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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평점 :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참을 인 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로써 모든 일을 참고 견디는 것이
미덕임을 강조해왔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덕분에 정의롭지 못한 일에 대해서도 참고, 입을 닫아 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고,
나서서 목소리를 높여 따지거나 분노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훼방꾼이라든지, 매사에 딴지를 건다든지,
사고가 부정적이라든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든다든지 등의 평가를 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였다.
오죽 하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도 나왔을까 싶다.
하지만 이 책은 무조건 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분노하라고 부추기고 있다.
레지스탕스 출신의 94세 스테판 에셀은 현재 프랑스 젊은이들, 아니 세계 곳곳에 있는 많은 이들에게
지금이 마땅히 분노해야 함을 자신의 일생의 경험을 통해 말하고 있다.
분노라는 단어가 가지는 어감이 대중들에게 부정적으로 들릴 지도 모른다.
역자도 굉장히 고민 끝에 이 단어를 선택했다고 한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의 <분노>에 대한 이미지를 걱정해서일 게다.
분노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화를 참지 못하고 평정심을 잃고 폭발하는 것을 연상하게 되는데
이 책에서의 분노는 개인적인 폭발이 아니라
바로 공의적인 차원에서 세상사에 무관심하지 않고 마땅히 저항하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분노하지 않을 만큼 좋은 사회이던가?
어마어마한 사교육비, 극심한 빈부차, 엄청난 실업률, 치솟는 물가, 매일 쏟아져나오는 비리 사건 등등
이런 것들을 보면서도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지 않는가?
스테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은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한다.
마음에 분노가 일지 않음은 결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무관심하다는 증거이고
무관심이야말로 좋은 사회를 만드는 최악의 적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해마다 정치, 사회에 무관심해지고, 오로지 자신의 스펙을 쌓아 좋은 기업에 취직하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데 그거야말로 우리나라를 후퇴하게 만드는 지름길인 셈이다.
자신이 살아갈 미래, 자신의 자녀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지금 돌아가는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분노해야 할 때 마땅히 분노하는 것이야 말로 좋은 사회를 만드는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나도 젊을 때는 잘 몰랐었다.
부모가 되어 보니 비로소 좀 알 것 같다.
부모가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좋은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방패막이가 되어 주어야
사랑하는 자녀가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추천사를 쓴 조국 교수의 글은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을 개탄하며 자신의 말처럼 "선동질"을 해대는데 속이 다 후련하다.
그의 글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존F 케네디가 단테의 <신곡>을 인용하여 재해석한 말이다.
"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
무시무시하지 않는가? 중립, 중도라는 미명 하에 무관심하지 말라고 단테는 경고하고 있다.
무관심했던 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뜨거운 지옥이라는 말이다.
조국 교수는 말한다.
현실에 대한 냉소, 무관심, 거리두기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우리의 정당한 분노와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 고 말이다.
그렇다. 무관심이야말로 세상을 파멸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셈이다.
정당한 분노가 필요한 때이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부터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