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인의 마음, 신라인의 노래 - 이야기와 함께 만나는 향가의 세계 진경문고
이형대 지음, 신준식 그림 / 보림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향가"라는 말을 꺼내보는 게 얼마만인가! 고등학교 때 고문시간에 배웠던 그 기억만 어렴풋이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보림에서 나온 " 신라인의 마음, 신라인의 노래"라는 책을 접하고서야 그 때 내가 배운 것이 향가에 대해 1/100만큼도 배우지 못한 것이란 걸 가장 절실히 깨달았다.

 

 

"향가"란 신라 사람들이 즐겨서 부르던 노래로서 향찰로 기록되었다. 여기서 "향찰"이란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한 것을 뜻한다. 향가는 4구체, 8구체, 10구체 향가로 나뉘어지며 삼국유사에 14수, 균여전에 11수 총 25수가 전해진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삼국유사에 실린 향가 중 2수를 제외한 12수의 향가를 소개하고 있다. 12수의 향가 중에는 고문 시간에 외워서 기억이 나는 것도 몇 편 있었고, 처음 들어 본 향가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유야 어찌 되었건 간에 향가에 대해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웠다는 점이 정말 안타깝고, 이 책처럼 향가가 쓰여진 배경, 그 시대적 상황, 향가에 얽힌 이야기, 그 속에 담긴 뜻들을 곁들여서 배웠다면 1000여 년을 거슬러 신라인의 마음과 교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너무 시간에 쫓겨서 작가와 제목만 외우고 지나쳤던 향가에 이런 깊은 뜻이 담겨 있다니 놀랍기 그지 없다. 지금이라도 향가에 담긴 신라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해 준 이 책이 참 고맙다.

 

 

작가는 향가를 4구체, 8구체, 10구체로 분류하여 설명하지 않고 신라인의 마음을 기준으로 나눴다. 즉 <꿈과 아름다움을 쫒아>라는 꼭지에 서동요, 헌화가, 처용가를 넣었다. <참마음의 길을 따라>꼭지에 원왕생가, 우적가, 제망매가를 넣었다. <역사의 뒤안길에서>꼭지에는 혜성가, 모죽지랑가, 찬기파랑가를 넣었다. 마지막 <밝은 세상을 꿈꾸며>꼭지에는 안민가, 원가, 도천수대비가를 넣었다. 그 중에서도 난 다음에 소개할 두 향가에 담긴 마음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책 속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처용가였다. 바로 처용의 정체성 때문이었다.

 

 

서울 밝은 달밤에

밤새도록 놀며 다니다가

들어와 잠자리 보니

다리가 넷이로다

둘은 내 것이건마는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이다만

빼앗긴 걸 어찌할고 (처용가)

 

 

고등학교 때 처음 이 향가를 배울 당시 다리가 넷이라는 부분에서 모두들 "우~~"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한 발 더 나아가 두 다리는 아내 것인데 나머지 두 다리는 그럼 누구 것? 이 상황이 여고생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나중에서야 처용이 역신을 물리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고 조금(?) 실망했지만 말이다. 이 책에서는 바로 처용이 동해의 용왕의 아들이었고, 동해에서 왔다는 것은 신라인이 아닌 동해를 통해 들어온 외국인을 뜻한다는 거란다. 이럴 수가? 지금까지 나만 몰랐나? 울산 태생인 남편은 자신은 벌써 알고 있었다면서 으시댄다. 그래서 처용의 모습의 여느 신라인의 모습과는 다르게 표현되고 있었나 보다. 처용의 아내가 다른 남자-역신-와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도 노하지 않고 체념하는 처용의 모습을 배우면서 고등학교 때도 '인내심이 참 대단하다!' 고 느꼈는데 처용가의 의미를 깊이 새겨 보니 처용은 전염병에 걸린 아내를 불철주야 자신만의 의술과 주술로 고치고, 급기야 역신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 후로 고려속요에는 '처용 아비만 본다면 열병신도 횟감이로다'로 묘사되고 있다고 한다. 처용가에 이런 깊은 뜻이 담겨 있을 줄이야!!! 지금도 울산에서는 해마다 처용을 기리는 처용문화제를 개최한다고 하니 비록 신라인이 아니었지만 신라인에게 아주 중요한 인물이었던 것은 확실한 듯하다.

 

 

다음은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향가가 아닌가 해서 이 향가가 마음에 콕 박혔다. 바로 안민가 이다.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노래 안민가를 충담으로 하여금 짓게 한 경덕왕은 불국사를 건설하게 한 왕이다. 그런데 불국사를 공사하던 중에 나라에 이변이 자주 발생하고, 백성들의 생활은 갈수록 어렵고, 고통이 끊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불국사 건설 공사를 계속하였다고 한다. 그런 경덕왕이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노래를 지어 불렀다니.... 이건 병주고 약주고 아닌가! 불국사를 보게 되면 감회가 새로울 듯하다. 불국사 담장 하나하나에 신라인의 피가 서려 있다는 걸 이제 알았으니 말이다. 안민가에 나온 내용대로만 하면 백성의 마음이 편안할 터인데 왜 윗분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걸 안하시는 지 모를 일이다.

 

 

임금은 아비요

신하는 사랑하는 어미요,

백성은 어리석은 아이라고

하실진대 백성이 사랑을 알리라.

대중을 살리기에 익숙해져 있기에

이를 먹여 다스릴려라.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할진대 나라 보전할 것을 알리라.

아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가 태평하리라. (안민가)

 

 

 

 

신라인들의 마음을 담은 노래 향가를 12수를 하나하나 읊조려 보니 1000여년 전의 신라인의 마음도 지금 나의 마음은 대동소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꽃을 꺾어 바치고 싶고, 고단한 현세로 인하여 평안을 얻을 수 있는 내세에 대해 늘 동경을 하고, 자신의 전성기를 그리워하고, 하루빨리 국민이 편안한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그 마음 말이다. 그건 1000년 후, 나의 후손들이 지금 우리들의 노래를 듣더라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신라인의 마음, 신라인의 노래>를 다 읽고 리뷰를 한참 생각하고 있던 중에 향가로 추정되는 작품을 한 수 출품하였다는 신문 기사가 눈에 번쩍 띄었다. 보통 때면 그냥 지나쳤을 터인데 책을 읽은 갓 읽은 뒤라서 이 기사가 크게 들어온 것 같다. 이게 향가로 확인되면 이제 26수가 되는 건가? 모쪼록 좋은 소식이 전해지길 기대해 본다.

 

 

멋진 수묵화를 그려 주신 신준식 작가님께서 책 작업 도중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하직하셨다고 한다. 각각의 향가에 어울리게 담백하면서도 잔잔한 여운을 주는 그림을 그려주셨는데... 고인의 유작이 되어버린 이 작품이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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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4 07: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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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5 12: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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