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와 지저분한 친구 께르뚜 자기 주도적으로 크는 아이 4
띠나 노뽈라 글, 메르비 린드만 그림, 살미넨 따루 옮김 / 책굽는가마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금일 드디어 학급 도서관인 행복 도서관을 오픈하여 모든 어린이들을 비롯하여 나 또한 아침독서 10분 시간에 신간도서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신간을 만나는 기쁨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두근거린다. 이 책은 그야말로 신간 중의 신간이다. 3월에 나온 책이니 말이다. 

 

핀란드 작가의 책인데 <시리 시리즈>라고 한다.  주인공 여자 아이 이름이 바로 시리이다. 쉬리가 아니다.

핀란드 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최고의 복지 국가이기도 하지만 빼어난 자연 환경 덕에 밖에 나가면 저절로 달력 그림이 나온다는 그 나라.  정말 가고 싶은 나라  중의 하나이다. 막상 가본 사람은 자연은 빼어나지만 사람 구경하기가 어려워서 적막하기도 하다고 한다.  어찌 되었건 나에게는 선망의 대상인 나라이다. 특히 복지와 교육적인 면에서 말이다.  

예전에 핀란드 학생들을 다룬 다큐를 본 적이 있는데 중고등학생들이 우리나라 학생들과는 달리 아주 행복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는 걸 인상 깊게 봤었다. PISA  1위를 하는 나라가 바로 핀란드 아닌가! 우리는 공교육도 모자라 사교육으로 3위를 차지하는 나라이고, 핀란드는 그야말로 공교육 하나 만으로 매년 1위를 하는 나라이다. 교육 분야에서는 핀란드를 모델로 해야 한다느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핀란드 교육이야 말로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강조하는 교육이다. 어제 또 카이스트  복학생이 또 자살을 하였다. 경쟁만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계속해서 이런 일들이 무수히 일어날 것이다. 핀란드 교육을 본받아야 하는데 안타깝다.  작가가 핀란드인이라는 말에 서론이 길어졌다. 가장 좋아하는 나라라서....

주인공 시리는 오또 막내 생일을 맞아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가지고 오또 집에 도착한다. 거기에 웬 지저분한 여자 아이 한 명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기분이 나빠진다. 그런데 오또 형제들은 그 지저분한 께르뚜라는 여자 아이를 좋아하는 게 아닌가! 지저분한 채로 생일 잔치에 들어온 께르뚜와 시리 사이에 싸움이 오고 가고 시리는 화가 난 채로 집에 돌아온다. 엄마에게 화가 난 이유를 말한 시리는 왜 오또 형제들이 그 지저분한 여자 아이를 좋아하는지 궁금해졌고, 자신도 께르뚜처럼 지저분해지면 그네들이 다시 자기를 좋아할까 생각해 본다. 다음 날 시리는 일부러 검정 분필로 지저분한 칠을 하고 진흙탕으로 옷에 얼룩을 묻힌 채 오또네 집에 간다. 오또는 그런 차림의 시리를 보고 놀란 얼굴을 하고, 께르뚜가 준 편지 한 장을 손에 쥐어 준다. 건너편에 그들을 보고있는 깔끔한 여자 아이 한 명이 있다. 어제의 께르뚜와는 전혀 딴판의 모습인 께르뚜다. 시리와 께르뚜의 뒤바뀐 모습이 재미있다. 오또가 준 편지를 보니 그 속에는 바로 친구가 되고 싶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자기주도적으로 크는 아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는 이 그림책은 일단 만화풍으로 그려져 있어서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시리라는 여자 아이의 캐릭터 또한 귀엽고 사랑스럽다. 4권의 시리즈가 나와 있다는데 다른 책들도 궁금해진다. 시리와 께르뚜라는 상반되는 두 여자 아이를 통해서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일깨워 주고, 무작정 남을 따라하려는 시리의 마음을 통해 그런 행동 또한 결국 부질 없음을 보여 준다.   오또막내의 생일 잔치에서 그렇게 싸우고 나서도 편지를 통해 친구 제안을 해오는 께르뚜와 편지를 받고 좋아하는 시리를 통해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모습을 보여 준다. 부모님이 안 계실 때는 완전 거지가 따로 없을 듯이 하고 있다가도 집에 갈 날이 다가오자 단정한 여자 아이로 변신하는 께르뚜. 약삭 빠르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어린이 답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가 안 계실 때만이라도 자유를 만끽해 보고 싶은 게 정상 아닐까? 방학이 되면 나도 화장도 안 한 채로 다닌다. 그게 편하니깐.  시리는 어떤가?  께르뚜의 겉모습이 지저분하다고 하여 초면에 돼지라고 비웃으며 싸움까지 서슴지 않다가 오또 형제가 께르뚜를 좋아하는 걸 보고, 자신의 모습을 께르뚜처럼 만들어 오또형제 마음을 돌리려 한다.  시리의모습에서 초반의 당당함은 볼 수 없다. 자신이 그토록 비하하던 께르뚜의 모습을 그대로 모방하는 시리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를 자꾸 모방하려고 마음, 남의 눈치를 자주 보는 모습,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남을 의식하는 모습 등등  께르뚜의 모습을 보면서 내 안에도 그런 마음들이 혹 있지는 않나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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