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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나무같은 사람 - 식물을 사랑하는 소녀와 식물학자의 이야기
이세 히데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5월
평점 :
커다란 플라타너스를 등에 대고 두 사람이 서 있다. 한 명은 일본에서 온 여자 아이 사에라. 한 명은 식물원에서 30년 째 일하는 식물학자이다. 엄청 난 나이 차가 있는 두 사람이 대관절 무슨 이유로 이 나무를 사이에 두고 서 있는 걸까?
그림책의 작가는 실제로 일본인이면서 프랑스 식물원 학자로부터 지속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이 그림책을 썼다고 후기에 써 있다. 아마 이 그림책 속의 사에라는 본인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고, 그림책의 박사님 또한 실제의 박사님을 모델로 쓴 것 같다. 그림책 작가와 식물원 학자가 별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두 사람은 나무라는 연결 고리를 가지고 지금도 서로 왕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사에라와 박사님처럼 말이다. 아! 사에라는 뜻은 이곳저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단다. 이곳저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들. 이곳에도 저곳에도 (일본에도 프랑스에도) 언제나 한결같이 볼 수 있는 나무들. 이사람 저사람에게도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 여러 의미에서 사에라 라는 이름이 그냥 지어진 이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그림책은 투명 수채화로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상큼한 기분이 든다. 유화로 그려진 그림책, 실물과 똑같이 그려진 그림책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난 이런 풍의 그림책을 참 좋아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무의 싱그러움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며 내가 마치 식물원에 온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그림이 아주 아름다워 소장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더불어 식목일이 있는 4월에 읽어 주고 싶은 책으로 추천하기에 충분한 책이라고 생각이 든다.< 나무를 심은 사람 > < 나무가 좋다> < 아낌없이 주는 나무> 와 함께 말이다.
오늘 아들과 바깥에 산책을 나가 보니 여기 저기 벚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예전엔 봄에 대한 감사함을 잘 모르고 지냈는데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다 보니 봄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여기 저기서 온갖 꽃들이 알록달록 피어 우리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상큼한 연두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나무들은 또 어떤가! 연한 초록색 덕분에 눈이 한결 즐거워지는 봄이 있어 정말 고맙다. 가끔 이 세상에 꽃이 없었다면 얼마나 세상이 단조로웠을까 상상해보기도 한다. 교실 앞 화단에 있는 산수유가 제일 먼저 봄 소식을 전해 주더니, 곧 이어 목련, 개나리, 진달래 지금은 벚꽃이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마음껏 뽐 내고 있다. 꽃을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얼마나 화려해지는지....
<커다란 나무 같은 사람>은 이런 꽃을 보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준다. 꽃과 더불어 이렇게 두 사람이 등을 기대고도 남을 몇 백년의 수령을 지닌 나무들, 듣도 보도 못한 나무 이름을 알게 되는 기쁨도 알려 준다. 마지막에 보니 이 그림책에 그려진 식물만 해도 수십 가지에 이른다. 생소한 이름들이라서 한 번 씩 읊조려 보았다. 이름과 모습이 매치되지 않은 게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한 번 들어 본 것이 어딘가!
식물원의 말썽쟁이처럼 치부되던 사에라에게 박사님은 먼저 다가가서 소녀에게 말을 걸고, 소녀가 그리고 있던 으라리 꽃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고, 식물원 여기저기에 있는 희귀한 나무들에 대해서 들려 준다. 말썽쟁이처럼 행동하던 사에라도 점점 변한다. 해바라기처럼 생긴 꽃을 꺾었던 사에라는 해바라기 씨를 심고 가꾸는 소녀로 변한다. 박사님과 사에라는 나무를 알아가는 기쁨으로 한 계절, 한 계절을 매일 함께 지낸다. 사에라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던 날.박사님은 250년이 된 플라타너스를 보여 주신다. 겉표지 그림이 바로 그 부분이다. <커다란 나무같은 사람> 누구나 쉬어 갈 수 있는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그런 나무같은 사람이 되어라는 의미이겠지. 나이와 직업, 나라를 초월하여 만나 나무에 대한 여러가지를 나누는 두 사람의 잔잔한 이야기가 투명 수채화처럼 아주 상큼하다.
여러 가지 꽃과 나무를 보는 즐거움과 함께 독을 품은 풀같던 사에라가 식물학자와의 만남을 통해 아름드리 나무로 변해가는 모습 또한 아주 감동적이었다.
연두색 연한 잎들과 오색 꽃들이 만발하는 시기에 꼭 한 번 읽어봄직한 아주 아름다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