까? 

 

 알아보니 이는 당시 독일의 상황 때문이었다. 당시 독일은 기근과 전염병으로 제대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때문에 많은 독일 사람들에게 있어서 삶이란 그 무엇보다 잔혹함이었고 바로 그러한 보통 독일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인식과 받았던 느낌이 그대로 그림 형제의 동화에 투영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림 형제 동화들에서 '먹는다'는 것이 그리도 자주 반복되고 먹을 것이 부족하자 가차 없이 아이들을 숲에 버리는 <헨젤과 그레텔> 처럼 반복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이유가 된다는 점에서도 바로 드러나는 것 같다.

 

 한편, 그토록 잔인하고 잔혹한 삶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이 음흉한 계략이나 고난과 맞서 싸우다 끝내 승리하는 것을 보면 그림 형제들은 비록 그러한 삶일 망정 그래도 뭔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했던 것 같다. 또한 더 나아가서는 그들이 염원했던 독일 민족의 통일이 이루어지기까지 그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정신 역시도 주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그림 형제의 이야기들을 읽다보니 새삼 우리나라의 옛 이야기들을 모아서 펴내시는 한국 작가님들 생각이 났다. 아마 그 분들의 마음 또한 그림 형제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우리의 옛 이야기를 모아 많은 이들에게 읽히기 위해 펴내시는 그 분들 역시도 결국은 우리들에게 정말 우리 민족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아주려는 것이 아닐런지 깨닫는다.

 

 이 책에는 모두 12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로 <요술식탁과 황금당나귀와 자루 속에 든 방망이>라는 이야기이다.  재봉사인 아버지와 세 아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에게는 우유를 주는 염소 한 마리가 있었다. 세 아들은 그 염소에게 풀을 배불리 먹이고 집에 데려오는데 배불리 먹은 이 염소는 집에만 오면 풀을 하나도 먹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해대는 통에 아들 셋은 아버지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집에서 쫓겨 난다. 아버지는 나중에 이 염소가 거짓말을 한 걸 알고 후회를 하지만 이미 아들을 몽땅 내친 후였다. 한편 쫓겨난 아들 셋은 각자 수련을 하고 나서 신기한 물건들을 스승님께 하사 받고 자신을 내쫒은 아버지에게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에 나쁜 여관 주인에게 속아 다시 한 번 고초를 당하지만 막내 아들의 지혜로 여관 주인을 골탕 먹이고, 형들이 받은 신기한 물건들도 되찾아 온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가 특히 의미심장한 이유는 산업혁명 때의 독일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염소에 의해서 쫓겨나는 세 아들은 제1차 인클로저 운동으로 목축지가 대량으로 늘어나는 바람에 쫓겨날 수 밖에 없었던 농민들과 무척 닮아 보인다.

 

 

 

 

- 1차 인클로저 운동 당시를 나타내던 그림. 이렇게 경작지가 대부분 목축지로 바뀌게되자

 농민들을 어쩔 수 없이  자기네 고향에서 쫓겨나 도시로 몰려가게 된다. -

 

 

 그렇게 쫓겨난 농민들은 도시로 몰려갔고 거기서 이제까지의 농업과는 완전히 다른 기술들을 익힐 수 밖에 없었는데 이야기 역시도 그것을 그대로 담고 있다. 세 아들이 각각 수제자가 되어 한 가지 기술을 익히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리 기술을 익히더라도 농민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성공을 얻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중간에서 그들의 이익을 가로채는 자본가가 있어서 그들이 일하는 만큼 벌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확히 과도한 노동에 비해 받는 임금은 턱없이 적었던 당시 독일 산업 현장을 그대로 담아낸 것으로 보인다. 즉 아들들의 신기한 물건을 가로채는 여관 주인이 바로 그러한 악덕 자본가들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당시 독일인들은 어떻게 하면 그들로 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를 참 많이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러는 빵으로 상징되는 식량 비축을 통해서 더러는 금화로 상징되는 많은 돈의 축적을 통해서 벗어나려 해보지만 이야기에 따르면 다 실패했던 것 같다. 막내 아들이 보여주는 방망이는 아마 그들의 최후 방법 같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영국에서 일어난 기계 파괴 운동인 러다이트 운동 처럼 오로지 방망이가 상징하는 무력 저항만이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렇게 놀랍게도 <요술식탁과 황금당나귀와 자루 속에 든 방망이> 는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당시 독일의 농민들 그리고 도시로 몰려든 농민들의 애환을 그대로 담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림형제 동화집에 실린 이야기는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갖가지 경험과 생각들을 상상력을 통해 이야기로 변형한 것이었다. 이렇게 유럽의 역사를 알고 읽게되니 그림형제의 동화가 전혀 새롭게 읽힐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브레멘 음악대는 당시 영주국가로 분열되어 있던 독일이 외세의 위협에 제대로 대항하려면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얘기라는 것을 알게 되듯이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들려줄 때도 그냥 이야기로서가 아니라 당시 나라의 역사나 상황을 공부하고 난 뒤 들려주면 훨씬 더 풍부하게 이야기에 다가갈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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