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채의 그림자 정원
이향안 지음, 호랑 그림 / 현암사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좋아하는 역사 동화를 또 만났다. 우선 반갑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쁘고, 감동적인 이야기에 또 한 번 가슴이 뭉클해진다. 작가님 또한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 <광모 짝 되기>를 쓰신 분이란 걸 알고 더 반가웠다.

 

채채라니? 무슨 뜻일까 궁금했는데  사람 이름이다.  어머니께서 책을 많이 읽으라는 뜻에서 "책책" 으로 지었다가 부르기 쉬운 채채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천한 신분으로 태어난 데다 조실부모하여 책 근처에는 가 보지 못했다. 행색을 보니 남자 아이일 거라고 상상이 되겠지만 여자 아이이다. 지금은 산 속에서 오라버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채채의 부모님은 억울하게 양반들에게 매를 맞고 돌아가셔서 이 오누이는 누구보다도 양반을 싫어한다. 그런 채채가 자주 가는 비밀의 장소가 있는데 바로 내장산 용굴이란 곳이다.

 

이 날도 용굴에 놀러 갔다가 그만 이상한 것들을 보게 된다. 사람들이 뭔가 궤짝을 여러 개 옮기는데 양반 할아버지가 진두지휘하면서 수십 개의 궤짝을 채채의 비밀 장소인 용굴에 옮기는 것이다. '이 난리통(임진왜란)에 저렇게 많은 궤짝을 옮기는 걸 보니 필시 보물 상자인 게 분명해' 매일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탓에 채채의 오라버니 풍이는 호시탐탐 이 보물 상자를 노려 보지만 양반 할아버지의 눈에 채채가 그만 발각되고 만다. 양반 할아버지로부터 먹을 것을 얻어 먹으면서 알게 된 진실은 그 궤짝 안에 보물이 들어 있는 게 아니라 책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무슨 책이냐 하면?  " 조선왕조실록" 이란다. 에게게?  겨우 책을 지키려고 양반 할아버지는 좋은 집 놔두고 동굴에서 생활한단 말이야? 양반 할아버지는 그 책들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시는 듯하다.  채채와 양반 할아버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양반을 웬수로 생각하는 오누이와 목숨보다 책을 더 귀하게 생각하는 할아버지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으면서 신분, 나이를 뛰어 넘어 그 책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뜻을 지닌 동지가 된다.

 

조선왕조실록은 4군데에 나눠 보관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3군데 있던 실록은 모두 소실되었고 오직 전주사고에 보관되었던 실록을 두 명의 양반이 겨우  내장산 용굴에 옮겨와서 번을 서가면서 지켰다고 한다. 여기에 나온 양반 할아버지는 그 중의 한 면을 모델로 삼은 듯하다.  그렇게 1년 여 넘게 동굴 생활을 하다 왜군의 눈을 피해 나중에 임금이 도피한 황해도 해주까지 옮겨 간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이 역사 동화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작가는 이 동화를 쓰기 위해 직접 내장산 용굴에 찾아갔다고 한다.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 낼까 고민하던 중에 채채와 풍이, 양반 할아버지라는 인물을 창조해 냈다고 한다.

 

실제로 그 많은 양의 실록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황해도 해주까지 옮겨졌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이야기는 그런 거사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민초들의 힘이 컸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난리가 나자 임금은 백성을 버리고 한양을 벗어나 해주로 피난 갔지만 백성은 온 몸으로 왜적과 맞서면서 실록을 지켜 내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양반 할아버지 한 명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국 실록을 지키는 일은 백성들의 마음에 간절한 소망이 되어 채채, 채채의 오라버니 풍이, 그리고 그 마을에 살던 민초들 모두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 하지 않고 거사에 합세하기에 이르른다.

 

그림자 정원은 바로 그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용굴 앞에 하나하나 쌓아 올렸던 돌탑의 그림자를 보고 채채가 지어낸 말이다. 그림자 정원, 참 운치 있다.  다음에는 어떤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질까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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