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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앤 ㅣ 동화 보물창고 39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12월
평점 :
"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간 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이 노래의 주인공 소녀 빨간 머리 앤 완역본을 처음으로 읽었다. 읽고 나니 고전이 왜 고전인지 알겠다. 정제된 언어들, 풍부한 감수성을 자극하는 표현들은 요즘 나오는 동화들과는 사뭇 정말 다르다. 혹자가 왜 우리 아이들에게 고전을 읽으라고 권하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고전을 읽고 자라지 못한 나는 지난 시간 동안 얼마나 불행하였나 하지만 지금이라도 고전을 읽게 되어 다행이라고 자위해 본다.
혹자가 같은 고전을 평생에 걸쳐 3번 읽어 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린 시절에 한 번 읽고, 청년기에 또 읽고, 마지막 노년기에 다시 읽어 보면 그때 그때 주는 감동과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정말 그럴 것 같다. 그 나이마다 다가오는 감동이 다 다를 것 같다. 중년이 되어 앤을 만나니 엄마의 입장에서 자꾸 생각을 하게 된다. 앤의 상상력, 창의력, 순수함 모두 인정하고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이렇게 한시도 입을 가만 놔두지 않고 조잘대는 딸이나 반 아이가 바로 내 옆에 있다면 얼마나 정신이 어지러울까!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앤이 사랑스럽다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런 앤도 시간이 지나자 말수가 줄어드는 걸로 봐서... 그것도 한 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이들 키우다 보니 정말 한 때다 싶다. 그러니 조금 수다스럽더라도 어른이 좀 참아 주자. 그것도 한 때이니 말이다. 앤을 보면서 우리 반의 꼼지락 공주 @@가 자꾸 생각난다. 그 아이도 앤처럼 수다스럽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무엇보다 사랑스럽다. 아, 그래 책을 좋아하는 것도 닮았다.
놀라운 것은 이 두께(377쪽)의 앤이 무려 10권 있다는 것. 나머지 앤이 성장하여 어른이 되고 나서의 이야기도 읽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샘 솟고 있다. 앤이 교사가 되었다니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칠 지도 무지 궁금하다. 벌써 남편이 사 놓았으니 언젠가는 읽게 되겠지.
Anne이라고 꼭 자신을 불러 주라고 말하는 이 상큼발랄한 아가씨 앤은 고아이다. 고등학교 교사였던 부모님은 앤이 태어난지 3개월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후 나흘 후에 아버지마저 돌아가셔 고아로 자라게 된다. 고아원에 맡겨진 앤을 독신으로 살고 있던 남매 매튜와 마릴라가 우여곡절 끝에- 원래 남자를 입양하려고 했었다.-입양하게 되고 에이번리에 있는 초록 지붕 집에서 가족으로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앤의 온갖 실수투성이 이야기와 친구들 이야기, 학교 이야기, 앤의 무한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진다. 빨간 머리가 주는 인상처럼 고집스럽고, 자존심 강하고, 끊임없이 조잘조잘 대는 수다쟁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앤을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그 매력은 앤의 그 순수한 마음과 열정, 그리고 그 아이의 무한한 상상력이 아닐까 싶다. 바로 21세기가 바라는 그런 창의적인 인재가 바로 앤이다.
몽고메리 자신의 자서전적 이야기이기도 한 이 책은 그래서 더 실감 나고, 무엇보다 앤 이라는 캐릭터가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앤이 완벽한 아이가 아니고, 말 그대로 실수투성이이기에 독자도 그 아이에게 매료되는 게 아닐까 싶다. 완벽한 아이로 그려졌다면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실수투성이에다 천방지축이던 앤이 에이번리라는 아름다운 곳에서 성장하는 동안 독자도 앤과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앤이 매튜 아저씨와 마릴라 아주머니와 함께 살았던 초록 지붕 집도 한 번 가 보고 싶고, 무엇보다 가장 앤을 감동 시켰던 초반에 나오는 그 가로수길을 꼭 가보고 싶다. 에이번리로 가는 길에 앤의 수다를 멈추게 만들었던 사과 나무가 아치를 이루고 있던 그 가로수길 말이다. 앤과 매튜 아저씨가 역에서 처음으로 만나 마차를 타고 지나갈 때 하얀 사과꽃이 눈 처럼 나리던 그 가로수길의 모습을 눈 감고 떠올려 본다. 앤이 상상할 때처럼 말이다. 얼마나 경이로웠으면 그 수다쟁이 아가씨의 말문을 막아 버렸을까!!!
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몇 명이 있다. 하나 같이 개성 강하고, 고집도 좀 세고, 그렇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배려심 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 삐삐, 하이디, 작은 아씨들의 조. 그녀들의 공통점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희망과 행복 바이러스를 전해 준 존재들이었다는 점이다. 새해가 밝았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나로 인하여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한 해가 되어야겠다. 앤 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