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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나무 위의 눈동자 ㅣ 동화 보물창고 36
윌로 데이비스 로버츠 지음, 임문성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11살 소년 롭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체리 나무 위에서 살인 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살해된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이웃에 사는 마녀 할머니였다. 마녀 할머니가 죽은 것을 자업자득이라고 해야 하나 아님 그래도 살인 사건이니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애도해야 되나 이런 고민도 하기 전에 롭은 자신을 겨누고 있는 살인자의 추격을 감지하게 된다. 누가 할머니를 죽였을까? 할머니는 그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못된 짓거리들을 많이 했기에 할머니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그래도 살인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롭은 마치 <톰 소여의 모험>에서 톰이 살인을 목격한 것처럼 유일하게 살인을 목격한 한 사람이다. 롭이 가지고 있는 단서는 바로 롭의 고양이 애물단지가 살인자에게 낸 상처뿐이다. 범인은 롭이 살인 현장을 목격하였다는 것을 알고 롭을 옥죄여 오고, 롭과 범인은 급기야 살인 사건이 일어난 그 현장, 할머니의 집에서 대면하게 된다.
추리 소설의 묘미는 바로 범인이 누구일까 여러 가지 정황들과 자료들을 가지고 추리를 하는 과정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 책은 추리 소설이 맞긴 하지만 그보다도 <애물단지>같은 존재 롭이 살인 사건을 목격하였지만 여전히 가족들에게 소외되고, 자신이 목격한 사실조차 말하지 못한 상태에서 범인과 대면하면서 자기 스스로 위험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롭이 성장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표현한 성장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 예로 미리부터 롭이 살인 사건을 목격하게 될 거라고 말해 버림으로써 긴장감은 감소되었지만 다 읽고 나서 생각해 보니 오히려 그것이 롭의 성장 부분에 초점을 맞춘 좋은 예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겨우 11살인 소년이 바로 목전에서 죽음을 목격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롭의 가족들은 큰 누나 결혼식 준비에 여념이 없어 롭의 상태는 안중에도 없다. 어른이라도 바로 앞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보게 되면 정서적 안정이 안 되는 것이 당연할 터인데 하물며 어린 아이가 그런 험한 꼴을 당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롭의 가족들은 참 냉정하다. 롭은 가족에게 있어서 <애물단지> 막내일 뿐인가 보다. 유일하게 롭을 이해해 주는 자상한 아빠는 삼촌 문제로 인해 자리를 비우고, 다른 가족들은 롭이 더 이상 사고를 치지 않기만을 주문한다. 그렇게 롭은 철저히 가족에게 외면당한 채로 다시 끔찍한 사고 현장으로 발길을 돌리고, 그곳에서 범인과 대면한다. 롭이 범인에 맞서서 싸우는 장면은 한 편의 공포 영화를 보는 듯이 스릴이 넘치고, 극도로 긴장감이 넘친다.
난 이 책에서 롭과 가족의 관계에 중점을 두어 생각해 보았다. 롭은 자신의 고양이 <애물단지>만큼 가족들에게 애물단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끔찍한 사고 현장을 목격한 아들과 동생에게 가족들은 정말 무심하다. 그 아이가 얼마나 놀랐을지 안중에도 없고 오직 달시 누나의 결혼식에만 온 관심이 쏠려 있다. 어떻게 가족이 그럴 수 있을까? 평생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는 사건임에도 가족은 평소의 롭에게 무관심했던 것처럼 지금도 그렇다. 롭이 목격담을 말하여도 믿지도 않고 들을 귀를 빌려 주지도 않는다. 근본적으로 왜 롭은 체리 나무에 자주 올라가게 되었을까? 가족과 있는 것이 즐거웠다면 체리 나무 위에 올라가지는 않았겠지. 가족이 롭의 말에 귀 기울여 주었다면 롭의 친구가 고양이와 나무가 되지는 않았겠지. 그렇게 롭은 가족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애물단지>로 불리는 외로운 아이였다. 그런 롭이 범인과 맞닥뜨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동원하여 혼자의 힘으로 범인과 싸우고 있을 때 롭은 더 이상 혼자 체리 나무 위에 앉아 있는 외로운 아이가 아니라 그 어떤 탐정보다도 치밀하고, 용감한 아이로 변해 있었다. 롭과 가족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이 소설이 추리 소설임에도 성장 소설이 담고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마녀 할머니의 경우를 봐도 이 소설은 가족의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마녀 할머니는 가족과 왕래도 거의 없이 혼자 살면서, 이웃들과 사사건건 부딪히면서 스스로 소외되어 괴팍하게 살아가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할머니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알게 되면 이 소설이 가족에게 소외된 사람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족에게 소외되었다는 점에서 마녀 할머니와 롭은 닮아 있다.
기쁨은 나누면 2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한다. 가족은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가장 가까운 존재로 알고 있다. 하지만 롭의 경우를 보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결혼이라는 기쁜 상황은 온 가족이 함께 나누고 있지만 살인 사건 목격이라는 나쁜 상황은 오롯이 롭 혼자만의 몫일뿐이다. 11살 소년이 감당하기에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결혼”이라는 것에 올인하여 아들에게 닥쳐온 절체절명의 위기는 함께 해 주지 않고 있다. 기쁜 일보다는 슬플 때 함께 해 주는 이가 더 감사하고 기억에 남는다는 걸 인생을 통해 경험한다. 가족에게, 이웃에게, 친구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 더 이상 롭이 체리 나무 위에 혼자 올라가 놀지 않기를 바란다. 가족과 오순도순 기쁜 일, 슬픈 일을 함께 나누는 진정한 가족의 일원이 되기를 바란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가족들도 더 이상 롭을 애물단지 취급하지 말고, 롭의 말에 귀를 빌려 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