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담은 잔소리 통조림 1218 보물창고 4
마크 젤먼 지음,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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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는 매일 이걸 듣고 살다가 중년이 된 지금은 매일 이걸 말하는 게 있다. 정답은? 바로 잔소리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주로 내가 하는 역할이 바로 잔소리다. 놀토인 오늘만 해도 아침에 눈뜨자마자 하는 일이 바로 잔소리이다.  하루라도 끼니를 굶으면 안 되는 것처럼 이 잔소리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게 되는 것 같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어린 시절에는 주로 잔소리의 대상이 되었다가 어른이 되어서는 잔소리를 하는 사람으로 역할만 바뀌었을 뿐 잔소리는 계속된다. 문화적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서양의 잔소리가 닮아 있는 게 신기하다. 대동소이한 32가지 잔소리 목록은 제목만 봐도 참 재미 있다.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잔소리에 저자는 철학을 담아 잔소리에 담겨 있는 작은 뜻과 큰 뜻을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고 있다. 32가지 잔소리를 다 읽고 나면 부모님이 하시는 잔소리가 노래 소리로 들리는 기적을 체험하지 않을려나? 그건 너무 무리인가?   

지금은 잔소리를 하는 입장이라서 이 책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끄덕거리지만 잔소리를 듣는 대상인 수퍼남매 입장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잔소리에 담긴 작은 뜻과 큰 뜻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들도 벌써 부모가 되어 있지는 않을런지.... 부모가 매일 하는 잔소리가 결국 '사랑'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아줬으면 한다.

잔소리 몇 개만 소개해 보자. 

" 늘 깨끗한 속옷을 입어라" 는 잔소리는 어렸을 때 내가 상상하던 내용과 흡사하여 보면서 큭큭거리며 웃었다.  이 잔소리를 하며 부모가 설득하는 말이란 " 만약 네가 학교 가는 길이나 집으로 오는 길에 사고라도 당하면,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가게 될 거야. 그러면 응급실에서 의사가 네 바지를 벗길 텐데 네가 더러운 속옷을 입고 있다고 생각해 봐. 그 의사가 우리를 속옷도 안 빨아 입히는 나쁜 부모라고 생각하지 않겠니? 그러니까 넌 늘 깨끗한 속옷을 입어야 하는 거야." 중고등학교 때 나도 이런 종류의 상상을 하면서 속옷을 갈아 입었던 생각이 불쑥 나서 웃었다. 서양의 부모들도 이런 말로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다니... 하지만 응급환자의 속옷이 더럽다고 해서 치료를 해 주지 않을 리도 없고, 이 잔소리가 가지는 큰 뜻은 바로 "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부분도 보이는 부분만큼이나 좋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함이란다.  

부모들이 밥상머리에서 자녀에게 가장 많이 하는 잔소리 중의 하나인 " 채소를 먹어라" 에 담긴 큰 뜻은 " 우리가 하고 싶은 일과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 고기,라면, 햄버거 등만 먹는다면 건강을 해칠 것은 뻔하다. 아이들은 이런 류의 음식을 원하지만 아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음식들은 아니다. 따라서 이 잔소리는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과 내게 필요한 것이 일치하는 단계까지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고 해도 늘 이런 일치감을 맛보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특히 절제력이 부족하므로 불일치하는 경우가 더 많다.  지금 TV를 보고 싶지만, 지금은 숙제를 해야 할 시간이라는 것.  이런 불일치의 순간에 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와 주는 게 바로 부모의 잔소리일 것이다. " 얘들아, 너에게 필요한 것부터 우선 해야지."

" 신발 끈을 제대로 매라"는 잔소리는 " 시작한 일을 제대로 끝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무슨 일이든지 '대충' 하는 것보다 ' 제대로' 하는 것이 훨씬 힘들다. 교실에서도 대충 하는 아이들을 보면 제일 화가 난다.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모자라는 상황도 아닌데 매사에 '대충' 하려고 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제대로 즉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삶의 태도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부모가 자녀들에게 주로 하는 잔소리에 철학을 담아 거기에 내포되어 있는 큰 뜻을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 자녀들이 부모가 매일 하는 잔소리에 이런 큰 뜻이 담겨 있다는 걸 이해한다면 매일매일 벌어지는 부모와 자녀의 다툼이 조금은 잠잠해지지 않을까 싶다. 잔소리라도 해 주는 부모가 옆에 있다는 것이 행복이란 걸 알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예전엔 몰랐듯이 우리의 자녀들도 현재는 잘 모를 것이다. 그래도 잔소리가 그냥 잔소리가 아니라 이런 철학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줄 수 있어서 참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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