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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동무 ㅣ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배유안 지음 / 생각과느낌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2-3년 전에 인기리에 방영했던 사극 <이산>을 기억한다. 중반까지는 잘 봤었는데 끝부분은 보지 못했다. 이 사극 덕분에 정조대왕의 이름이 이산이었음을 나를 비롯해 만인이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개혁군주의 대명사인 정조대왕의 어렸을 적 친구이고 후에는 숙적이었던 정후겸의 입장에서 쓴 역사소설이다. 개인적으로 난 역사소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역사책에 쓰여진 한 문장을 가지고 작가의 상상력을 보태어서 만들어지는 역사 소설은 읽는 내내 참 재미있다. 배유안 작가나 강숙인 작가는 그런 면에서 아주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배유안 작가의 대표작인 <초정리 편지>를 아직 못 읽어 봤는데 분명 뛰어날 거라고 생각한다. 꼭 읽어봐야지.
정후겸이란 인물을 접해 보니 중학교 때 봤던 영화 <아마데우스>가 생각난다. 단체 관람으로 봤던 것 같은데 천재 모짜르트를 평생 시기하고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살리에르라는 이름을 그 영화를 통해 처음 들었다. 그전까지는 살리에르가 있는지 조차 몰랐으니깐 말이다. 살리에르 또한 훌륭한 음악가였지만 모짜르트의 출현에 의하여 자신은 평범한 음악가로 몰락하고 평생을 모짜르트에 대한 열등의식으로 자기 자신을 괴롭혔던 불행한 사람 살리에르. 정후겸이 바로 그런 살리에르와 같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자기 자신 또한 세손 이산 못지 않게 잘나고 똑똑하고 문무에 능하였건만 질투와 열등감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파멸에 이끈 가엾은 사람이다.
배유안 작가 또한 한중록에 있는 기록을 보고 정후겸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보고 싶어져 이 책이 나왔다고 한다.
창경궁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두 사람. 한 명은 세손이고, 한 명은 몰락한 양반의 아들로서 화완 옹주의 양자가 된 정후겸이다. 후겸은 자신보다 어린 세손을 보고 기품이 느껴지는 그에게서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느낀다. 세손을 좋아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그보다 더 열심히 공부에 정진하여 왕의 사랑을 받아 보겠다는 다짐은 아마 세손을 처음 만나던 날부터 생겼나 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보다 더 잘하는 사람을 보면 질투심이 생긴다. 그건 당연한 인간의 본성인 듯하다. 질투심이 있기에 더 노력할 수 있는 원동력도 생기고 경쟁자가 있어야 더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도 생긴다. 후겸이도 그랬다. 세손을 질투하는 마음 덕분에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고 더 무예를 갈고 닭을 수 있었으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높은 벼슬에 오를 수 있었다. 거기서 멈췄으면 둘은 그렇게 경쟁하는 좋은 동무 관계로 지낼 수 있었을 것을. 대궐이란 곳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좋은 곳만은 아니었다. 아비가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무서운 곳이기도 했다. 자신의 남편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살려달라고 시아버님께 매달리지 못하고 하염없이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곳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뒤주에 갇혀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폭우에 번개가 내리치는 데도 달려갈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후겸이도 그런 궁궐에 살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이쪽 편이 되거나 저쪽 편이 되거나 해야 자신의 안위를 챙길 수 있었다. 허나 후겸에게 선택은 없었다. 오직 자신을 양자로 받아들인 어머니 옹주를 기쁘게 해 주고 자신이 이 무시무시한 궁궐에서 살아갈 방법은 철저하게 세손에 맞서는 것. 세손을 철저히 무너뜨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 만이 그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사도세자를 죽게 한 자들이 살아갈 방법이었다.
영조대왕이 세자를 뒤주에 넣고 못을 박는 장면은 볼 때 마다 가슴에 바람이 휭 하니 분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임금 중의 한 명인 영조대왕이 어떻게 그렇게 모진 짓을 할 수 있었을까 참 안타깝다. 설마 죽게 하려고 하진 않았겠지. 왕도 노론의 세력에 못 이겨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 이해하려고 하면서도 영조의 냉정함이 무섭게 느껴진다. 자신의 아들을 그 좁은 뒤주에 가둬 물도 한 모금 먹이지 않고 결국은 굶어 죽게 만들다니....... 우리역사를 통틀어 이렇게 안타깝고 무서운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 본 이산이 왕위에 오르자 한 첫 마디가 바로 <과인은 사도 세자의 아들입니다 > 였다니 사도 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은 간담이 써늘해졌을 것이다. 정후겸도 마차가지였다. 14년간 철저히 세손이 왕위에 오르지 못하도록 온갖 짓을 다 저질렀지만 결국 그가 왕위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는 생각한다. <창경궁 동무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고 말이다. 실제로 정조가 즉위한 후 얼마 뒤에 정후겸은 귀양 보내져 사약을 먹고 죽게 된다.
살리에르나 정후겸이나 둘 다 모짜르트와 이산이 옆에 있지 않았다면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쳐 보이며 살 수 있었겠지. 둘은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이를 향한 열등감과 질투에 눈이 어두워 그들이 가진 것을 과소평가한 나머지 스스로 지옥에서 살고 말았다. 나약한 우리들은 모두 살리에르와 정후겸처럼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면 그들과 비교하느라 정신이 빠져 자신이 가진 것들을 간과하게 된다. 적당한 경쟁의식은 나를 채찍질해서 더 나은 나를 만들 수 있지만 도가 지나치면 이렇게 자신을 병들게 하고 파멸의 길로 이끌고 만다. 적당하다는 것 그건 정말 어려운 문제이다.